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에는 밤하늘에서 수, 금, 화, 목 토 오행성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에서는 이 오행성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것을 기념하여 각 지역에서 공개관측회를 열기도 하였다.
출처 :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새벽에 수성은 해가 뜨는 시점에 너무 낮은 고도로 있어서 보기 힘들었지만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하늘에 넓게 포진되어 있는 모습은 무척 경이로운 장면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다섯 개의 행성이 밤하늘에 보이는 것을 보고 혹자는 '오성취루(五星聚婁)'라 지칭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오성취루'라는 단어가 '환단고기'에 나오는 단어이기에 이 네 글자에 푹 빠져 있는 분들이 단순히 밤하늘에 넓게 행성들이 한눈에 보이는 것도 함부로 '오성취루'라고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다.
이미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취(聚)'라는 단어가 오성이 가까이 모였을 때를 나타내는 말인데, 어떤 모양으로 모일 때 '취'라고 쓰는지는 사실 정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다. 예컨대, 다섯 개의 행성 중 겉보기 거리가 가장 먼 두 행성이 몇 도 이내에 존재할 때를 '취'라고 하는 식의 과학적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오성취'라는 단어 뒤에는 통상적으로 오성이 위치한 가장 가까운 별자리를 붙이는데,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오성취루 기록의 증거로 주장되는 기원전 1733년 오성이 모인 별자리가 '루(婁)' 별자리가 아닌 것이 판명되자 '루 '는 별자리 이름이 아닌 '일렬로 배열된 모습'이라는 확증 편향까지 마치고 말았다. 즉, 밤하늘에 오행성을 다 볼 수 있으면 무조건 오성취루인 것이다.
일반인들은 이렇게 단편적인 예를 가지고 주장하는 이들이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오성취루'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역사 기록에서 오성이 모일 때를 어떻게 표현하였는지를 찾아정확한 의미와 사용방법을 바로잡고자 한다. 여러 문헌들 중 명사(明史) 천문지에 나오는 행성취합 기록에서 오성취합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했고, 당시 밤하늘은 어떤 모양이었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명사 천문지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오성 모임 기록이 있다.
1. 1385-3-24 五星並見
2. 1387-2-19 五星俱見
3. 1403-6-17 五星俱見東方
4. 1524-2-20 五星聚于營室
5. 1624-8-27 五星聚于張
1. 1385-3-24 五星並見
'오성이 일렬로 보였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구당서 천문지에 있는 '오성병렬동정(五星並列東井)', 즉 오성이 동정 별자리에서 일렬로 배열되었다는 표현과 비슷하다. 이 날 다섯 개의 행성이 어떤 모양을 이루었는지 살펴보자.
해가 진 서쪽 하늘 지평선 부근에 수성, 금성, 화성이 보이고 상당히 떨어진 곳에 목성과 토성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금성은 목, 토에 가까워지나, 수성, 화성이 태양을 두고 반대편에 배치하게 된다. 이 날은 2022년 6월의 하늘보다는 오행성이 더 가까이 모여 있는 사례이지만 이것을 두고 '취(聚)'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2. 1387-2-19 五星俱見
이번에는 함께 구(俱)를 써서 '오성이 함께 보였다'로 해석할 수 있는 기록이다. 이 날의 밤하늘의 모습을 살펴보자.
이 날 저녁 밤하늘엔 해가 진 서쪽부터 동쪽 끝까지 수성, 금성, 화성, 토성, 목성 순으로 넓게 퍼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장 거리가 먼 수성과 목성이 거의 천구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모습이다. 이 날도 당연하게도 '취(聚)'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고 '구현(俱見)'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3. 1403-6-17 五星俱見東方
이 날도 오성이 동방에서 함께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방'이라는 방향은 태양이 위치한 방향을 시작점으로 한다는 뜻으로 태양이 동쪽에 위치한 새벽하늘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이 날도 전체 하늘을 봤을 때 동쪽의 태양 부근에 수성, 금성이 있고 화성, 토성, 목성은 서쪽 하늘에서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전체 하늘에 걸쳐 넓게 퍼져 있지만 밤하늘에서 다섯 개의 모든 행성을 볼 수 있을 때는 '구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오성구현(五星俱見)'이라는 말은 조선왕조실록에도 한 차례 나온다.
명종실록 30권, 명종 19년(1564) 5월 4일 乙巳 2번째 기사
夜, 水星見於戌地, 五星俱見西方
- 밤에 수성(水星)이 술지(戌地)에 나타났으며 오성(五星)이 모두 서방에 나타났다.
술지는 위 그림처럼 서쪽과 북서쪽 사이인데 수성이 정확하게 해당하는 방위각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행성은 조금 떨어져서 비교적 가까운 각거리 내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보통 그들이 말하는 '오성취루'의 모습과 대단히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종실록에서는 '오성취'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오성구현'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4. 1524-2-20 五星聚于營室
1524년에 드디어 '오성취'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어조사 于을 써서 '영실' 별자리에 있었다는 장소까지 기록하고 있다.
이 날의 오성이 모인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오성취'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페가수스자리인 '영실' 별자리의 아래로 다섯 행성이 모였는데 수성, 목성, 토성은 태양과 매우 가까이 위치해 있어 실제로 관측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물론 약간 떨어져 있는 금성, 화성도 마찬가지이다.
행성이 일렬로 배열된 게 아니라 좁은 거리 안에서 2개, 3개씩 무리 지어 있다. 여기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첫째로, 비록 태양이 가까이 붙어 있어 실제 관측하기 힘들더라도 오행성이 가까이 모여있을 때라는 점, 둘째로 일렬로 배열된 모양이 아니더라도 한 별자리의 분야(分野) 내에 오행성이 모였을 때를 '오성취'라고 명명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는 다음 기록에서도 한번 더 확인할 수 있다.
5. 1624-8-27 五星聚于張
마지막 기록인 1624년의 기록과 이에 해당하는 행성들의 모습은 위의 그림과 같다. 오른쪽 아래에 남방 칠수 중 하나인 '장(張)' 별자리가 보이는 데 동쪽 하늘이기 때문에 적도좌표계로 보면 태양과 오행성은 바로 이 '장' 별자리의 분야에 모여 있다. 위 그림에서 토성이 가리켜지지 않았는데 수성의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이 날 목성은 다른 네 개의 행성과 달리 태양보다 더 동쪽(왼쪽)에 위치해 있었다. 즉 오성취는 오행성이 반드시 태양의 어느 한쪽으로 모여 있어 저녁 또는 새벽에 동시에 보여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또한 모여 있는 형태가 한 줄로만 배열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일정하지 않는 간격으로 떨어져서 때로 2개씩 또는 3개씩 모여 있어도 기준이 되는 별자리의 한 분야 내에 위치할 정도로 좁은 간격일 때 '오성취'를 사용하였다.
물론 예외인 경우도 있다 한나라 때 '오성이 동정 별자리에 모였다'는 기록은 행성들이 '동정' 별자리의 분야 안에 있지 않고 비교적 간격이 많이 떨어져 있으나 '취(聚)'를 사용하기도 하여 결국 근래에 오면서 동양 천문학의 용어들도 점차 다듬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 보았을 때 2022년 6월 밤하늘의 모습은 명사(明史)와 조선왕조실록을 참고하자면 '오성취'보다는 '오성구현(五星俱見)'이라고 표현해야 합당할 것 같다. 합당한 용어를 정확히 사용하는 것부터 해야 역사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