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로운 퇴직
박수칠 때 떠나라는 그 얘기가 저는 좀 서운합니다.
"김선생, 내가 그 소리를 듣는데 내 가슴이 콩닥콩닥 뛰더라고......"
은퇴하신 선생님이 우연히 학교 앞을 지나가다 학교 종소리를 들었다고 하셨다.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던 익숙하고, 때로는 지겹기도 했을 그 소리가 그날만큼은 유난히 또렷하고 반갑게 들렸다고, 그런데 꽤 이상한 기분이었다고 눈빛을 반짝 거리며 말씀하셨다.
양봉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파~하고 웃으시더니 트렁크를 열어 꿀병을 척척 꺼내 내려서 한 병을 손에 들려주셨다. 취미로 시작하셨다는 양봉이 꽤 적성에 맞으셨나 보다. 이렇게 귀한 것을! 감사합니다. 넙죽 받아 들었다. 선생님의 그을린 얼굴 위로 2대 8 가르마의 갈색머리가 여전히 단정하게 찰랑거렸다. "집에 가서 식구들이랑 먹어요." 누렇게 가득, 느릿느릿 출렁대는 꿀을 보면서 은퇴 이후 펼쳐졌을 선생님의 느릿한 시간을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아직은 너무 먼 미래인 것 같아 멈췄다가, 정년이 될 때까지 몇 년이 남았는지 헤아려보았다.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아서 놀라고, 거의 20년을 다 채워가는 나의 경력에 놀랐다. 그리고 이제 고작 네다섯 번의 학교를 옮기고 나면 정년이란 생각이 드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겠단 생각이 들어서 서글퍼졌다. 문득, 학교 밖에서 듣는 종소리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기쁘기도, 슬프기도, 반갑기도 하려나. 가슴이 철렁할 것 같긴 하다.
요즘은 교사의 발령 철이다. 발령 공고문이 뜨고, 술렁인다. 내가 학교를 옮겨가는 것도 아닌데 공고문을 자세히 눈여겨보고, 아는 이름을 찾고, 축하인사를 건넨다. 매년 오고 가는 이들로 마음이 어수선하지만, 매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오늘, 발령 공고문에서 그분의 이름을 보았다. 문서의 스크롤바를 내리다가 멈칫한다. 명예로운 퇴직자. 먹먹해진 기분으로 전화를 걸었다가 "자기야, 밥 한번 먹자! 내일 만날까?"라는 맑고 밝은 목소릴 들었다.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불을 끄며 퇴근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셨을 그분의 시간들이 눈에 보여 내가 다 아쉽기만 한데, 정작 당신은 소녀 같으시다. 할 말이 많지만 "아유~이제 수업 안 하니 좋으시겠다." 이야기한다. 이제 학교 밖에서 종소리를 듣게 되실 텐데요. 그립지 않으실까요. 내가 더 그리울 것 같다. 계속 머물러주셨으면 하다가, 명예로운 퇴직을 진심으로 응원해드리기로 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당신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