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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한 김선생님 Jan 28. 2022

달팽이 핑핑이

교실 안에서 생명체를 마주하게 될 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은 유치원이 더 분주해진다. 아이들의 우산, 우비를 하나씩 정리해서 말려둬야 하고, 낮은 신발장인 탓에 세워지지 않는 장화를 욱여넣어야 한다. 복도에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은 보이는 즉시 없애줘야 한다. 우리의 고객님들은 물방울 따위를 보지 않고 양말을 신은 채로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고, 그 바쁜 와중에 갈아 신겨 달라고 심한 민원을 넣으신다. 그럼 잠깐 양말을 갈아 신겨 드리는 동안 다른 고객님의 우산과 장화와 우비는 바닥에...... 아, 비 오는 날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비 오는 날이면 '축축한 그들'의 목격담을 들려주는 아이들이 많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축축한 그들'은 불호다. 지렁이, 민달팽이, 달팽이, 도롱뇽 그 비슷한 동물들.

한 아이가 손에 아주 소중하게 달팽이를 들고 왔다. 오다가 주웠다며 내 손에 소중하게 내려놓는다. 나는 싫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어색하게 입만 웃는다. 다행이다. 민달팽이는 아니다.

"어머, 달팽이를 가져왔구나. 그런데 얘를 어떻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눈을 초롱초롱 해져서 말한다. "교실에서 키워요!" 환호하는 아이들 틈에서 나는 현실을 직시한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달팽이집, 달팽이는 뭘 먹고살더라? 얘  사슴벌레 통에서도 살 수 있나? 장수풍뎅이 통이 어딨더라?  너희들이 원한다면 이 한 몸 희생할 수 있다.

 데려온 아이의 의견으로 달팽이의 이름은 핑핑이다. 상추 잎을 갉아먹으며 초록 똥을 떨어뜨리고 있는 달팽이를 보면서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를 맞이 한 듯 신이 났다. 잠깐 동안은 나도 신기해서 바라보았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고 겨울이 다 될 때까지 핑핑이는 잘 살아남았다. 밤에는 교실이 너무 추워서 달팽이가 얼어 죽지 않을지 걱정했으나 아침이면 느적느적 기어 나와 상추를 뜯어먹었다. 스마트팜을 통해 교실 안에서 자라난 유기농 상추만 먹였다. 잘 살아남으라고. 하지만,  주말을 지나 바삭바삭 죽어버렸다. 아이들 오기 전에 발견해 다행이라고, 멀리 여행을 떠난 것으로 이야기를 해 두었다.


"개미가 나타났다아~"

우르르 몰려든 아이들 틈을 비집고 손 하나가 개미를 내리친다.  뭐라 말할 틈도 없이 개미는 납작해졌다.

살려서 밖으로 보내줬어도 됐잖아.


 한 번은 입구가 넓고 낮은  항아리에 구피 몇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제법 많은 수로 불어났다. 낮은 항아리 어항이어서 그런지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다니는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어서 그날도 몇 마리인지 세어보고 있었다.

"오늘은 어항 청소 한번 해야겠네." 무심히 내뱉었다.

점심시간, 양치질을 모두 무사히 마친 후 교실로 돌아왔을 때, 항아리 속의 물 색깔이 뽀얗게 뽀얗게 변해있음을 깨닫고   바라보았다. 구피들이 둥둥 떠 있는 광경이 눈에 비로소 들어오고 아찔해졌다.  

"선생님, 내가 구피들 목욕해줬다요."

두 손에 비눗물이 잔뜩, 물장난의 흔적이 가득한 티셔츠.

다섯 살 아이의 천진난만하고 의기양양한 모습.

세워 놓고 옷을 갈아입히면서 잔소리를 했더니 드럼놀이를 하고 있다. 아......! 너 이 녀석. 생각해보면 내 죄가 크다. 어항청소를 입으로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렇게 교실 안에서 함께 살아가던 생명체들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사실 많이 난감하다. 생명은 소중하고 우리가 잘 돌봐줘야 하고,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 때 기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장례의식도 꼭 필요하다.

모든 죽음은 가볍지 않다. 그렇게 아이들이 느꼈으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그런 경험은 되도록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요즘엔 그런 이유로 배추흰나비를 키운다. 애벌레에서 번데기를 지나, 나비가 되면 아름답게 떠나보낼 수 있다.

같은 작별이지만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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