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통제
등교후 9시즈음이 되면 아이는 가족 톡을 보낸다.
"학교가 싫어, 집에 가고 싶어, 힘들어, 견디는것이 아주 힘들어"
그런 톡을 일주일 동안 내내 받았다. 그런 톡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본인이 선택해서 자사고를 갔고 본인이 선택해서 일반고로 전학을 왔다. 그런 일반고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것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집에 온 아이에게 그렇게 힘드냐고 물어보면 표정은 그리 힘들어 보이진 않는다. 학교에 가면 늘 그런 마음이 든단다. 응원과 긴문장의 편지를 남편과 번갈아 가면서 보내주고 화이팅을 몇번을 썼는지 모르겠다. 과연이 문제가 무엇인가... 아이가 원하는것은 무엇인가... 답답하고 가슴에서 불이 나기도 한다.
자사고를 선택하지 않고 일반고로 처음부터 갔었으면 이런일이 없었을까? 아이는 언제부터 저런 무기력증에 젖어 있는것일까 온통 아이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몸도 마음도 무거워졌다. 이런 나를 보면서 남편은 아이의 원망을 하기도 하고 아이를 위해서 어떤 방식이 나은지 의논하기도 하고 이도저도 해결책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상담이 있는날 아이와 함께 상담에 대한 얘기를 듣기 위해 갔다. 처음엔 또래에 비해 성숙한 면이 많아 보였다고 하셨다. 자신의 답답함을 위로 받을수 있는 사람이 여자친구밖에 없다는것이 안쓰럽다는 말씀도 하셨다. 순간 그럼 아이는 부모와 가족에게서 안식을 얻지 못한다는것인가..판단했지만 그럴수 있다고 받아들였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생각하는 엄마로서의 나와 자식이 생각하는 엄마로서의 나는 분명 다를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헌신과 애정 보살핌으로 내 모든 시간을 아이를 키우는데 집중했다고 생각했으나 아이는 관심은 간섭으로 통제로 느낄수 있다는것을 다행이 평소에도 가능할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그런 얘기를 들을때 당황했지만 그래...그럴수 있다 생각했다. "처음에 어머니 뵙을때 책임감이 강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관리하셨고 그건 불안입니다. 불안하다는것은 통제를 하게 된다는것이고 그런 불안의 감정은 어머니가 해결 하셔야 하는것이지 아이에게 그 불안을 통한 통제는 하시면 아이는 자율성을 잃고 억압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아...불안이 통제를 야기시킨다. 맞는 말이다. 가슴으로 수용하기엔 거부반응이 있지만 일단 아이를 위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상담실을 나와 집으로 오는 내내 소용돌이 속에 있는듯 잡히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 감정으로 먹먹했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원하는것을 얘기하고 불편한것이 있으면 말하자라는 제안에 아이는 그날 상담에서 한 얘기를 했다. 엄마와 아이와의 관계에서 자율성을 잃어버린 내용들. 난 아이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된것이다.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
분명 불안이 있는것은 사실이다.
아이에게 공부에 대해 다그친적이 없었지만 아이는 성적이 좋으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알았으리라 또 핸드폰 패밀리링크에서 다운타임(밤 12시30분)이 되면 핸드폰을 쓸수 없게 되는것 통제되것 같았을것이다. 그리고 늘 함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분위기인지라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것이다. 모범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엄마를 보면서 자신도 인정 받기 위해 모범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을수 있다. 주변에 좋은 대학을 나온 친척을 보면서 자신이 그렇게 될수 있을거라 자만했던것도 할수 있다고 늘 말하는 나의 근거없는 응원때문이었을것이다. 독일여자친구가 있다는것을 내가 흔쾌히 지지해주지 않는것은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신경쓰임으로 작용했을것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다른아이들보다 적은 용돈은 아껴써야 하는 부담감으로 작용했을것이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것이 어쩌면 많아서 그것 또한 자율성을 훼손했다고 생각했을것이다. 다른 아이들 다 인스타그램을 했을때도 2년 늦게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된것, 늦은밤까지 다니는것을 제한한것, 해야만 하는것에 촛점을 맞춰 얘기한것 모두 아이의 자율성을 제한했다는것을 나는 인정한다. 때로는 아이가 사랑스러워서 때로는 지킬수 있는 원칙을 만들어주는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만의 전제로 아이를 키웠을수 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책을 읽고 어떤것이 중요한지 나 또한 처음해보는 부모라 책을 읽게 되면 그것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 좀 이상적일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난하고 결핍이 많은 어린시절을 보냈던 난 아이를 안정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에... 나만의 전제는 잘못될수 있다. 잘못된 전제일수 있다는것을 늘 인식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며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난 아이를 불안하고 답답한 상황으로 몰아쳤다는 자책으로 눈물을 흘렸다. 자책은 소중한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아이는 여전히 학교가 싫다는 문자를 하며 학교에서 교복을 입지 않고 간날 벌점을 받은날은 집에 쳐박혀서 잠만 자고 싶다는 톡을 보냈다.
부모...엄마...갑자기 화가 났다.
자식은 부모가 괴롭다고 느끼는것을 서슴없이 표현하는데 난 아이의 마음이 다칠까 담담하게 표현할때 괴롭고 허탈한 마음은 누구로부터 위안받아야 하나. 아이의 이런 행동엔 원인과 결과가 있을진대 그 원인을 부모에게 돌린다는것을 난 무조건 받아들여야만 하는것인가. 그것이 정답인가. 아이가 스트레스 받을까 공부에 대해서는 가급적 가볍게 얘기하곤 했다. 자사고에서 마지막으로 본 중간고사는 전학을 하니 마니의 문제 앞에서 자포자기하듯 공부를 안하는 아이를 보면서 괴로웠지만 다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짓은 안하고 싶어 그저 아이가 하고 싶은대로 할수 있게 지켜봤다. 힘들었지만 그것이 그 순간에 최선이었다. 미성숙함을 고스란히 느끼게 될때는 참는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문제를 먼저 말하는것이 아니라 아이의 얘기를 들어준후 하고 싶은 말을 되도록이면 간결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을 버리고 있다고 사랑하지 않고 있다고 느꼈지만 그런 방황속에서 나는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매일매일 새벽 6시에 산엘 갔다. 아이는 알까 저도 나도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아이에게 자율성을 주지 않는 원인이 나 라는 얘기에 아이를 힘들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억울함으로 널뛰기 하듯 밤낮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나도 아이도 거리를 유지하며 생활하고 있다.
가끔 아이에게 부담이 될것 같아 말하지 않는 얘기들도 솔직하고 편하게 얘기하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엄마라는 이름이 무겁다.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것이 엄마가 된것이라고, 살면서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것 같은 날라리 신자인데 하느님이 주신 가정은 나에겐 최상의 선물이라고 말했던 내가...
무너졌다.
하지만 이런 무너짐이 나쁘지는 않다. 나도 나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아이도 실패와 포기속에서 스스로 성장할수 있는 기회가 될수 있을거라...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