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들의 학용품 이야기
‘영어 단어 시험지 교과서 젤 앞에다가 붙이세요! 선생님이 돌아다니면서 확인할 겁니다.’
한참 있다가 3점짜리 시험지가 나풀나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포착했다.
‘이거 왜 아직도 안 붙였어?’
‘풀이 없어요.’
‘풀이 없으면 빌리면 되지~친구한테 빌려서 붙이렴.’
갑자기 책가방에서 물통을 꺼내더니 물을 책상에 부어버린다. 그리곤 시험지 뒤에 책상 끝자락을 흥건 적신 물에 사진 인화 작업을 하는 것처럼 조심스레 담근다.
‘이렇게 하면 교과서에 붙어요. 촥!’
교과서에 풀이 아닌 물풀로 시험지를 붙여 뿌듯해하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인화를 하려 들어간 암실 속에서 살고 있는 세상과 단절된 혹은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존재라고.
마르면 시험지가 다시 교과서에서 떨어질 테지만
다음 영어시간에
건조되어 나풀나풀 또다시 떨어지는 시험지를 만나면 그때 말해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