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새로 만들고 싶은 습관: 성직자 같은 관용

by 박성기

새해에 새로 만들고 싶은 습관: 성직자 같은 관용


내가 새해에 만들고 싶은 습관은 신부님 같은 관용이다. 살면서 누구나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맥락을 놓친 말, 상황에 어긋난 행동, 혹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억지를 마주할 때 우리는 당혹감을 느낀다. 나 역시 법 없이도 사실만큼 올곧으셨던 아버지를 닮아, 남의 잘못을 이해하려 애써왔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나의 기대를 낮추며 인내해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달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이를 마주하며, 내 안의 평정심은 거센 시험대에 올랐다.


그러다 오늘, 운현궁에서 내 인생 처음으로 실제 ‘봉창’과 마주했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봉창은 작고 허름한 구멍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운현궁의 봉창은 유난히 크고 널찍했으며, 무엇보다 내 예상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 잠결에 손을 뻗어 두드리기엔 너무나 아득한 높이였다.



KakaoTalk_20251228_002702765.jpg?type=w1 운현궁의 봉창


그 높은 봉창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흔히 비유하는 ‘봉창 두드리는 사람’들은 어쩌면 낮은 벽의 구멍을 찾는 이들이 아닐 수도 있다. 저 높이 달린, 결코 열리지 않는 창을 문이라 믿으며 허공에 손을 휘두르는 이들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에게 그 벽을 두르리는 소리는 간절한 탈출 소음였겠지만, 지켜보는 이에게는 그저 공허한 소음일 뿐이다.


가톨릭 신자로서 나는 이 ‘봉창 빌런’들을 만날 때 어떻게 내 인격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화를 내자니 나 또한 그 소음의 일부가 되는 것 같고, 무시하자니 가슴속에 답답함이 있다. 하지만 오늘 본 운현궁의 봉창은 나에게 새로운 대답을 주었다.


내가 올 새해에 기르고 싶은 습관이 하나 생각났다. 그것은 바로 ‘내 마음의 층고를 높이는 인내’다. 봉창이 높이 달려 있어 내 손에 닿지 않듯, 상대의 엉뚱한 소리가 내 인격의 마당에 내려앉지 못하도록 내 영혼의 높이를 들어 올리는 것이다. 상대가 두드리는 곳이 문이 아니라 벽임을 증명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벽을 두드리는 소리는 결국 벽 안에서만 공허하게 울릴 뿐, 마루에 당당히 서 있는 나를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직자와 같은 관용이며 하느님의 아가페적 사랑에 닿으려는 노력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던 그 긍휼의 마음과 닮아 있다.


누군가 내 앞에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낸다면, 나는 운현궁의 그 높은 창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 지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저 높은 곳의 빛을 문으로 착각하고 있군요’라는 연민 섞인 여유와 함께. 이러면 또 건방지다고 할까.

소란스러운 봉창 소리에 휘말려 내 인격을 더럽히기 싫다. 높은 봉창을 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에 감사하려고 한다. 원칙이 무너져 소음이 심한 시대에 내 인격을 우아하게 지키는 방법이다. 올해 나의 기도는 이것이다.



"주님, 저로 하여금 저 높은 봉창을 바라보게 하소서.


소음은 벽에 머물게 하시고,


제 영혼은 오직 당신의 햇살만을 담게 하소서. “



그래도 이런 나를 우롱하거나 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설 때는 법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평범한 내가 성직자 흉내를 더 이상 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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