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몽몽 Oct 17. 2022

어른의 감정사전-질투나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하니 어색합니다

요즘 ‘어린이들의 감정 사전’이 초등학교 선생님들 사이에서 핫한 이슈입니다. ‘뿌듯하다.’ ‘ 장하다.’ ‘보람차다.’ 등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아이들은 어떨 때 느끼는지 적어보는 건데요. 그 감정에 대한 예시들이 모여 글을 이루는 일종의 책입니다. 예를 들면 어린이 감정사전의 ‘보람차다’에는 ‘반 친구들끼리 청소를 함께 하고 깨끗해진 교실을 바라보았을 때’ 그리고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동생을 목욕시켰을 때.’와 같은 글들이 실려있답니다. 이렇게 다양한 상황들에서 느끼는 감정을 정리하고 표현과 접목하여 아이들의 감정표현을 고무시키려는 선생님들의 노력의 일종인 셈이죠.


하물며 어린아이들에게도 중요하게 감정을 구별할 줄 알고 표현할 수 있는 게 중요하게 생각되는데, 어른인 여러분들의 감정은 안녕하신가요? 어린이의 눈으로 본 깨끗하고 순수한 상황의 감정 묘사만 보다가 문득 어른의 감정 사전은 어떨까 재미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얼마나 다양한 감정을 느꼈는지 혹시 세어보실 수 있을까요?


그리하여 오늘은 제 ‘어른의 감정 사전’에 오랜만에 느낀 ‘질투나다’, ‘시샘하다’  챕터를 채워보려고 합니다. 아직 저 어립니다. 뜬금없이 어리다는 말에 어이가 없을텐데 제 질투나는 감정이 너무 하찮고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는 제 감정이라 솔직하게  용기 내 적어봅니다.

 대학생 때부터 함께 지내던 동아리 친구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동아리원 모두가 친하진 않지만, 서로 동고동락하며 지내왔던 시절이 있기에 애틋한 편입니다. 어쩌면 저만의 착각일 수도 있죠. 그러던 어느 날, 그전부터 사이가 삐걱대던 동아리원 친구로부터 손절을 당했습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이기적인 행동을 흐린 눈 하지 못하는 저인지라, 그런 행동들이 보일 때마다 친구에게 태클을 걸었던 건 사실이니까요. 친구 눈에 저는 미워 보였겠죠. 뭐, 저도 잘한 건 없습니다. 저도 손거스러미 마냥 걸리적거리는 친구인데 미련없이 떠나보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손절당하는 순간이 직장동료로 있다가 타이밍 맞게 이직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게 웬걸. 제가 가입한 새로운 동아리에 또 그 친구가 있는 겁니다. 이번에는 결혼 소식을 가지고 왔네요. 저한테 결혼 소식을 직접 알린 적은 없지만 제 주변 이 사람 저 사람 들쑤시며 돌아다니며 결혼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제가 모를 리 만무하죠. 결혼, 뭐 축하해줄 수 있습니다. 근데 저 마음에 ‘질투’가 차오르게 하는 건 그녀의 결혼 소식보다는 그녀가 맨 백이었던 겁니다. 누가 보아도 예비신랑이 사준 것 같은 가방!

그 가방을 본 날 남자 친구한테 어리석게도 저는, 있는 핀잔 없는 핀잔을 끌어모아 남자 친구에게 퍼부어대며 남자 친구를 괴롭히는 표독스러운 여자 친구가 되었답니다. 그리곤 남자 친구의 다독임에 일차, 심적 내전을 가라앉혔습니다. 하지만 오늘 수면 밑으로 내려가나 싶었던 내전이 다시 발발했답니다. 하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연하게 sns를 보고 백을 두 개나 사줬다는 걸 알게 되니까 속이 쓰리더라고요. 으아아아악!!!

1차 내전 때, 저의 마음을 헤아려주시고 남자 친구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셨던 남자 친구의 지인분들이 하신 ‘1등 해서 서울대 진학 유망주로 촉망받던 여자 친구는 떨어지고 그 반에서 별 볼 일 없던 애가 서울대를 붙은 격’이라는 찰떡 비유가 오늘 또 생각나버렸습니다. 제 속 마음은 이기적인 아이가 얼마나 남자 친구를 꼬셔서 가방을 받아냈을까. 얼마나 영특한 방법으로 그것도 두 개나 사달라고 했을까 라는 생각으로 온통 잠겨버렸죠. 압니다. 그깟 가방, 그냥 없어도 그만인 거.  

단지, 그 친구가 너무나 괜찮은 사람과 결혼하면 어쩌지 하며 친구의 불운 바라고 있는 겁니다. 말로는 밉지만 결혼하면 축하는 해줘야지 하면서도 제 마음은 쿨하지 못하게 구차했네요. 근데, 구질구질한 감정을 느꼈던 이까지만 감정사전에 들어가면 이 글을 시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냥 감정만 내뱉으면 배설이지만 느낀 교훈이 있다면 글이 될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뭐 나름 교훈도 얻었습니다  

으아아아악! 끝엔 갑자기 미소 짓고 있었거든요. 백을 사주는 능력의 남자도 좋지만 제 남자 친구와 늙어서 함께 차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스윽하고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시샘의 벽틈 사이로 흐뭇함이 졸졸졸 새다가 결국 팡! 하고 와르를 벽이 무너져 버리며 허파를 치고 갔네요. 저도 사전을 여러 감정으로 채울 깜냥은 있습니다. 또 다른 감정을 느끼는데 다만 골똘한 생각과 시간이 걸릴 뿐.


가방에 대한 판타지는 없앱니다. 가방은 언젠가 빛이 바래고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주기엔 너무나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이 문득 드네요. 둘이 지나온 삶을 단순히 물건이나 외모로 식별 기는 어려운 것처럼요. 당연히 고생 안하고 사신 어르신들이 뽀얗고  흔적이 상대적으로 덜하긴 하겠다만.


더불어 그럼 친구의 남자 친구는 아직 미지의 사람이고, 단정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남자 친구는 사랑하지 않을래야 안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도 합니다. 제 스스로에게 영특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사람이니까요. 이 사람아! 그 순간에 왜 늙은 얼굴을 하고 나와 차를 마셔서…….

그제야 비로소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네요. 정신승리인가요?  

가방 받은 시집갈 친구야, 잘 살고 적당히만 살아라. 이 정도 응원해줄 마음이 생겨 기쁜 하루입니다.

제 마음사전에 하나 더 추가하겠습니다 ‘후련하다’-‘오늘 복잡했던 마음을 글로 남기며 나 스스로 그 마음을 정리했을 때’


작가의 이전글 진짜 물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