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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Feb 14. 2023

책임을 배우다

책임을 진다는 것에 관하여

책을 만드는 과정 중에서 ‘수정확인’이라는 게 있다. 편집자가 디자이너에게 부탁한 수정사안을 말 그대로 확인하는 작업이다. 어떤 편집자는 수정사안이 천 개도 넘고, 누군가는 백 개 남짓이기도 하다.


하루는, 나도 디자이너에게 수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수정확인’을 소홀히 여겼던 탓에 술렁술렁 넘어갔다. 그 덕분에 책에는 수정되지 않은 오탈자가 하나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굳이 여기서 잘잘못을 따져 본다면, 누구의 잘못처럼 보이는가? 수정을 요청했지만 제대로 반영해 주지 않은 북디자이너, 아니면 수정을 요청하고 확인하지 않은 편집자? 나는 편집자 초기에는 북디자이너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편집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면서, 그 잘못은 편집자 스스로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소위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핸들링하는 사람을 ‘책임편집자’라고 부른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를 뽑는 공고를 보면 ‘책임편집’이 가능한 분. 이런 글귀가 적혀 있을 때가 있다. 이 말은 책임이 강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보다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책을 기획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책의 전체 얼개를 짜고, 그 안에 들어가는 모든 요소를 볼 수 있고, 거기에 문장까지 다듬을 수 있어야 하고, 저작권 문제나 모든 이슈에 관여하는 사람이 책임편집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임편집자는 책에 관련된 모든 문제나 잘못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라고 내팽개칠 수 없는.


책임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그게 무슨 일이든 무겁게 느껴진다. 책을 만드는 일이든, 결혼을 하는 일이든, 책임질 것이 하나둘 늘어나면 어깨도 덩달아 무거워지는 법이다. 때로는 책임감을 벗어나 조금은 가볍게 살고 싶기도 하다. 꼭 책임편집이 아니어도 보조편집으로도 일할 수 있다. 책임편집자 옆에서 수정자를 확인하고 조금은 부가적인 일들을 하며 말이다. 하지만 편집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책임편집의 경력이 꼭 필요하다. 한 권을 시작부터 끝까지 잡고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능력.


우리는 인생의 능력을 성공이나 돈을 많이 버는 것에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 필요한 능력은 내가 선택한 사람이나 일, 모든 것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남자의 능력은 차에 있다거나 재력에 있다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책임감이 없다면 그 좋아 보이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늘도 내게 주어진 책임감이 나를 아침부터 깨운다. 때때로 책임져야 하는 일들은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하지만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그렇게 인생을 배우며 능력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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