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청'의 후예들, 88CC에서 봄을 열다

by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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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청'의 후예들, 88CC에서 봄을 열다>



2026년의 새봄을 여는 첫 라운드, 88 컨트리클럽의 필드 위에서 신비스러운 형상을 마주했습니다. 무심코 올려다본 청솔가지 사이 틈으로 드러난 푸른 하늘이 역삼각형의 구도를 그리며 내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그것은 내 고향 산청(山淸)의 지도와 닮아 있었습니다. 고향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과 그 땅의 정기가 빚어낸 뜻밖의 만남이었습니다.



산청은 과연 어떤 곳입니까.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이 우뚝 솟아 기운을 뿜어내고, 황매산의 정기가 굽이치는 영험한 땅입니다. 가야국 구형왕(김유신의 선조)이 신라와 손을 잡으며 미래를 도모한 약속의 터전입니다. 고려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 한 알로 온 백성의 추위를 녹인 민생 경제의 발상지입니다.



또한 남명 조식 선생이 '경의(敬義)' 정신으로 동강 김우옹과 홍의장군 곽재우를 키워내 국난을 극복하게 한 의로움의 뿌리입니다. 신의(神醫) 허준 선생과 유의태 선생이 인술로 생명을 구한 치유의 땅입니다. 성철 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사자후로 마음의 길을 밝힌 성지입니다. 현대 미술의 거장 하종현 화백에 이르기까지, 산청은 대한민국 정신의 거대한 지형도를 그려왔습니다.



우리 산청 사람들은 예부터 척박한 땅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면서도 결코 환경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안동에 하회마을을 감싸는 낙동강이 있다면, 우리 산청에는 지리산 바위틈을 뚫고 솟구치는 경호강이 있습니다. 안동의 물길이 유려한 곡선의 미학이라면, 경호강은 굽이치며 역사를 실어 나르는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좌안동 우산청'이라 부르며 산청의 기개를 영남 유학의 으뜸으로 칩니다.



그 기상은 실질적인 결실로 증명되었습니다. 산청은 진정한 '영남 인재의 산실'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산청과 단성 지역은 약 500여 명에 달하는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며 그 위상을 떨쳤습니다. 경상우도 감영이 있는 진주에서 생원시와 진사시를 치르고, 도적들조차 과거장으로 향하는 선비들의 의기(義氣)에는 길을 비켜주었다는 육십령을 넘어 한양으로 갔습니다. 이러한 여정은 산청인 만이 가진 '척박함을 이긴 뜨거운 교육열'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산청 사람들은 서울로 서울로 모여듭니다. 세계사에서 이스라엘이 그러했듯, 우리 산청은 작은 땅에서 가장 거대한 정신적 영토를 일궈내며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습니다.



오늘 88CC에 모인 동향(同鄕)들은 바로 그 강인한 뿌리를 공유한 사람들입니다. 오찬장과 필드 위에서, 그늘집에서, 그리고 만찬장에서 나누는 도란도란한 고향 이야기는 어제와 오늘을 잇는 가교가 됩니다. 고향에 산불이 나면 내 집 일처럼 가슴을 태우고, 수해가 나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가 손길을 보태는 그 투박하고도 진한 정이야말로 산청인의 진면목입니다. 그 마음의 깊이는 어느 큰 모임보다 단단하고 웅숭깊습니다. 우리는 그 당당한 '좌안동 우산청'의 후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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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88골프장의 500년 된 모과나무를 보며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모과나무는 세월의 풍파에 깎여 마치 고사목 주목처럼 거칠어 보입니다. 그러나 가을이면 어김없이 탐스러운 결실을 맺습니다. 바로 저 나무는 우리 산청인의 삶을 보여 줍니다.



오늘 소나무 가지가 하늘 위에 그려준 산청의 지도는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이 결코 외롭지 않으며, 고향의 정기가 언제나 우리를 비추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경호강의 기개와 '우산청'의 자부심을 아로새기며, 500년 된 모과나무처럼 이 모임이 오래도록 향기를 발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잔정이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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