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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전문가윤담헌 May 17. 2023

금성과 목성이 만났을 때

어지러운 시국을 반영하던 금목상범

 23년 새 학기가 열리던 3월 2일 저녁 하늘에서도 이벤트가 열렸다. 해가 진 서쪽하늘에 반짝이는 두 밝은 별인 금성과 목성이 근접하게 만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금성과 목성이 서로 범하기 때문에 '금목상범(金木相犯)', 또는 '태백세성상범(太白歲星相犯)'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현상이다. 때마침 전국적으로 날씨도 맑아 어디서나 해가 지고 난 뒤 서쪽 하늘에 두 별이 만나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들 중 가장 밝은 두 별이 만나있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2023년 3월 2일 금성과 목성의 만남

이 날의 대접근은 일반 쌍안경의 배율 기준인 10x50 에서도 한 시야에서 목성과 금성을 볼 수 있고, 아래 동영상에서는 나의 꿈의 망원경인 미드 14인치에 40mm 접안렌즈를 끼어 봐도 한 시야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14인치 SCT의 초점거리가 3556mm 이므로 40mm 접안렌즈를 끼면 배율은 약 89배가 된다는 점을 참고하자.

 조선왕조 실록에는 금성과 목성이 서로 범한 사례가 적지 않다. 아래는 금성과 목성이 범한 기록이다.

천문류초에서는 목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태백상범, 대신출, 여주상 (太白相犯 大臣黜 女主喪)'

-천문류초


조선시대 형벌 중 문외출송(門外黜送)이라는 것이 있다. 죄를 지은 신하의 관직을 빼앗고 한양 도성 밖으로 추방하는 형벌이었다. 또한 천문류초에는 금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세성상범, 병패실지 (歲星相犯兵敗失地)'

- 천문류초


 현재 국제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자가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아직도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현 상황 또한 이와 맞물려 있는 것 같아 공교롭기만 하다.

 천동상위고는 숙종 때 천문학교수였던 최천벽이 고려사에 기록된 천문 기록을 당시 역사적 사실과 결부 지어 엮은 책이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고려  숙종 7년 임오년 6월 무자일. 금성이 목성을 침범하였다. 점사에 이르기를 “쫓겨나는 재상이 있으리라.”라고 하였다. 일설에는 말하기를 “군사가 패배하여 장수를 죽이리라.”라고 하였다.

이듬해 8월. 대장군 고문개(高文盖)가 은밀히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품었다가 일이 발각되어 유배되었다.

또 이듬해 정월. 동여진(東女眞)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와 정주(定州)의 관외(關外)에 주둔하였다. 임간(林幹) 등에게 명령하여 달려가 정주에서 싸웠으나 패배하였다. 윤관(尹瓘)에게 대신하게 하여 싸움을 벌여 30여 명을 참살하였다.'

- 천동상위고 (한국고전종합 DB)


 여진의 침입으로 임간이 싸웠다가 패배한 시점부터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바로 척준경이다. 이외에도 많은 기록이 있지만 유난히 눈에 사로잡힌 기록이 있다.


'공양왕(恭讓王) 2년 경오년 12월 갑자일. 금성과 목성이 같은 자리에 들었다. 점사에 이르기를 “수해와 가뭄이 들어서 기근이 들리라.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죽으리라. 상장(上將)이 주살되리라.”라고 하였다.'

- 천동상위고 (한국고전종합 DB)


이듬해 정몽주가 죽고 고려가 망하였다.


 천동상위고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금성과 목성이 만나면 '여주(女主)'가 상을 당한다는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 사람은 숙종이다. 위 표에서 보면 숙종 27년 2월 1일과 12월 15일에 금성과 목성이 서로 범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숙종 27년은 1701년이다. 조선 후기 역사, 특히 숙종 시대를 잘 아시는 분은 1701년 또는 신사년이라 하면 바로 감을 잡을 수도 있다.  금성과 목성이 만난 2월 1일부터 다시 만난 12월 15일 사이에 숙종은 두 명의 왕비를 잃는데, 바로 인현왕후와 장희빈이다.

1701년 음력 2월 1일 금목상범
1701년 음력 12월 15일 금목상범

 인현왕후는 1701년 음력 8월 14일에 사망하였고, 장희빈은 음력 10월 10일에 사망하였다. 때마침 금성과 목성이 만난 음력 12월 15일은 인현왕후의 사우제(四虞祭)를 지낸 날이었으니 비록 천변으로 점사를 치는 것은 허구라 할지라도 천변을 따라 행동하고 역사를 만드는 건 사람이 하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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