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재정의: 방임에서 건축으로

by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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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재정의: 방임에서 건축으로



글쓰기 강의를 들을 때마다 마주하는 거대한 장벽이 있다. 선생님의 열강은 뜨겁고 제시하는 템플릿도 훌륭하다. 이해도 쉽다. 그러나 그것을 나의 실제 쓰기에 적용하는 일은 늘 아득하다.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평생 이런 식의 논리적 설계를 연습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가르친 국어 선생님들조차 상황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늘 문득 그 이유를 복기해 보니, 문제는 우리가 배워온 수필의 정의, 그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있었다.



흔히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 한다. 형식이 없기에 자유롭다는 말이다. 그런데 '무형식'이라는 방임이 우리를 더 막막하게 만든다. 아무런 설계도 없이 망망대해에 던져진 붓이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제 수필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 수필은 방임이 아니라,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을 정밀하게 설계한 뒤 비로소 문장을 얹는 건축이다.



서양의 글이나 책을 읽다 보면 그 명쾌함에 무릎을 친다. 특히 미국 교육의 핵심인 토플(TOEFL) 에세이를 보면 철저한 '룰'이 존재한다. 서론의 첫 문장에서 주제(Thesis Statement)를 선언한다. 꼭 그래야만 한다. 뒤따르는 '컨트롤링 아이디어(Controlling Idea)'의 개수에 맞춰 본론의 단락을 구성한다. 본론은 컨트롤링 아이디어를 주제문으로 표현하며, 구체적인 사례로 이를 증명한다. 결론에서 다시금 요약하며 쐐기를 박는다. 구조가 탄탄하니 오해가 없고 비문이 설자리가 없다. 이해가 쉬운 것은 작가의 현란한 수사 덕분이 아니라, 정교한 설계 덕분이다.



반면 우리의 글쓰기는 어떤가. 이른바 '좋은 작가'의 글조차 모호함 속에 독자를 가두어 두는 경우가 많다. 구조가 부실한 글은 미사여구로 치장해도 결국 사상누각일 뿐이다. 만약 우리 국민 모두가 오늘 강의와 같은 합리적인 '글쓰기 룰'을 익힌다면, 소통의 비용은 줄어들고 서로의 진심에 닿는 길은 훨씬 넓어질 것이다. 구조가 잡히면 나머지는 그저 표현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써 내려가는 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본래 산문(Prose)이란 형식을 탈피한 모든 문학 형태를 통칭한다. 소설이 '장산문'이라면, 우리가 접하는 수필, 일기, 수기 등은 '단산문'이다. 여기서 흔히 혼용되는 에세이(Essay)는 엄밀히 말해 논리적 증명이 우선시되는 '소평론'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가 마음을 담아 쓰는 이 글은 에세이의 범주를 넘어선다.



우리가 쓰는 글은 수필이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차가운 논리의 에세이가 아니라, 신변잡기적이고 서정적인 미셀러니(Miscellany)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형식을 빌려 지식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붓 가는 대로 삶의 궤적과 철학을 담아내는 것. 설계라는 단단한 뼈대 위에 서정이라는 따뜻한 살을 붙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글쓰기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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