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2023.09.08

by 영빈

시작.

단어를 딱 마주했을 때 떠오른 감정은 설렘이다.


자주 사용하는 단어여도 계속 단어를 곱씹어보면 외국어처럼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 그렇다. ‘시작’이라는 한 단어를 적어놓고 며칠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아, 이어지는 내용을 적어야 하는데 무슨 말부터 적어야하지? 모니터 화면 속에 마우스 커서만 속절없이 깜빡깜빡거린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잽싸게 단어 뜻을 검색해본다.


시작 (始作)

어떤 일이나 행동의 처음 단계를 이루거나 그렇게 하게 함. 또는 그 단계.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시작이 있다. ‘시작’이라는 것에 누군가는 설레고, 다른 누군가는 두려움을 느낀다. 처음이기 때문에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 당연하게 예고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에 설레거나 두려울 것이다.


나에게 ‘시작’인 순간을 말하라고 한다면, 2년 전 처음 서울에 상경했을 때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짧은 인생의 제2막이 펼쳐졌다.

보통의 사람들은 직장을 구하고 그 근처에 살 집을 구한다. 그것만이 진리인양 수학 공식처럼 내 머릿속에도 오랜 시간동안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공식이 깨어진 건 21살, 내 친구의 지인이 서울에 상경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방세를 내고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그 당시에 큰 충격과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아, 꼭 서울에서 직장을 갖지 않아도 서울에 살 수 있구나!'


하지만 그 자극으로 바로 서울 상경하는 영화 같은 전개는 이어지지 않았다.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다. 그날로부터 2년 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은 일부러 집과 떨어진 곳으로 구했다.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집을 벗어나 자취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3년 동안 자취를 해보니, 자취란 인터넷에서 떠도는 말로 ‘지금부터 유료로 호흡하겠습니다’였다. 번 돈을 쓰기만 하다가 이제 정말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년간 자취 생활을 접고 부모님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몇 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독립을 갈망하게 되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돈을 못 모우더라도 난 이 집을 나가야겠다.'


독립과 함께 서울에서 살고 싶다던, 마음속 깊이 어딘가에 묻혀있던 생각들도 솟아올랐다. 때는 2020년, 한창 전 세계에 코로나라는 역병이 돌 때였다. 그 날따라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서 유난히 잠이 안 왔다. 집에서 혼자 깨어있던 새벽,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다가 역병 걸려서 죽어버리면 서울에서 한 번도 못 살고 죽으면 어떡하지?’


외국도 아니고 같은 한국땅인데 못 살 게 뭐가 있지? 이렇게 다음 다음으로 미루다가 정말 못 살고 죽겠다! 한 번 자취를 하고나서 부모님 집에서 같이 살자니 못 살겠다! 생각을 끝으로 서울에 자취를 하리라 결심했다.

결심하기까지가 오래 걸렸지, 서울로 올라가겠다는 인생에 있어서 큰 선택은 단순하게 결정을 내렸다. 초등학생 때 소풍날을 기다리는 듯이 하루하루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서울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시간은 느린 듯 빠르게 지나갔다. 드디어 2021년 2월, 퇴사하고 이틀이 지나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미래의 나에게 거는 무모한 기대와 함께.

당연하게도 서울에 올라온다고 해서 갑자기 없던 직장이 구해지고, 새로운 진로를 찾고, 내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 당장 내일 앞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고, 서울에서 나를 기다리는 안락한 보금자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려움보단 설렘이 가득했다.


“서울에 사는 건 어때?”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난 서울 좋아. 사람이 많긴 하지만,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고, 그만큼 기회도 많아.”


준비한 듯이 대답을 늘어놓는다. 이 대답이 거짓은 아니지만, 전부는 아니다. 내가 서울 상경을 이토록 갈망하고 원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내 선택으로 주변 환경을 바꿀 수 있고 그 선택에 책임도 질 수 있다는, 인생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단 생각에서였다.

가끔씩 ‘내가 여기 서울에서 뭐하고 있지?’하고 무기력해질 때면, 2년 전 겨울을 떠올린다.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배낭과 내 몸의 절반만한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렸을 때, 두 팔 벌려 나를 반겨주는 이는 없었지만 ‘진짜로 서울 생활 시작이구나’하고 느꼈던 그때 벅차오르는 설렘을 기억한다.

‘시작’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설렘이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그 날의 시작이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런 지나간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꾸준히 쓰고자하는 지금의 마음을 갖게 해준 것처럼 말이다. 새롭게 시작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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