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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북촌 선비의 아들, 뇌룡정의 외손서가 되다

by 박성기
KakaoTalk_20251213_220039522.jpg 남명 조식


제2장 북촌 선비의 아들, 뇌룡정의 외손서가 되다


1. 북촌 지기(知己)의 굳건한 인연


을묘사직소(1555년)가 한양 도성을 뒤흔들었을 때, 그 피 묻은 직언의 중심에 서 있던 남명 조식과 그의 오랜 지기였던 김희삼(金希參)의 인연은 남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김희삼의 부친 김수양이 왕의 측근인 승정원 좌승지(承政院 左承旨)를 지냈고, 남명 조식의 부친 조언형 또한 승문원 판교(判校)를 지냈습니다. 두 가문은 한양 북촌(北村)의 명망 높은 관료 집안이었습니다. 합천 본가에서 다섯 살 무렵 북촌으로 이주한 남명은, 여섯 살 어린 김희삼과 함께 학문과 경세(經世)의 뜻을 품었습니다. 그들의 청년기는 맑고 곧았습니다.


그러나 두 선비의 꿈은 기묘사화(1519년)의 피바람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조정이 권신들의 손에 놀아나는 것을 목격한 그들은 출세에 환멸을 느꼈고, 관직을 버리는 길을 택했습니다. 남명은 김해 산해정(山海亭)에서 18년간 학당을 연 뒤, 합천으로 돌아와 '실천 유학(경의사상)'이라는 자신만의 울타리를 쌓았습니다. 김희삼 또한 미련 없이 고향 성주에 칩거했습니다.


비록 몸은 멀어졌으나, 김희삼은 퇴계 이황, 남명 조식 등 당대의 거유들과 서신과 만남을 통해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타락한 조정에 실망했지만, 무너진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을 후계자를 키우는 것이 자신의 남은 사명이라 확신했습니다.



2. 난세를 짊어질 어린 영혼의 운명


을묘년, 남명 조식의 피 묻은 직언이 한양까지 전해지자, 삼척부사를 지내고 성주에 있던 김희삼은 깊은 감회에 잠겼습니다.


김희삼: (서재의 고요 속에서 홀로 중얼거립니다) “역시 남명답다. 남명다워.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는 때, 그만이 저리 통렬할 수 있다니.”


그날 깊은 밤, 김희삼은 겨우 열네 살이 된 넷째 아들, 김우옹의 작은 공부방을 찾아갔습니다. 소년의 눈빛은 아직 세상을 알지 못했으나, 그의 아버지 눈에는 이미 이 나라의 희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김희삼:


“우옹아. 네가 읽는 책이 곧 이 나라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의 벼슬은 의미가 없다.


너에게 난세를 바로잡을 경의(敬義) 정신을 심어줄 스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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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 김&장, FBI, 법무사협회, 서울시법무사로서 40년을 법조(행정)분야에 종사하였습니다. <생활법률, 창과 방패>, 자기계발, 역사인물 등 다양한 브런치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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