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정하라

by 박성기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정하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가장 분주한 길이 우리를 가장 많이 속인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의 말이다. 라이언 홀리데이의 <데일리 필로소피>에서 내가 오늘 챌린지 글감으로 선정한 문장이다.

우리는 흔히 다수의 뜻이 곧 선(善)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사안의 본질이나 합리성 여부를 오직 '머릿수'로만 결정하려 한다. 그것을 민주적이라 믿으며 다수결의 뒤에 숨곤 한다. 그러나 다수결은 의사결정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정의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진리는 숫자에 의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어느 사단법인의 회장 선거 관리 위원장으로 선임된 나는 냉혹한 진실을 목도했다. 회장 선출을 마치고 나서 나를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선임했던 이사회의 효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발견했다. 회장 선출을 위한 대의원총회의 구성조차 부적법하여 위법인 것으로 보였다. 내 손에 든 법인에 대한 객관적 자료와 나의 양심은 이 선거가 '무효'라고 외치고 있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명확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법인을 정상적인 궤도 위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내가 모르는 법인의 정보가 자료가 있으면, 보완이 가능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래서 법인의 서류에 대하여 정보공개 청구를 하였다. 그러나 신임 회장은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했다. 나는 결국 주무관청을 통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동안 법인이 은폐해 온 치부들을 발견했다. 자본금은 사라졌고, 주무관청에 제출한 서류들은 위조, 날조서류가 많았다. 법인의 운영은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져 있었다. 법인이란 공적 감시와 회계 투명성, 정관 준수라는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길임에도 말이다. 회장에게 내가 수집한 자료의 진위, 사실관계를 확인 요청하였으나 회장과 회장주변세력들의 조직적인 비난이 되돌아왔다. 결국 법원에 선거무효 판단을 구하자 회장은 사임서를 제출했다.


사건이 법원의 시간 속에 있을 때,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정관을 통해 대행자를 선출하는 등 법인의 고유 활동을 이어가야 마땅하다. 하지만 회장 주변 세력들은 회장의 사임을 핑계로 사원을 해체하였다.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그들은 이런 상황을 원칙을 바로 세우갰다는 나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냥 걸으면 되는 거지, 법인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대충넘어가자는 항변도 있었다. 이번 기회에 법인을 해산하자는 말도 나왔다. 법보다 군중심이였다. 많은 사원들이 나에게 적대감을 보였다. 게다가 아무런 권한 없는 총무가 법인의 활동을 중단시키는 무책임한 결정을 했다. 법인의 존립 이유인 'DMZ 걷기'조차 내팽개쳤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자, 그들은 이제 '동호회'라는 이름으로 DMZ를 걷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왜 그들은 법인을 버리고 동호회를 택했는가. 공적인 틀 안에서는 자신들의 치부를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책임과 감시가 따르는 '법인'보다는, 사적 모임인 '동호회'가 그들에게는 훨씬 편하고 분주한 탈출구였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 길을 따라 우르르 몰려가며 그것이 대세라고 말하지만, 다수가 간다고 해서 틀린 길이 맞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려 분주한 길로 달아날 때, 누군가는 멈춰 서서 잘못된 길임을 선언해야 한다. 비록 외롭고 험한 길일지라도 양심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묵묵히 걷는 것, 그것이 한 인간으로서 내가 지켜내야 할 마지막 주권이기 때문이다. 환경이 아무리 비겁함을 강요해도, 나도 그 길이 편함을 모르지 않으나 나의 의지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기준이 없는 삶은 유랑일 뿐이다. 그 기준은 대중의 함성이 아닌, 공정과 정의라는 벼랑 위에서 겸손과 절제의 등불을 들고 스스로 세워야 한다. "다수가 간다고 해서 벼랑 끝이 평지가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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