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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몽 Apr 29. 2022

초등 영어단어 시험

초등학교 저학년 영어시간 수업, 시험 그리고 고민

초등학교에서 영어 교과서를 처음 접하는 학년, 3학년.

나는 초등학교 영어 전담교사다. 2년동안 6학년 영어 전담을 하다가 3학년을 가르치기로 한 올해는 혹여나 이 어린아이들의 영어에 대한 첫 시작을 망칠까봐 두려움이 컸다.

6학년들은 공교육 3학년부터 영어를 3년, 혹은 사교육을 그 전부터 해왔다면 그 이상의 햇수동안 영어를 접해왔기 때문에 나로선 부담없이 수업 준비가 가능했다. 적어도 알파벳을 모르는 학생들은 없을 것이고.      

그런 나에게 3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알파벳, 파닉스, 그리고 교과서 내용, 대신 흥미도 잃지 않게 등’ 무수히 많은 고려할 점들을 생각하게 했다.

3월, 4월 한 달 동안은 정말 간단한 그리팅을 할 수 있게 ‘What day is it today?’, ‘ How’s the weather?’, ‘How are you?’ 정도에 대답할 수 있는 표현들과 교과서 주요 표현인 ‘Hello! Nice to meet you?’ 까지 배우고 연습했다.     

우리 학교 3학년은 그 정도 대답은 할 수 있다. 가끔 대답을 까먹긴 하지만 어느정도 손짓이라도 힌트를 주면 단어로 라도 대답을 한다. 3월 한달을 그리팅으로 반납한 눈부신 결과다.


영어 드릴 방법은 다양하고 나는 주로 게임을 통해 이루어지게 한다.     

‘Pass the ball’은 노래에 맞춰 공을 넘기면서 노래가 끊겼을 때 공을 잡고있는 학생이 화면에 있는 영어 표현을 읽는 것이다. 

‘Evolution game은 Bug(벌레)-Chicken(치킨)- Monkey(원숭이)-Human(사람)-King(왕)으로 단계가 나누어져 있는데, 같은 단계의 친구끼리만 영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대화 후 가위바위보를 하고 이긴 사람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마지막은 선생님에게 와서 대화를 주고 받는 게임이다. 

오늘 한 게임은 ‘베스킨라빈스31’ 인데 원래는 1부터 31까지 숫자를 이어가며 말하되 한 사람이 말할 수 있는 숫자의 개수는 최대 3개로 31을 말한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이를 변형하여 숫자 대신 알파벳을 넣어서 31번째에 오는 알파벳을 읽은 학생이 승자가 되는 그런 알파벳 게임. 

나는 학생들이 ‘텔레파시’ 게임을 좋아하는 것이 제일 의아스러운데, 여러 단어 중에 선생님이 마음속으로 선택한 단어와 같은 단어를 골라야하며 그 단어를 읽으면 점수를 얻는 게임이다. 본인의 노력과 점수를 얻는 것과 전혀 무관한 확률에 맡긴 게임이라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읽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니 가끔 이 게임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게임은 복불복이라 희노애락이 가득한 게임이기도 하다.     


이렇게 3학년들과 두 달 동안 수업하며 느낀 중간 보고

① 3학년이면 선생님이 무엇을 해도 좋아한다. 

② 영어를 미리 공부해 왔던 학생이면 자신감이 차고 넘쳐서 선생님과 동급인 줄 안다.

   (선생님은 그래서 영어 몇 레벨인데요?라는 질문을 올해 받은 질문 중에 가장 웃긴 질문이다.)

③ 전체 드릴에서는 모두가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은 내가 오늘 글을 쓰게 된 결정적 이유는 ③에 있다. 말하기, 읽기는 어느 정도 나와 연습을 하면 영어에 영 자신감이 없던 학생도 혼자 주요표현을 내뱉고 친구랑 대화를 주고 받는것 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아뿔사, 쓰기는 정말이지 내가 해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영어의 각 단원마다 필수 암기 단어(?)들이 있고 대화 속에서 배웠던 단어들이라 읽는 것도 곧 다 잘하기에 욕심을 부려 쓰기 시험을 친다고 이야기했다. 이때 반응은 정말 가지각색이었다.      


‘전 학원에서 맨날 쳐서 완전 쉬워요.’

‘선생님, 저는 영어 못해요.’

‘시험 칠 때 컨닝하면 안되나요? 책상이나 공책에 적어두고 보면 안되는거죠?’

     

마지막 질문처럼 말도 안되는 질문을 받을 때면 이제 갓 2학년에서 올라온 아이들에게 영어단어 시험은 가혹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담임도 아니고 일주일에 두 번밖에 만나지 않는 전담 수업에 학생들이 영어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도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닌데 말이다.

 내가 쓰기단어 시험을 치고자 한 이유는 단지 점수가 어떻든 열심히 외웠던 기억을 남겨주고, 외우는 요령 정도만 언급하려고 했던 건데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아이들에게 부담이 컸나보다.

그렇게 꽤나 이런 저런 걱정을 하고 있었을 무렵 결국 일주일이 지났고 시험날이 되었다.   

  

“얘들아, 오늘 처음 치는 영어단어 시험이니까 못 치든 잘 치든 상관없어. 잘 모르겠는 친구는 딱 하나만 외워도 된단다. 재시험을 치는 것도 아니고 수행평가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노력한 만큼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되니까 목표는 다 다른거야. 대신 우리 한 개 이상은 다 맞추자!”
 

시험을 치고 나자마자 채점도 이루어졌다.

28명 중 8명은 12개를 다 맞추어 만점을, 5점 이상이 12명, 그 이하 8명, 대신 0점은 없는걸로! 채점된 시험지를 다시 돌려받으면서 아이들의 탄식과 환호가 교실을 가득 메웠을 때, 실은 나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시험이 끝난 다음날, 복도를 지나가는데 시험 친 반 담임선생님이 나를 붙잡으셨다.     


“선생님과 상의할게 있어서요.”

“네, 선생님.”

“땡땡이 어머님이 전화가 오셨는데 영어시간에 시험을 쳤는데, 너무 못쳐서 애가 너무 속상해 한다고 하네요. 다음 단원 시험 미리 공부할 수 있게 단어장이라도 미리 주실 수 있나해서 연락이 오셨어요. 어머님이 학원을 보낼 생각은 없으시다고 하네요.”     


맞다. 땡땡이는 시험 전부터 계속 내게 와서 단어를 보고 읽는 것도 자꾸 까먹는다고 발음을 알려달라며 3번이나 개인적으로 찾아왔던 아이다.


“아, 네 선생님. 챙겨서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땡땡이 수업 태도도 좋고 열심히 하는 학생인데 제가 다 미안할 지경이에요. 학원을 권하려고 친 시험은 아닌데. 무튼 감사합니다.”     


결국 고민했던 부분을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제3자에게 들으니 기분이 더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땡땡이에게 전해줄 영어 자료들을 이것저것 챙겨서 L자 파일에 정성스레 담았다. 그러다가 너무 많이 넣는 것도 부담이 될까봐 L자 파일에 넣은 학습지도 몇 장은 뺐다. 몇 장 안들어가 L자 파일은 얇디 얇았지만 무게만큼은 두꺼운 교사용 지도서 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덩달아 이를 전달하러 가는 내 발걸음도 무거웠다. 담임선생님을 통해 비밀리에 L자 파일이 땡땡이에게 전달되었다.     


다음 땡땡이네 반 1교시 영어 수업 시간.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갑자기 땡땡이가 조심스럽게 또 부리나케 뛰어나오면서 아주 나지막하게 말했다.      


“선생님 학습지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꽁꽁 얼어있던 호수가 와장창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얼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며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피가 도는 느낌이랄까.     


‘그래, 이런 학생들도 있으니까.’     

문득 내가 아이들에게 시험치게 하는 행위를 포기하고 싶었던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을 치며 괴로워하는 몇몇 아이들을 못견뎌 결국 마음이 편하려고 ‘시험’을 의심한 것 같았다. 졸지에 나의 시험 의도도 의심했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믿기로 했고, 땡땡이의 다음 시험을 믿기로 했다.      

그냥 정말 내 의도만큼, 한 개라도 맞추면 잘 한거고, 이번 시험보다 다음 시험이 조금 더 나아지면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옆에서 내가 그 보조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인생 10년차 괴팍한 영어선생님 때문에 인생의 쓴맛을 느꼈을지언정 포기하면 안되니까! 더 즐겁고 재미있는 영어 수업들로 아이들을 만나야겠다:)           


덧붙여 집에서 신경을 써주시는 땡땡이 부모님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우리 아이 기죽지 않게, 지금 학교에 모든 3학년 아이들이 내 아이들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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