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원한 상담의 시작
중학교 3학년때 아들은 자사고에 들어가길 원했다 자사고 뿐인가 성적이 월등하지 않았는데 과학고를 쓰고 싶다고 해서 이제서야 욕심이라는것이 생기는걸까 해서 되지 않을걸 알았지만 차곡차곡 함께 준비를 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뱉어 놓은 말을 수습하기라도 한듯 건성이었고 선생님께 자소서를 보여줘야 한다며 진지하기도 했다. 면접에서 몇가지 질문으로 떨어질것 예상했다던 아들은 떨어짐과 동시에 자사고 원서를 쓰고 싶어 했다. 내가 학원을 하기 때문인지 들은것이 많았는지 나도 모르게 강요한것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사교육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직업이었다. 초등학교때부터 대안학교 캠프를 가서 다양한 교육과 선생님이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었고 중학교에 대한 결정권을 다양하게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 또한 대안학교 교사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순간 어느시점이 되면 도전해 보리라 결심을 하기도 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던 시점 평범하게 근처의 중학교를 가고 싶다는 선택을 했을때 그것이 자연스러울수도 있겠다 싶었다. 주류가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것은 그 선택에서 강한 신념과 의지가 없이는 갈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주류가 가는 안정적인 것이 삶을 실험하고 도전하는 고단함을 필요없게 해주는 것이라는것을 아이도 은연중에 알고 있었던것 같다. 그런 아이가 자사고를 간다고 해서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것이 이 아이의 몫일거라 추측했다. 그렇게 선택한 자사고를 합격자 발표를 하는날 우린 여행중이었다. 발표할때까지 초조함과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벌써부터 합격과 불합격이 무엇인지를 겪어야 하는 것을 보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살아가는것이 합격이 무조건 좋은것은 아니고 불합격이 무조건 행복한것은 아닌데 벌써부터 합격과 불합격의 선택에서 합격이 되어야만 자신의 삶이 생각대로 흘러갈수 있다는 강한 생각을 아이를 보면서 마음 한켠에 여러 생각들이 빙글빙글 돌었다. 그러다 합격이 되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제서야 손에 원하는것을 정확히 넣었다는 기쁨과 자신감으로 흥분했고 가족들과 친지들의 축하를 받았다. 오랫만에 가는 제주도의 여행속에서의 여유로움과 평화로움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 합격에 대한 기쁨으로 모든것이 자연스럽게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도 들었으리라.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 학교를 가는길은 멀었다. 셔틀이 있는 날은 셔틀을 타지만 야간자율학습이 없는날엔 버스와 지하철을 2~3번 이상 갈아타야만 집으로 올수 있었다. 입학을 한후 이틀이 지난 어느날 가족 단톡에 집에 가고 싶다는 톡이 왔다. 35명이 있는 이교실이 싫다는 말과 함께. 아마 자사고라는 특성상 학업과 입식에 대한 정보가 가득했을거고 담임선생님의 입시에 대한 파워풀한 경력은 아이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니 생각했지만 현실로 느껴버린 곳에서의 괴리감으로 당황했으리라. 야자를 처음 하는날은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고 가족들하고 그냥 같이 있고 싶다는 톡을 보낼때마다 남편도 나도 동생도 격려와 위로와 응원으로 톡을 채웠다. 그런 시간들과 익숙한 나날들로 적응을 했다. 축구를 좋아해서 경기에 나가 준우승을 했고 학교에 대한 자긍심이 있어 보였다. 그런 아이가 2학기를 맞이하고 보름정도가 지난 어느날 아이는 대인관계가 힘들다는 얘기를 했다. 대.인.관.계 그건 친구들과의 관계를 말하는것인지 아니면 누구를 대인관계라고 하는것인지 애매하기도 했다. 아이가 독일여자친구를 사귄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게 된후 단톡디엠에 기분나쁜 말들이 오간듯 하다. 남자고등학교 아이들의 거친말들도 있었을테고 동물적인 생존방식으로 서열을 느낀적도 있었을것이다. 초등학교 졸업할때까지 가장 친한친구가 여자아이였을 정도의 아이의 성향은 맞지 않았을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적응하게 될것이고 어떤 경험이든 수용과 저항의 방식으로 경험은 누적되며 꼿꼿했던 생각들이 흐물흐물해지고 그런 곳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배울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야간자율학습에서 늘 열심히 공부하진 않겠지만 흐름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아이는 그런대로 평범하게 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 어느날 남편의 핸드폰으로 미성년자가 하지 말아야 할것을 한 댓가로 아이의 핸드폰 문자가 1달정도 정지된다는 문자를 받았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고 내가 모르는 일이 벌어졌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공부가 하기 싫고 돈이 필요했다는 아이는 독일에 가서 여자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욕과 패트립 성희롱을 서슴치 않고 하는 단톡디엠을 무시하다 독일인 여자친구를 만난다는것을 알게된 아이들이 하는 말들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아이는 내가 어찌할수 없는 영역속에서 경험하고 상처받았으며 판단하고 결정하고 있구나. 그속에서 내가 할수 있는 건 지극히 피상적이며 일각일 뿐이라 생각이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내 손이 뻗치지 않는곳, 내가 손을 내밀어도 그 손을 잡지 않으면 어떡하지, 난 무엇을 도울수 있을까, 어떤 선택이 아이를 위한 것일까, 아이가 원하는것을 나는 그대로 들어줘야 하는것일까...갈등이 되었다.
공부가 재미있다고 얘기했다. 성적과도 상관이 없진 않았다. 공부 꽤 한다는 아이들이 들어간 자사고에서 내신성적이 나오지 않아 끙끙댔지만 위축감과 열등감은 어쩔수 없이 아이가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존경하는 선생님이 계시면 서슴없이 가서 표현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존경스러움을 나에게도 전달했다. 참..흐믓했다. 별다른 문제 없이 아니 문제가 있었겠지만 스스로 조절하고 해결할수 있는 정도의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으며 가끔 나타나는 의견충돌은 사과로서 마무리 하는 방법으로 서로를 충분히 존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 생각이었다.
공부가 그토록 싫고 자존감이 떨어진다면 자사고에 있는것은 아니라고 판단해서 전학을 얘기했다. 1학기 동안 성적이 나오지 않아도 내가 그렇듯 한번 선택한 학교에서 전학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공부만 있겠는가 평생을 잊지 못할 사춘기 친구들과 우정 선생님과의 관계는 성적과 상관없이 어른이 되고 난 이후에도 힘들때 지칠때 떠올리는 애틋한 추억이라 생각했다. 나 또한 성적이 잘 나와서 졸업을 했겠는가 그냥이었다. 이것밖에 길이 없다는 생각은 다른 아이들이 그렇듯 수용을 해야 살아가게 되므로 그렇게 졸업을 했던것이다. 아이도 나처럼 생각할줄 알았는데 자사고에서는 늘 비일비재하게 전학이 거론되고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전학도 가고 또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자퇴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다양한 선택과 그 길밖에 없으니 참아야 한다는 내 고등학교 시절과 어떤것이 더 아이를 위해 나은것인지는 나도 그저 혼란스러웠다.
선생님께 전학을 얘기하고 아이는 2달후에 그곳에서 중간고사까지 보고 결국엔 집근처의 일반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전 학교 담임선생님은 아이의 전학원인이 성적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단톡 디엠에서 누군가를 배제한다든지, 꾸준히 누군가에게 패트립을 한다든지, 성적인 단어들로 모욕감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바로 잡겠다고 하셨다. 그러던 중 아이는 내부고발자의 형식을 띠게 되었고 아이는 극도의 예민함과 불안과 불신과 거짓말들로 2달을 보냈다. 그 상황의 마무리는 그런 폭력성의 주도한 아이들을 한명한명 불러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엄포를 내렸고 단톡방을 삭제하는것으로 마무리 했다. 얼음위를 걸어가듯 불안한 일들이 마무리 되고 가라앉을 무렵 그 학교에서의 장점을 담임선생님께 듣고 설득되고 다시 생각하기를 반복했다. 합격해서 기쁨과 자신감으로 모든것이 잘될것이라고 선택한 그곳에서 나와야 하는 결정을 내기까지 아이의 마음은 바닥으로 소용돌이 쳤고 한동안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그곳에서 에너지가 모두 빠져나간후 자포자기한채 중간고사를 보고 패배의식과 피폐한 마음으로 일반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우여곡절 끝에 전학을 하고 3일정도 지났을 무렵 마음 편하고 즐겁다고 얘기했다. 어떤것이 구체적으로 편하고 즐거운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묻기가 어려웠다.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삶이 어떤 식으로 흐르든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고 결심한것은 지금의 상황들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아이는 전학을 기점으로 성격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불안정했으며 무기력했고 중요한 무언가를 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수가 없었다. 그런 느낌은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고 중심을 잡고 있어야 대처할수 있다고 나를 세뇌시켰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난후 아이는 집에 가고 싶다...답답하다...이곳이 싫다는 톡을 보냈다. 정신을 차리고 있었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아이가 불안하다고 느낀것이 이것이었구나 자신이 왜 이런 마음인지도 모르고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몸둥아리만 끌고 학교라는곳에 가고 있구나...안스럽고 슬펐다. 예전에 밝고 장난스러운 모습은 오간데 없고 독일과 시차가 8시간이 있어 그것에 맞춰 밤과 아침을 바꿔버린 아이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걱정스러웠다. 방의 문을 처음으로 닫고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행복해 하는 아이에게 난 지금 아무말도 할수 없이 있어야 했다. 엄마로서 한 인간으로서 난 왜 이렇게 약하고 쓸데없을까 한심스럽기도 했다. 성적이 다 아니고 아이가 즐겁고 행복한것이 맞으니 지금 너의 여자친구는 너의 안식처이고 위안이니 엄마에겐 너의 여자친구가 은인과 같다는 말을 시원하게 하지 못하는 난...왜 이러나 갈등했다.
그런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상담을 제안했다. 어느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말들을 해야 아이가 숨을 쉬고 살수 있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지금은 부모와 가족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아이의 조금더 객관적으로 볼수 있는 사람, 그 얘기를 판단없이 들어줄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상담을 제안했고 아이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