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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한 김선생님 Jan 26. 2022

선생님, 저는 새우알르레기가 있어요

"선생님, 저는 새우 알르레기가 있어요."

발음도 그럴듯하다. 알르레기. 알레르기?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다. 장하다.

새우볶음밥에는 새우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온갖 야채들이 가지런히 썰려 알록달록 예쁘기까지 하다.


파프리카! 웩.

감자, 당근, 양파! 웩웩.

버섯~ (고객님이 수저를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런 날에는 식판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내 눈치를 쓱~ 한번 보고는 말하는 영리한 아이가 있다.

"선생님, 저 새우알르레기가 있어요."

안 먹겠다는 뜻이다. 아하, 요놈. 1년이 다 가도록 없던 새우 알레르기가 11월 말에 생겼구나. 부모의 알림도 없이? 그래도 확인은 필요하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어머. 그렇구나.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봐야겠다."

숫자를 꼭꼭 누르자마자 아이의 두 눈이 흔들리고 두 손으로 수저를 움켜잡는다.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전쟁의 서막!

"진짜 새우 알르레긴데, 엄마는 전화 안 받아요."

"아니, 아빠한테 하는 건데? 엄마는 전화 안 받았으면 좋겠지?"

"오.. 오늘은 먹을게요. 먹어도 돼요. "

"그래, 딱 요만큼만 먹어보자. 생각보다 맛있어."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 한숨을 푹푹 쉬더니 이내 수저로 새우볶음밥 무덤을 파헤쳤다. 파프리카, 당근, 감자, 양파, 조각조각 식판 가장자리로 이주시키는 중이다. 곧 야채 무덤이 만들어졌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새우볶음밥을 하얗게 만든 뒤에야 밥을 한번 떠먹었다.

"다 먹었어요. 배불러요."

알록달록한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아이의 입에 가져갔다.

"요거 한 번만 더 먹어보자. 응?"

어르고 달래고 애원하고, 이러면 엄마한테 전화한다 협박도 해본다. 통할리 없다.  마지막 한 번만 먹자. 그러자 마지못해 수저를 낚아챈다. 그것은 아이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마지막 한 숟가락이니 자신의 의지대로 먹겠다는, 선생님이 떠먹여 주는 것은 거부하겠다는 일곱 살 형님의 굳은 의지!

새우볶음밥, 나물비빔밥, 조개탕, 매운 반찬 혹은 붉은 양념이 들어간 대부분의 메뉴, 방울토마토. 식단표를 확인하는 순간,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토하지만 말자. 제발.


먹는 것도 트렌드가 있는지 식습관 지도를 할 때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편식 지도할 때는 부모님과 반드시 상담 후에 서로의 방식을 공유해야 한다. 어떤 부모님은 억지로라도 먹여달라고 하시는 반면,  먹지 않겠다고 하면 권하지도 말라는 분들도 간혹 있다. 아이의 행복한 유치원 생활을 위해서라고 했다.  부모와 합의하지 않은  채 편식지도를 하게 될 때,  먹이지 않고 방임하는 교사가 되거나, 억지로 먹이는 아동학대 교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아이에 따라 나의 지도 방법이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이라는 게 있다면 '식판 안의 음식은 한 번씩은 꼭 먹어보기 '이다.  골고루 먹는 영양교육과도 관련 있지만 그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도 함께 가르치고 싶어서다.  


맛있게 먹자.

감사하게 먹자.

오늘도 식판을 다 비웠다. 살은 언제 빼지.

후. 급식은 항상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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