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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한 김선생님 Jan 26. 2022

현란한 아침

벌써, 10년이 넘게 잘 버티고 있다. 

텀블러에 커피를 내려 담고 느긋하게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

고요한 아침, 교실 문을 여는 시간.

우리 교실 안녕? 달팽이도 안녕? 아참 달팽이의 이름을 어제 정했었는데, 달팽이의 이름은 핑핑이였던가 핑퐁이였던가. 아무튼, 너도 안녕! 텀블러를 책상 위에 내려놓을 때,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눈이 부시다.

아... 이 아름다운 아침아. 실성은 이런 것이다.


그들이 오고 있다!

그들은 온몸으로 "내가 지금 간다"를 어필하며 온다.

웃으며 맞이한다. 억지로 웃는 건 절대 아니다.

아침마다 뽀송한 얼굴로 들어오는 그들은 정말 해맑고 예쁘다. 그 얼굴 그대로 안아달라고 달려든다. 레트리버 12남매 같은 느낌이다.


3월 한 달을 잘 어르고 달래고 어구 잘했다 칭찬하면,

가방 걸고, 옷 정리하고, 책을 펴고 자리에 앉는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눈을 제법 크게 뜨고 도레미파'솔'정도의 음으로 칭찬한다. "어머나~ 잘했쪄"

가끔 이 버릇이 남편에게도 나온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두 눈이 흔들리고 잠시 정적이 흐른다.

그럼, 나는 박수까지 쳐준다. "아이구~ 잘했쪄"

유치원 교사와 사는 남편은 이런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세뇌시킨다. 먹히지 않는다. 그래도 싫지는 않은 눈치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


, 훌륭한 아침이야.  아까 내려놓았던 텀블러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복도에서 범상치 않은 소리가 들린다.

텀블러를 내려놓고 참견하러 복도로 가야 한다.

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포켓몬스터 카드를 들고 와 누가 더 센가 토론 중이다. 아니, 우기고 있다.

그 와중에 그 요란함을 구경하던 한 녀석은 물통을 놓쳐서 바닥에 이미 물이 줄줄 흐른다. 아~ 아름다운 아침이야.

괜찮다. 물은 닦으면 되고, 포켓몬스터는 둘 다 멋진 걸로 정리하면 된다.


복도를 정리할 동안 교실 안은 책을 읽기 싫어하는 자들로 인해 다소 소란해졌다. 얘들아 책 읽는 것은 너희들의 생각주머니가 커지는 일인데......(이미 안 들림)

그래도 그 중 몇 녀석은 정말 기가 막히게 책에 집중하고 있다.  새침한 한 녀석은 눈짓으로, 몸짓으로 너무 시끄러워서 책을 못 보겠다고 의사표현을 한다. 모여 앉을 때가 됐다. 겨우 모여 앉았다. 드러눕거나 옆 친구를 못살게 굴거나, 의자에 반쯤, 바닥에 반쯤 붙어있거나.

매일 보는 아이들이지만 나에게 어제 뭐했는지 꼭 이야기를 해줘야 하니까, 친절하게 다 들어준다. 사실 매일매일이 같지만 늘 다르다. 그것도 신기하다.

 동화책을 한 권 읽어줘야 하루가 시작된다.

"헨젤과 그레텔을 괴롭힌 마녀는 굴뚝에 갇혀서 죽었답니다." 하하하...... 뭐라고?!  가끔 동화책의 결말이 이래도 되는가 흠칫 놀란다. 깐 동화책 그대로 읽어줘야 할 것인지 내 마음대로 내용을 바꿀  것인지 고민한다.  작가의 의도를 존중하기로 한다.


우유를 먹어야 한다.

 "반만 먹을래요. 안 먹어요. 코코아 가루 타 주세요. 컵에 먹을래요. 남길래요. 쏟았어요. 까 주세요. 안 뜯어져요.

선생님 쟤 안먹고 돌아다녀요. 나 우유 잘먹어요. "

200미리 곽우유를 열어서 마시는 간단한 일임에도 다양한 이벤트가 있다.


이제 겨우 1시간이 지났다.

텀블러의 커피는 잊힌 지 오래다.

한 두어 시간쯤  지나 싸늘한 몰골로 발견될 예정이다.


괜찮다. 10년이 넘는 동안 나는 식은 커피가 더 좋졌다.

나는 유치원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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