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핑핑이

교실 안에서 생명체와 그들의 죽음을 마주하게 될 때

by 상냥한 김선생님

[달팽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은 유치원이 더 분주해진다. 아이들의 우산, 우비를 하나씩 정리해서 말려둬야 하고, 낮은 신발장인 탓에 세워지지 않는 장화를 욱여넣어야 한다. 복도에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은 눈에 보일 때마다 서둘러 닦아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고객님들은 물방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양말을 신은 발로 사뿐히 밟고 지나가며, 그 바쁜 와중에 갈아 신겨 달라며 민원을 넣기도 한다. 그 사이 다른 아이들의 우산과 장화, 우비는 이미 바닥에 나뒹굴고…. 아, 비 오는 날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비 오는 날이면 '축축한 그들'의 목격담을 들려주러 온다. 지렁이, 민달팽이, 달팽이, 도롱뇽…. ‘축축한 생명체’들은 개인적으로는 불호지만, 아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세상이다. 가끔은 오다가 주웠다며 내 손에 소중하게 내려놓기도 한다. 싫음을 내색하지 못하고 잠깐 눈을 질끈 감았다가 어색하게 입만 웃는다. 그래도 다행이다. 민달팽이는 아니다.

"어머, 달팽이를 가져왔구나. 그런데 얘를 어떻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눈을 초롱초롱 해져서 말한다.

"교실에서 키워요!"

환호하는 아이들 틈에서 나는 현실을 직시한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달팽이집은 어떻게 꾸려야 할까? 달팽이는 뭘 먹고살더라? 사슴벌레 통에서도 괜찮을까, 장수풍뎅이 먹이는 어디에 두었더라….’

아이들이 원한다면 이 한 몸 희생할 수밖에. 결국 이 달팽이의 노후까지 내가 책임지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동안은 나도 신기했다. 느릿느릿 점액을 남기며 교실을 기어 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집에서 바르는 달팽이 에센스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아, 내가 매일 바르는 게 바로 저 점액이구나.


데려온 아이의 의견으로 달팽이의 이름은 핑핑이가 되었다. 상추 잎을 갉아먹으며 초록색 흔적을 만들고 있는 달팽이를 보면서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를 맞이 한 듯 신이 났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자 풍경은 달라졌다. 어떤 아이는 관심을 잃었고, 어떤 아이는 가끔 살아 있는지 확인하듯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핑핑이는 마치 교실 한쪽에 놓인 방치된 화분처럼, 서서히 잊혀갔다. 새로운 일들은 늘 교실 안에 가득했고 느릿느릿한 달팽이의 일상은 나에게도 지루한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름을 지나 가을을 건너, 겨울이 다가올 때까지 핑핑이는 의외로 잘 살아남았다. 밤마다 혹시 얼어 죽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침이면 어김없이 느적느적 기어 나와 상추를 뜯어먹었다. 스마트팜에서 자라난 유기농 상추만 먹이며, 오래도록 살아주기를 바랐지만 작고 연약한 생명은 어느 날 아침, 바삭하게 말라 있었다. 맙소사! 아이들이 오기 전에 발견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핑핑이의 집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아이들에게 나는 핑핑이가 멀리 여행을 떠났다고, 그렇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지어내야 했다. 죽음을 애써 감추어 ‘여행’으로 포장하는 것이 더 따뜻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죽음을 마주하게 하여, 그동안의 무심함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옳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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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개미가 나타났다아~"

큰일이다. 교실에 덩치 큰 개미가 나타났다. 교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교실에 나타난 곤충들을 보고 아이들은 보통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며 도망가거나, 신기해하면서 바라보고, 손바닥으로 내리치거나. 특히 후자의 아이들은 “내가 멋지게 해결해 줄게”라는 의기양양한 태도로 작은 영웅이라도 된 듯 행동한다.

개미의 눈으로 보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엄청난 거인들이 달려와서 손바닥으로 길을 막기도 하고 바람을 불어 다리를 들어 올린다. 몇 바퀴를 굴러 겨우 자리를 잡았다 싶었는데, 아이들 틈에서 뻗어 나온 작은 손 하나가 순식간에 개미를 내리친다. 말 한마디 꺼낼 새도 없이, 개미는 납작해졌다. 아이는 의기양양하다.

"선생님 내가 죽였다요?"

개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기보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해결사 역할을 잘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환하게 웃었다.

맙소사! 또 몇몇은 대단하다며 박수를 친다. 그럴 수 있다.

순간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속 개미왕국을 떠올렸다. 그 개미는 어쩌면 '배운 개미분'이셨을 수도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봤다.

"에휴... 개미를 그렇게 죽이면 어떻게 하니? 살려서 밖으로 보내줬어도 됐잖아."

납작해진 개미를 치우고, 아이의 손을 비누로 깨끗하게 씻겨주었다.

"다음부터는 놀라지 말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내보내자.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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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한 번은 입구가 넓고 낮은 항아리에 구피 몇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제법 많은 수로 불어났다.

낮은 항아리 어항이어서 그런지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다니는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날도 구피가 모두 몇 마리인지 세어보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은 어항 청소 한번 해야겠네." 무심히 내뱉었다.

점심시간, 양치질을 모두 마친 후 교실로 돌아왔을 때, 항아리 속의 물 색깔이 뽀얗게 뽀얗게 변해있음을 깨닫고 당황했다. 어떻게 된 거지? 구피들이 둥둥 떠 있는 광경이 눈에 비로소 들어오고 아찔해졌다.

"선생님, 내가 구피들 목욕해 줬어요."

두 손에 비눗물이 잔뜩, 물장난의 흔적이 가득한 티셔츠.

여섯 살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

“아이고, 이 녀석아. 물고기는 비누를 싫어해. 아야한단 말이야.”
옷을 갈아입히며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아이는 못 들은 척 손으로 드럼놀이를 이어갔다.

“물고기가 비눗물 때문에 다 하늘나라로 갔다고….”
입술 끝까지 나온 말은 차마 다 전하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그저 하지 말라고 타이르는 게 옳을까, 아니면 선생님을 돕고 싶었던 아이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할까. 교사의 고민은 늘 이런 순간에 깊어진다. 생각해 보면, 내 잘못이 더 크다. ‘어항 청소’를 입으로만 말했을 뿐, 그 의미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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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모여 앉아서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걸 알려주고,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 때만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이야기한다. 모든 죽음은 가볍지 않다는 걸 아이들이 느꼈으면 좋겠지만, 그럼에도 이런 경험은 가급적 적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아름다운 지구와 생명체의 소중함이 담긴 동화도 하나 읽어주고 나서 다시 한번 생명존중에 대해 강조한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고, 다양한 생명의 소중함을 언급한 유네스코의 '교육의 미래 보고서' 내용을 생각하며 바삭해진 달팽이와 납작해진 개미, 비눗물 물고기를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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