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를 향하던 길을 떠올립니다. 그 길은 트레킹 내내 마차푸차레를 시야에 두고 걷는 여정이었습니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를 거쳐 다시 쉼 없는 이동 끝에 비로소 ABC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히말라야는 제게 '정직한 단계'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ABC의 안주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보고 싶어 서울대학교 팀과 함께 히운출리봉 중턱으로 향했습니다. 남들이 멈추는 곳 너머, 더 험하고 높은 곳에서 숨을 몰아쉬며 바라본 마차푸차레는 말로 다 못 할 위엄으로 저를 압도했습니다.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히운출리봉도 아니고 안나푸르나 3봉도 아닌, 바로 마차푸차레의 참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소동파의 <제서림벽(題西林壁)>을 떠올렸습니다.
橫看成嶺側成峰 (횡간성령측성봉): 가로로 보면 산맥이요, 옆에서 보면 봉우리라
遠近高低各不同 (원근고저각부동):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은 모습이 저마다 다르네
不識廬山眞面目 (불식여산진면목):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것은
只緣身在此山中 (지연신재차산중): 단지 이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라네
소동파는 산 안에 있기에 그 산의 전체를 볼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노래했습니다. 나 역시 ABC의 품 안에만 있었다면 그 진면목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히운출리가 기꺼이 제 몸을 내어준 덕분에, 비로소 나는 마차푸차레를 온전히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과분하게 마주한 브런치의 출판 제안을 앞에 두고, 저는 그때 히운출리 중턱에서 올려다보던 마차푸차레를 생각했습니다. 출판 작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치열한 수련의 결실인지 잘 알기에 그 제안은 영광스러웠습니다. 결코 출판의 세계를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정상이 너무도 높고 귀하기에, 이제 막 글쓰기의 베이스캠프를 구축한 제가 서둘러 정상을 탐하기에는 스스로가 너무나 부족해 보였습니다.
아래서부터 계속 보이는 이정표, '신중함'
마차푸차레는 트레킹 시작점부터 내내 시야에 머물며 길잡이가 되어주는 산입니다. 제가 출간을 뒤로 미룬 것은 기성 작가님들이 일궈놓은 문장의 성채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는 신중함 때문입니다. 조급하게 깃발을 꽂기보다, 히운출리 중턱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뎠던 그 정직한 오르막처럼 매일 써 내려가는 과정 자체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정복'이 아닌 '경외'의 마음으로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존경하듯, 저는 마차푸차레의 정상을 비워둔 네팔인들의 경외심 또한 존중합니다. 250편의 글을 쏟아냈음에도 여전히 주제문 하나에 흔들리는 저를 발견합니다. 아직은 수련이 더 필요한 '초보'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제가 출판이라는 거대한 산을 대하는 예의라 생각했습니다.
나만의 호흡으로 걷는 길
저는 '출간 작가'라는 타이틀을 서둘러 획득하기보다, '마차푸차레를 바라보며 묵묵히 걷는 수행자'의 마음으로 2026년을 살려 합니다. ABC에 만족하지 못하고 히운출리를 향했던 그 열정으로, 제 문장들도 요행을 바라지 않고 본질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당장 책을 내지 않더라도, 제가 걷는 이 길 자체가 이미 작가의 삶이라 믿습니다. 마차푸차레가 정상을 비워둠으로써 히말라야의 가장 고결한 상징이 되었듯, 저의 이 '보류' 또한 제 안의 글들이 더 깊게 발효될 시간을 벌어주는 소중한 기다림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정상을 탐내기보다 내 발밑의 정직한 원칙을 봅니다. 언젠가 제 글이 마차푸차레의 햇살을 닮아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조심스럽게 다음 발걸음을 내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