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교사들의 소소한 식사 모임에 사장님과 진상 고객님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유치원에 난데없는 사장님이라니. 잠깐 먼저 '유치원'에 대해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유치원, 학령전기 어린이를 위한 유아교육 기관을 말한다. (교육학용어사전)
"유치원이 다 같은 유치원이지. 안 그래?"
세세한 유치원의 차이는 사실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어르신 중에는 나를 유아원 선생이냐고 묻는 분들도 계셨다. 유아원은 저 태어나지도 않았을 적에 있었던 거 같습니다. 하하.
"네, 안 그래요."
집 나이로 다섯 살부터 일곱 살까지의 아이들이 다니는 교육기관은 국공립 유치원과 사립(법인) 유치원, 어린이 집 등이 있다. 영어학원 등에서 운영하는 유치부 등 다양한 형태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미리 언급한 세 곳을 다닌다. 특히 국공립 유치원에는 초등학교에 병설된 형태의 병설유치원, 독립된 형태의 공립 단설유치원이 있다. 나는 공립병설유치원에 근무한다. 병설유치원은 초등학교에 소속된 유치원으로 초등학교의 체계 속에서 유치원이 운영된다. 장점도 많지만 미묘하게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 학교급이 달라서 이해가 다를 수밖에 없고 교육과정 운영방법도 다르다. 많은 것이 다르지만 서로를 이해할 시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공문에 치이고, 학부모에 치이고, 수업준비에 치이는 것이 현장이라 하루하루를 잘 버텨내고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잇는 ‘유초 연계 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병설유치원은 다른 유치원들보다 분명 유리하다. 초등학교 공간을 미리 경험할 수 있고, 선배 초등학생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면서 아이들은 조금 더 익숙한 환경에서 초등학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안에 있는 병설유치원에 근무하는 교사이므로 초등학교 교장, 교감 선생님은 나의 상사가 된다. 오늘은 교장선생님이 결재를 안 하신다. 심지어 기안문서 보류가 떴다. 계획서를 벌써 세 번째 고치는 건 알고 계실까. 보통 학교일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정답이 없고, 쓸데없이 계획서를 고치게 될 때는 윗분 1번 님(교장)과 윗분 2번 님(교감)의 의견이 달라서인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졸업식에서 아이들이 졸업장을 받을 때 가로로 줄을 서서 받을 것인가, 세로로 줄을 설 것인가? 같은 문제 말이다. 둘의 미묘한 신경전에 등 터지는 새우는 나다. 상하구조가 확실한 교직사회에서 요즘 들어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곳이 많아졌지만, 간혹 민주적인 방식으로 윗분의 의견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회의를 하는 형태이기도 하다.
'가로줄이든 세로줄이든 졸업장만 받으면 되는 거 아닐까요?'
가로줄의 이유도, 세로줄의 이유도 모두 이해는 간다. 그러니 하나만 딱 정해주세요. 제발?
"네, 알겠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답답한 새우는 등이 터져도 고상해야 한다.
"내가 떠나야지! 아오 내신(교사가 전보·전출입 등 인사이동을 신청하기 위해 교육청에 제출하는 서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 내고 나갈 거야."
내신을 내고 이 학교를 아예 떠나 다른 학교로 도망가는 것은 한 학년도를 다 마친 2월에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경험상 학교를 옮기면 또 다른 고래들이 있다.
차선책은 역시 동네 맛집이다. 동네 맛집은 등 터진 새우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곳이다. 동네 음식점에 앉아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을 찾으며 '새우 등 터지게 된 소리'를 할 때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진다. 교사들은 욕도 건전하게 해야 될 것만 같은 굴레가 있다. 스스로 씌운 것일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게 씌워진 것일 수도 있다. 특히 학교 밖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럴 땐 교장선생님 아니고 사장님이 필요하다.
오늘도 우리 '사장님'이 결재를 안 해주시는 거다. 사장님 나쁘다.
"좋은 유치원을 찾고 계시다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마음이 편해야 아이들에게 칭찬 한마디라도 더해줍니다. 유치원에서 아무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으리으리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면 뭐 한답니까. 따뜻한 미소로 토닥토닥해 줄 선생님이 최고죠. 1년에 한 번씩 새로운 선생님들로 싹~ 바뀐다고요? 그래요! 거깁니다. 거기는 거르세요.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뭐 그렇습니다. "
동네 맛집에 모인 동병상련의 새우들은 각자의 속 터짐을 토로한다. 어떤 새우는 조용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어떤 새우는 음식 먹을 새도 없이 떠들면서 아픈 속을 달랜다.
맛집과 주류점을 거쳐 새우의 등은 대충 아물었다. 새우의 단순한 성격상 자고 일어나면 또 새로운 아침에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럼 내일 아침에 교장실로 가서 문서를 수정했으니 결재를 부탁드린다고 해맑게 웃을 수 있게 된다.
"역시 교장선생님의 의견이 최고예요. 아 그런데 결재는 좀 한 번에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너스레도 떨 수 있다. 사실 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그러다 보면 교육경력 30년이 넘는 사장님의 의견은 한참 후배인 내가 볼 수 없는 세세한 면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동종업계 30년이면 장인의 경지 아닌가. 그 혜안을 갖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미천하니 일단 나도 30년을 채우고 나서 미워해야지 다짐해 본다.
마음의 그릇이 깊고 넓어져서 누가 돌을 던져도 무심하게 품을 수 있는 큰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강물은 만나는 모든 것을 다 공부하고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가 된 댔다.(신영복, 처음처럼)
오늘도 맛집으로 하루 공부를 마무리하며 성장하는 새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