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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전문가윤담헌 Oct 31. 2022

달력의 기원

천문류초에 있는 오성개합 기록의 이해

 천문류초(天文類抄)는 세종대왕 시절 이순지가 편찬하여 이후 관상감 관원이 되기 위한 필수 교재로 사용하던 대표적인 동양 천문학 서적이다. 동양 천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고 제일 먼저 살펴보게 되는 책이 바로 천문류초이다. 이 천문류초의 제7장 오성 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上古歲名甲寅甲子朔旦夜半冬至 日月五星皆合在子 故有合壁蓮珠之瑞 以應顓帝建曆之元

상고의 해의 이름이 갑인일때 갑자 초하루 삭단야반동지에 해와 달, 오성이 자(子) 방에서 개합하였다. 고로 합쳐 구슬을 꿴 것 같은 상서로움이 있어 이에 응하여 전제(전욱)가 역법을 세우며 역원으로 삼았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삼황오제 중 한 명인 전제, 즉 전욱 고양 씨가 다스리던 시기에 일월 오성이 모여 이것을 역법의 근원으로 삼았다고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해와 달과 오성이 모인 곳이 자(子) 방이라는 것이다. 아래 방위표를 보자.

 자(子) 방은 하늘의 정북을 말하고 별자리로는 북방 칠수의 허(虛) 수가 매치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허수는 북방현무칠수인 '두, 우, 여, 허, 위, 실, 벽' 중 제일 가운데에 있는 별자리이다. 이 방위표를 볼 때 유념할 것이 있는데, 이것을 보는 시점이 바로 하늘의 중심인 북극이라는 것이다.

 실제 28수 별자리들의 위치를 하늘의 북극에서 들여다보자.

하늘나라에서 내려 본 지구와 28수의 모습

 위 그림은 우리가 '옥황상제'가 되어 하늘의 북극 의자에 앉아 내려다본 지구와 28수의 모습이다. 그림에서처럼 동양의 우주론은 하늘의 북극을 중심으로 자미원, 태미원, 천시원이 자리 잡고 외곽의 테두리, 즉 적도 부근은 28수의 별자리가 각각 청룡, 백호, 현무, 주작의 4신이 되어 떠받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서 28수가 빙 둘러진 곳 중 어느 곳을 북쪽으로 정할지는 순전히 옥황상제 마음일 것이다. 다만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북쪽을 정하는 것은 무리이므로 기준점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옛날에는 바로 그 방위의 기준이 '동지점', 즉 동지일 때 해가 위치한 지점이었다. 우선 위 그림에서 적도와 황도를 그려보자.

  시야에서 일부 벗어나 있는데 지금 보이는 황도(녹색 선)선은 적도(붉은 선)선 보다 더 아래에 위치해 있다. 이 중 가장 아래에 있는 지점이 '남회귀선'이자 동지점이고 태양의 고도가 가장 낮아 해시계의 그림자가 가장 길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동지점은 적경 좌표 18h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위 그림에서 적경 좌표 18 시인 남회귀선과 6h인 북회귀선(하지점)을 이어보자.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동지점과 하지점의 연결선을 볼 수 있다. 이 동지점이 바로 자(子) 방이자 정북 위치인 것이다. 그리고 동지점에 걸쳐 있는 4신중의 하나가 현무7수인데, 그래서 북방 현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저 동지점은 영원히 고정된 것이 아니 다. 세차 운동으로 인해 하늘의 북극이 움직이므로 여기에 맞물린 춘분, 하지, 추분, 동지점도 서서히 그 위치가 이동한다. 이때 위 그림처럼 동지점이 허수 별자리와 일치한 시기가 있었다. 이때가 기원전 1850년 전후로 이때의 형상이 지금도 그 기원이 변하지 않고 방위표에 쓰이고 있다. 2022년 현재의 동지점의 위치는 동방 창룡 칠수인 미(尾) 수와 기(箕) 수 사이에 위치해 있다. 실질적으로 현재의 정북은 방위표 인(寅) 방인 셈이다.

 잘 헛갈릴 수 있는 점이 있는데 동짓날은 동지점에 태양이 위치하고 있는 날이다. 따라서 이 날 동지점은 낮에 있고, 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황도 12궁을 이야기할 때와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2월은 물병자리인데 이때 태양이 물병자리에 있으므로 우리는 2월의 밤하늘에서 물병자리를 볼 수 없다.

 삭단야반동지(朔旦夜半冬至)라는 말은 야반(夜半), 즉 정확히 자정 시각이 초하루(음력 1일(朔))가 되며

이때 태양이 동지점에 위치했다는 말로 당연히 밤이니까 태양을 볼 수 없고, 태양과 달이 동지점에 위치한 것을 추산하였다는 뜻이다. 이렇게 역법을 만들었던 고대 동양 천문학자들의 역산술은 상상 이상으로 치밀하다.

  사실 제대로 말하면 정북은 허수 별자리와 적경 18h 선이 정확히 겹치는 시기가 아니다.


 동지점은 세차(歲次)의 영향으로 해마다 이동하므로 기준 원년에 관측된 동지점으로부터 적도 경도를 기산(起算)하여 그해의 동지점을 계산하였다. 중국의 역법에서는 허수육도(虛宿六度)를 적도 경도의 기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허 수육도는 세차를 고려할 때 B.C. 약 2000년경의 동지점이다. 『서경』「요전(堯典)」에도 동지 때 태양이 허수(虛宿)에 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중국은 B.C.약 2000년경부터 동지점을 적도 경도의 기산점(起算點)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 : 실록 위키-'허수육도')


 허수육도는 칠정산에 기록되어 있다. 28수의 별자리에는 각각 별자리의 분야를 대표하는 수거성 별이 있는데, 이 수거성을 기준으로 왼쪽으로 몇 도라는 식으로 분야를 결정하게 된다.

 허수의 수거성, 즉 기준이 되는 별은 '사달 수드'라는 물병자리 베타 별이다. 이 별에서 동쪽으로 정확히 6도 떨어지는 지점을 동지점, 즉 적경 18h 선이 통과하고 태양이 이곳에 위치했을 때를 찾아보니 아래와 같았다.

 바로 위 그림의 모습이 서경 요전에서 언급하는 고대 동양의 역법에서 적도 경도의 기산점이 되었던 동지의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흔히 단기 원년으로 보는 기원전 2333년과 비슷하게 맞물려 있기도 하는데, 단군기원이 요임금 즉위 25년 후라고 하니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고대 동양의 역법은 고육력(古六曆)이라고 해서 황제력(皇帝曆), 전욱력(顓頊曆), 하력(夏曆), 은력(殷曆), 주력(周曆), 노력(魯曆)의 여섯 가지가 있다. 전욱력(顓頊曆)은 고대 진시황의 진나라~전한 원봉 6년(기원전 105년)까지 사용하였던 역법인데 각각의 역법마다 세수(歲首), 즉 한 해의 시작인 정월을 어느 달로 하는지가 달랐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춘추전국시대에는 이른바 하력(夏曆)·은력(殷曆)·주력(周曆)이 있었는데 “하력은 1월(寅月)을 정월(세수)로 삼았고, 은력은 12월(丑月)을 정월로 삼았으며, 주력은 11월(子月)을 정월로 삼았다"라고 되어 있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에는 10월(亥月)을 세수로 삼았는데 진이 멸망 후 한나라 초기에도 그대로 따랐다. 이때의 역법을 전욱력(顓頊曆)이라 부르는데 언제부터 어떻게 쓰였는지, 역원은 언제인지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그러다가 한 무제 시절인 기원전 105년(원봉 6년)에 태초력(太初曆)으로 개정하면서 다시 정월을 음력 1월, 즉 인월로 잡은 것이다. 부연하면 원봉 7년, 동지(冬至)가 드는 11월 초하루 자시(子時)를 기하여 태초 원년으로 개정했으며, 이해 12월 말을 태초 원년의 끝으로 규정하였고, 이후부터는 매년 맹춘(孟春) 정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계동(季冬) 12월을 한 해의 끝으로 삼았다.

 즉, 태초력에서는 고대의 일부 관습에 따라 동지에 처음으로 새 달이 뜨는 날을 1년의 시작으로서 11월에 고정시킨 후, 동지와 춘분의 정확한 중간 지점인 입춘(立春)을 맹춘 정월이 시작되는 한 해의 시작으로 다시 개혁하였던 것이다.

 역의 기준점인 역원(曆元)과 관련하여 황제의 즉위년인 B.C. 2697년 갑자(甲子)년을 역원으로 보기도 하는데, 역사적 사실로는 믿기 어렵고, 신조오 신조라는 인물이 아래 기년법들의 역원을 제시하였다.


 ① 세성(歲星) 기년법: B.C. 365년(현재 간지력으로는 丙辰년)

 ② 전욱력(顓頊曆) 기년법: B.C. 366년(현재 간지력으로는 乙卯년)

 ③ 은력(殷曆) 기년법: B.C. 367년(현재 간지력으로는 甲寅년)

 ④ 태초력(太初曆) 기년법: B.C. 104년(현재 간지력으로는 丁丑년) 


 태초력에서는 역원을 원봉 7년(B.C. 104) 음력 11월 1일 갑자(甲子) 일 자시(子時)를 기점으로 개정하였다. 사기 [역서]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11월 초하루 갑자일의 아침에 동지가 드니 마땅히 원봉 7년을 태초(太初) 원년으로 고친다. 연명은 언봉섭제격(焉逢攝提格)이고, 월명 은 필취(畢聚)이고, 일은 갑자(甲子)가 되고, 초하루 자시(子時)가 동지이다.

- 사기 [역서]


 여기서 해를 나타내는 의미인 언봉섭제격은 간지로 나타냈을 때 갑인(甲寅)년이고, 초하루 자시가 동지라고 번역된 구절은 천문류초에도 나왔던 '야반삭단동지'를 말한다. 태초력의 역원을 간지로 표현하면 갑인(甲寅)년 갑자(甲子) 월 갑자(甲子) 일 갑자(甲子) 시가 된다.

 태초 원년은 B.C.104년이지만 실제로 태초력의 기준이 되는 태초 0년은 B.C.105년으로 병자(丙子)년이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은 병자년을 태초 원년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태초 개원을 통해 갑인년으로 개칭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태초력의 역원인 기원전 105년 동지에 대하여 어떤 기록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태초력은 달의 회삭현망(晦朔弦望: 그믐‒초하루‒(상하)현‒보름)이 모두 긴밀하고, 일월은 반쪽짜리 구슬이 하나로 합쳐진 것과 같고(日月如合璧), 오성은 꿰어 이어진 구슬과 같다(五星如連珠)

- 한서 율력지


 이에 대해 맹강(孟康)이 주(注)하기를 태초 상원(上元) 11월 초하루 갑자일 자시에 칠요(七曜: 일월 오성)가 모두 28수의 두(斗)·우(牛) 분도에 모였는데,  밤새도록 구슬들을 꿴 것처럼 가지런히 정렬하였다"


대요(大撓)가 북두칠성 자루(斗柄)로 점쳐서 갑자(甲子)를 만들었으므로 반드시 천지가 처음으로 시작된 시기까지 멀리 소급할 수 있다. 그러니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가 역원(曆元)이 된다. 북두칠성 자루로 점치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12달만 겨우 정할 수 있었을 뿐이다. 천지가 처음 개벽할 때 일월은 구슬이 하나로 합쳐진 것과 같았고, 오성은 구슬을 꿴 것과 같았는데 모두 견우(牽牛)의 첫째 별자리(牽牛之

初: 丑方)에서 일어났고, 이후 동지의 야반(子方)으로 정할 수 있었다.

- 만민영(明代), [삼명통회]


 즉, 시간적으로 4 갑자(四甲子)인 때에 일월 오성이 천구의 북쪽인 자방(子方)에서 일직선으로 정렬하였으며, 이때가 바로 간지기년의 역원이 된다는 상징적 설명이다.


상고(上古) 천정(天正: 갑자년)의 갑자일 초하루 자시 동지 때, 일월은 구슬이 하나로 합쳐진 것과 같았고

오성은 꿰어 이어진 구슬과 같았으며 모두 자방(子方)에 모여 역원이 되니 곧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 정각으로 여분이 없었다.

- 형운로(明代), [고금율력고]


 한서에서는 '태초력'이라 지칭했으나, 명나라 때에는 이미 한나라가 고대의 역사이므로 '상고'라고 하였고 이때 동지가 자시에 들며, 해와 달, 오성이 모였다고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럼 태초력의 역원인 기원전 105년 동지 때의 모습은 어땠을까.


 태초력의 역원이 되는 기원전 105년 동지 때의 모습이다. 태양과 달, 오성이 거의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금성의 경우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져 있지만 한서에 대한 맹강의 주석처럼 칠요가 두(斗), 우(牛) 별자리 근처에 모인 것이 보인다.

 상단의 시각은 동경 시각이기 때문에 중국 시각으로 보면 11시 반-12시 즉 자시(子時)에 태양이 동지점에 들어갔고 달도 바로 옆에 있어 삭(朔), 즉 초하루인 것도 보인다. 오성이 구슬처럼 꿰어 있다는 말은 단순히 일렬로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좌우에 포진하여 구슬을 꿴 목걸이 같은 형상을 말한다. 이 모습은 태양이 있는 낮에는 당연히 확인할 수 없고, 저녁 서쪽하늘과 다음날 새벽 동쪽 하늘의 모습을 보면서 짜 맞추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2000여 년 동안 단순히 기록으로만 전해져 오던 기원전 105년의 일월 오성의 모습을 현재의 우리는 실제 하늘의 모습이 어땠는 지를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이렇게 좀 많이 어렵지만 간추려보면, 한 무제 때 만든 역법인 태초력의 역원이 되는 기원전 105년 동지의 모습을 서술한 기록을 살펴보면 천문류초에서 이순지가 서술한 것과 동일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이순지는 여러 책과 역법을 다루면서 이 기록들을 열람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참고문헌들을 그때그때 찾아내고 PDF로 저장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 이상 대부분 기억에 의존하여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태초력의 역원에 대한 오성개합의 설명에 '전욱'이 이것으로 역원으로 삼았다는 오류가 더해졌다고 판단할 수 있다. 심지어 고육력에 '전욱력'이란 역법이 있었으므로 이순지는 단순히 전욱력이니까 전욱이 만들었다는 식으로 인식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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