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꾸어 놓은 경험: 입장 바꿔 생각하기

by 박성기


나를 바꾸어 놓은 경험: 입장 바꿔 생각하기



나는 지난 50년 동안, 내가 가진 적은 것이라도 그것이 간절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며 살고자 애써왔다. 그 시작은 1974년 8월 11일, 중학교 2학년 소년이었던 그날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나는 기적과 같은 세 번의 호의를 입었다.



산청 차황(차황면 실매리)에서 진주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나는 절망을 맛보았다. 어머니께서 학생증 지갑에 넣어두셨다던 차비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빈 지갑을 펼쳐 보이며 그날 아침 모자간에 있었던 대화를 안내양 누나에게 자초지종 설명했다. 차비를 미리 확인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눈앞이 아득했다.



하루에 단 한 번 다니는 시골 버스였기에, 정류소까지 나와 아들을 배웅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안내양 누나도 보았을 것이다. 자식을 차에 태워 보내며 차비조차 챙겨주지 않을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그녀는 소년의 입장이 되어 나의 당황한 고백이 거짓이 아님을, 그리고 이것이 어머니와 나 사이의 사소한 착오에서 비롯된 일임을 이해해 주는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다음 승객의 차표를 받으러 갔다. 그것은 우리 모자의 진심을 믿어준 신뢰의 시작이었다.



진주 터미널에 도착한 내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였다. 산청으로 돌아가 빚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원래의 목표였던 부산으로 향할 것인가. 회군(回軍)은 비교적 쉬운 길이었고 무임승차의 빚도 바로 갚을 수 있는 길이었다.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옳은 길'이었다. 그게 내가 배운 정의였다. 그러나 어머니께 그런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부산행이라는 목표를 꺾고 싶지 않았다.



전진은 의도적인 무임승차를 해야 하는 비양심적인 모험이었지만, 나는 차부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어느 쪽이든 무임승차의 무게가 동일하다면, 나는 그 무게 위에 내 꿈을 싣기로 했다. 무임승차 도중에 하차당하더라도, 그 길은 부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요금이 가장 싸고 느려 승객이 적은 완행버스를 ‘희생자’로 선택해 올라탔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양심의 표현은 그것뿐이었다. 버스가 김해 진영 부근에 다다랐을 때 공포의 검표가 시작되었다. 제일 뒤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다시 빈 지갑을 펼쳤다. 왜 무임승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여기서 내리라면 내리겠습니다. 아니면 부산 입구까지만이라도 가게 해주십시오. 제가 어른이 되면 꼭 이 은혜를 ... "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 안내양은 버스 앞쪽의 기사가 상황을 눈치챌세라 무심한 듯 다음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 누나는 내 모습에서 타지에서 길을 잃을 뻔한 동생의 모습을 발견했을까.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마침내 도착한 부산 가야동의 낯선 거리. 서대신동까지 가야 하는 막막한 길 위에서 나는 이정표 같은 분을 만났다. 하얀 모시적삼을 입으셨던 분께 말을 걸었다."어르신, 서대신동 가는 방향은 어디인지요? 걸어가려면 얼마나 걸립니까?" "이리로 가면 되는데, 학생 걸음으로는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릴 텐데..."



선생님은 부산까지 오게 된 나의 우여곡절을 묵묵히 들어주셨다. 그러다 내 가방 속 방학 숙제 책을 꺼내 달라고 하여 일일이 살펴보시더니 물으셨다.



"숙제를 이미 다 끝낸 방학 책을 왜 이리 무겁게 들고 다니느냐?"



나는 숙제는 끝냈지만 내용을 더 익히고 싶어 자꾸 보려고 들고 다닌다고 대답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 했다. 선생님은 갑자기 크게 웃으셨다. 요즘 시쳇말로 빵 터지셨다. "요즘 보기 드문 참 애어른 같은 학생이구나"라고 칭찬해 주셨다.



선생님은 100원 지폐 한 장을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시며 서대신동으로 가는 68번 마이크로버스 타는 법까지 일러주셨다. 지리 선생님이셨던 그분은 뙤약볕 아래 서너 시간을 걸어야 할 학생의 막막한 입장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려주신 것이다. 나는 이 감사함을 잊지 않기 위해 방학 책 귀퉁이에 함자를 남겨달라고 청했다. 선생님은 ‘낙동고등학교 지리선생 박우상’이라고 정갈하게 적어주신 뒤, 인자한 표정으로 당부하셨다.





"세상의 빛이 돼라."





나는 그러겠노라 약속하며 깊숙이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다. 그분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세를 유지했다. 당시 학생 차비가 15원이었으니, 내 손바닥에 놓인 100원은 길 위에서 만난 스승이 건네준 자애로운 응원이었다.



나는 지금도 산청과 진주의 안내양 누나들, 그리고 지갑에서 자신의 몫을 꺼내 나눠주신 박우상 선생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산다. 그날 세 분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차례로 호의를 베풀어주셨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기적은 철저히 나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주신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가야동 거리에서 책으로만 보았던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참뜻을 가슴 깊이 새겼다. 그날의 기억은 혼자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을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하는 내 평생의 삶의 지침이 되었다.



"환경이 의지를 꺾을 수 없다"라는 나의 믿음은, 사실 나를 대신해 고민해 주었던 그분들의 '입장 바꿔 생각하기'가 만들어낸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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