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배려 사이에서
한 달 전, 한 지인의 초청으로 여러 명이 점심을 하였다. 그중 한 지인이 커피를 사겠다며 나섰지만, 그가 주차를 하는 사이 다른 이가 계산을 마쳐버렸다. 미안해진 지인은 "아, 내가 사려 했는데! 조만간 점심 한 번 같이해요."라며 다음 약속을 제안했다. 그렇게 오늘의 약속이 잡혔고, 단톡방을 만들어 세부 사항을 공지하기로 했다. '약속의 시작'이다.
이런 약속에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다. 약속 날이 다가오면 주인공이 확정 공지를 올리는 것이다. 이른바 ‘컨펌’이다. “이번 주 화요일 잊지 않았지? 몇 시에 어디서 보자.”라고 말이다. 그러면 다들 기다렸다는 듯 화답하며 '약속은 완성'된다.
그런데 약속 당일 아침이 밝았는데도 단톡방은 고요했다. 막역한 사이라면 내 성격상 며칠 전이라도 먼저 물었을 것이다. “언제 네가 점심 산다는 날인데, 기억하고 있지?”라고. 하지만 이번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적으로는 이제 막 알아가는 단계라, 나의 확인 연락이 자칫 ‘약속을 지키라’는 부담이 될까 봐 조심스러웠다.
순간 나는 깊은 갈등을 하였다. 잊었을지도 모를 상대를 위해 챙겨주는 것은 분명한 '배려'다. 또한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나머지 세 명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에게는 상대가 민망하지 않게 조용히 기다려주는 것이 더 큰 '배려'라는 마음이 있었다. 결국 나는 연락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약속의 완성'을 주인공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한 것이다.
배려라는 이름의 두 마음이 부딪히는 동안, 사람 사이의 거리와 예의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느꼈다. 주인공이 약속을 기억해 점심을 먹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잊었다 해도 괜찮다. 오늘의 망설임 덕분에 나는 타인을 배려하는 ‘기다림’을 배웠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배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