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로 정말 서울 집값을 잡을 수 있나요?

현대부동산우화

by 서점직원

2014년. 세종시 출장을 위해 아침 일찍 KTX에 몸을 실은 서점군.

생애 첫 단독 출장. 두려운 마음과 설레는 마음이 교차하던 출장길에서 만난 세종시의 풍경은 서울과 사뭇 달랐고 또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택시기사님의 은밀한 제안,
오송 드리프트가 탄생시킨 새로운 기득권


세종시의 인상적인 풍경은 오송역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오송역에서 정부청사가 있는 세종시까지 거리는 18km. 오송역에서 세종시로 가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1. 배차간격 20분, 이동 20분이 걸리는 BRT(간선급행버스)를 타고 간다 (요금 약 1,200원)
2. 쿨하게 택시를 타고 간다. (요금 약 25,000원)

회사 돈을 내 돈같이 여기는, 골수 깊은 곳까지 회사원이었던 서점군. 평소 같았으면 저렴한 BRT를 탔겠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피곤하기도 했고 사장님이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기 때문에 쿨하게 택시를 하나 잡아탑니다.

오송역 택시는 굳이 행선지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쑥한 정장과 서류가방을 든 청년이 오송역에서 택시를 탔다면 그건 십중팔구 세종시에 출장 온 회사원이었을 테니까요. 흔한 인사말과 농담 몇 마디로 승객을 곁눈질하던던 기사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승객이 호구라는 사실을 깨닫고 은밀한 제안을 하나 건넵니다.


기사님 : 회사 출장 오셨어요? 오송역에서 저희 콜 불러주시면 2만원 넘는 금액은 페이백 해드릴 테니까 담배값이나 하시죠.


호구였지만 잔머리는 빨랐던 서점군. 기사님의 제안을 단박에 이해하고 머리속으로 열심히 계산기를 두들겨봅니다.


- 서점군이 지불한 택시비(카드) : 25,000원

- 서점군이 기사님에게 받은 현금(페이백) : 5,000원

- 서점군이 실제 지불한 택시비 : 20,000원

- 서점군이 경영지원팀에 제출한 택시비 영수증 : 25,000원

- 서점군의 손익 : +5,000원


서점군은 기사님에게 25,000원짜리 택시 영수증과 현금 5,000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경영지원팀에 택시 영수증을 제출해 25,000원을 받았죠. 실제 지불한 금액은 2만원, 경영지원팀에게 받은 출장경비 2만5천원. 서점군은 출장길에 택시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오천원의 공돈이 생겼습니다.


osong_1.png
osong_2.png
사진출처 : 충북MBC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2019년 기준 청주시의 택시는 총 4142대로 적정 택시총량인 3443대에 비해 699대가 많습니다. 오송역에서 정부청사로 가는 택시수요는 한정되어 있는데 청주시(오송 관할 지역) 택시 수가 워낙 많고 그들끼리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손님 유치를 위해 이런 편법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거죠. 거기다가 청주시와 세종시는 관할 지역이 달라 오송역에서 세종시까지 택시를 타면 20%의 시외 할증요금이 추가됩니다. 접근성은 떨어지는데 택시 요금은 KTX 보다 비싼 이상한 오송역. 왜 이런 구조가 된걸까요?


art_14774874409133.jpg KTX 세종역 신설 반대 시위 중인 오송읍 주민과 청주 정치인 (사진출처 : 충북일보)

공무원들과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KTX 세종역 신설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미 기득권이 되어버린 오송읍 주민과 청주 정치인들이 똘똘 뭉쳐 세종역 설치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140316_7032_833.jpg 세종시 개인택시 지부의 공동사업구역 반대 집회 (사진출처 : 세종메일)

세종시의 분쟁은 KTX 세종역뿐만이 아닙니다. 2017년 기준 세종시의 택시 대수는 총 283대로 급격한 인구증가에 따른 택시 부족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청주시 4147대 / 대전시 8850대) 인근 지자체이며 택시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전과 청주시가 세종ㆍ청주 택시 공동사업구역(청주 택시가 세종시에서 영업이 가능하도록 구역 통합)을 주장하고 있지만 세종시가 극렬 반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크기변환_30a272dc38f111be47e45c8dea8ebfed.png 천안아산분기(좌), 오송분기(우) / 자료출처 : 누리위키

KTX보다 비싼 택시요금, KTX 세종역 반대.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핌비 현상이 어우러져 탄생한 철도 역사 최악의 삽질 오송 분기. 오송 분기가 아닌 천안 아산 분기였다면,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고 경제성의 논리로만 접근했다면 오송역과 세종역이라는 논란도, 세종시 택시기사들의 시위도 없었을 겁니다. 정부의 정책실패가 양산한 새로운 기득권 세력, 그리고 그들이 기득권을 지키는 방법을 보여주는 모범사례라고 할 수 있죠.


지역 이기주의 희생양이 된 공무원들과 회사원들은 오늘도 불편한 이동과 비싼 요금을 지불해가며 오송역과 세종시를 오가고 있습니다.





2만 명의 공무원, 2만 가지의 사연


세종시 출장길이 설레었던 건 첫 단독 출장 때문만은 아니였습니다. 1기 신도시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고 청소년기에 서울로 이주해 일평생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던 서점군.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의 전부가 서울과 경기도뿐이었던 서점군은 누구보다 수도권 집중화의 폐해를 온몸으로 겪은 세대였습니다.


급격한 출생인구의 증가로 오전 오후반을 나눠야 겨우 수업이 가능했던 국민학교, 높은 입시 경쟁률로 몸살을 겪은 수험생시절, 서있기만 해도 지치는 콩나물 시루같은 지하철. 서점군은 지방분권과 행정수도 건설을 통한 인구분산만이 치열한 경쟁사회를 완화하고 살기좋은 서울을 만들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종시는 그런 그의 희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꿈같은 도시였죠.


그런데 서점군이 세종시에서 만난 4명의 공무원은 그의 기대와 조금 달랐습니다.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공무원 여성과 결혼한 30대 초반 황사무관 (세종시 아파트 거주)

외벌이 40대 초반 최주무 관 (세종시 원룸 거주, 주말부부)

육아휴직 중인 공무원 부인을 둔 30대 후반 한주 무관 (세종시 원룸 거주, 주말부부)

서울에서 사업하고 있는 남편과 함께 사는 50대 초반 김주사 (광명 거주, KTX 출퇴근)


서점군이 세종시에서 만난 4명의 공무원들은 한 분을 제외하고 세종시로 거처를 옮기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알법하더군요.


나이도 젊고 부인도 공무원인 데다가 아이도 없었던 황사무관님은 쉽게 세종시에 터를 잡고 살 수 있었지만 (공무원 우선 분양권은 보너스) 두 분의 주무관님들은 육아와 아이 교육 문제로 주말부부를, 50대 김주사님은 남편의 사업과 고등학생인 아이들의 교육 문제 때문에 광명에서 출퇴근하는 대안을 선택하셨습니다.



sejong_1.png (좌) 자료출처 :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실, 세계일보 / (우) 자료출처 : 한국경제신문

2014년 10월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이 밝힌「세종시 공무원 이주계획 전수조사」에 따르면 세종시로 이전한 행정기관 공무원 중 16.1%가 나홀로 이주, 15%가 수도권 출퇴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세종시 이주는 연령층이 높을수록 더 어려운 것으로 확인되었는데요. 한국경제신문이 기재부 과장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86.2%가 세종시에 혼자 살거나 서울, 수도권 등지에서 출퇴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응답자들은 이전하지 않는 이유로 배우자 직장문제 31.3% / 자녀교육 31.2% / 퇴직예정 및 파견복귀 16.3% 를 꼽았는데요. 특히 자녀가 있는 공무원 7097명 중 자녀와 함께 세종시로 이주하는 공무원은 3711명(52.2%)으로 전체의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같이 어울려 밥 먹고 담배 피우면서 그런 얘기들을 듣다 보니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주위 풍경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 자리마다 붙어있는 BRT와 KTX 오송역 시간표. 평일에는 텅텅 비었다가 금요일 밤만 되면 헤드라이트 행렬을 이루는 고속도로. 생각보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은 어렵습니다. 세종시의 공무원들은 각자 나름의 방법을 찾아 적응하고 있었고요.


이때부터 지방분권은 사실 허상이 아닐까? 수도권 집중화를 타파하기엔 이미 늦은 게 아닐까?

지방분권이라는 이름으로 괜히 지방 집값만 들쑤시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블랙홀'이 된 세종시


sejong_1.PNG 2020년 6월 기준 세종시 총인구 (자료출처 : 세종시 홈페이지)

2012년 세종시 출범 이래 8년간 세종시 인구는 11만명에서 35만명으로 급격한 성장을 보였습니다. 이 자료만 보면 세종시는 당초 목표대로 국토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sejong_3.PNG
sejong_2.PNG
세종시 순 유입인구 조사 / (그래픽 : 중앙일보) (자료 : 통계청)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에서 세종시로 거처를 옮긴 사람은 총 2만 3362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경기권의 경우 3만 676명으로 8년동안 수도권 인구 충 5만 4038명이 세종시로 이주한건데요. 그렇다면 세종시 인구 35만명 중 수도권에서 온 5만 4천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세종시 순 유입 인구 통계조사표를 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대전에서 세종시로 이주한 인구는 총 10만 1천명, 충북은 2만 3천명, 충남은 2만 2천명으로 14만 7천명이 세종시 인근 대전, 충남, 충북에서 이주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세종시 전체 인구 중 42%가 대전, 충청권에서 이주해온 인원이고 수도권 이주 인력은 15%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된 거죠. 행정수도의 인구 분산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전문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0-2016년 동안 누적 순 유입인구가 가장 많았던 세종시는 누적 순 유입인구가 14만여 명으로 2016년 세종시 인구의 약 60%를 차지하였다. 이중 60%인 85천명은 대전 및 충청권에서 유입되었고 30%인 43천명은 수도권에서 유입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세종시 순 인구 유입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변수들을 통제했을 때 대전시에서 세종시로 인구 이동이 큰 기여를 했지만 서울, 인천, 경기로부터의 기여도는 미미하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검정하고 있다.

인구이동의 이론을 고려하였을 때 수도권의 거주자에게 세종시의 경제적 유인력이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 잠재적 경제적 이익을 발생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반면 세종시의 인근에 위치한 대전이나 충청도 지역에서의 세종시 전입이 많은 이유는 유인력이 높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세종시 건설에 따른 수도권 인구 분산 효과 - 한국지역개발학회지 이지현, 전명진 (2018) -
sejong_4.PNG 자료출처 : 세종포스트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2020년 1~5월까지 순이동자수 통계에 따르면 세종시로 이주한 인원은 3736명으로 대전 2652명, 충남 422명 이 유입 / 서울 -362명, 경기 -341명 유출로 주변 도시의 인구는 빨아들이고 있지만 수도권 인구는 유입을 넘어 되레 세종시에서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인 김태년 의원이「국회 통째 이전론」이라는 극약 처방을 들고 온 건 이러한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이대로 두면 수도권 인구 집중은 막지 못한채 주변 인구만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테니까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이는 세종시를 바라보는 수도권 주민들과 충청권 주민들의 인식차 때문입니다. 충청권 주민들은 잘 정돈되고 저렴한 신축아파트가 많은 신도시라는 관점으로 세종시를 바라보고 있는 반면 수도권 주민들은 교육, 생활, 인프라가 부족한 공무원들이 사는 신도시라는 관점으로 세종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세종시의 이미지는 살기 좋은, 살고 싶은 행정중심 복합클러스터가 아니라 충청에 새로 생긴 신도시라는 이미지가 되어버린거죠.


세종시를 중심으로 중앙부처와 혁신기업을 유치하여 주변 도시로 클러스터 효과를 확산하겠다는 청사진은 이미 유명무실해진 상황입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이춘희 시장은 후보 시절 '광역도시계획을 통해 주변 도시 역할과 기능을 분담하여 빨대효과를 해결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말했지만 한 도시에 인구가 늘어나면 다른 도시의 인구가 줄어드는 '제로섬 게임' 이라는 현재 상황이 지속된다면 세종시는 앞으로 충청권의 인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세종시의 집값만 들쑤시는 수도이전


sejong_5.png

여권발 행정수도 이전 이슈 이후 세종시의 집값은 연일 신고가를 갱신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호가가 2~3억씩 뛰고 전용면적 85㎡ 호가는 10억 원대로 서울에 근접해있으며 세종시의 집값 상승률은 14.13%로 전국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국정 철학이자 소신'이라는 이유를 들어가며 행정수도 이전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2017년 19대 대선과 2020년 21대 총선에는 왜 국정 철학이자 소신을 주장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급작스럽게 꺼낸 '수도이전카드'가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국면 전환용 카드가 아닌가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는 대목이죠.


수도이전은 백년지대계입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래 600년 이상 수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울을 옮기는 건 많은 논의와 치밀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세종시 중앙부처 이전 이후 누적된 행정 비효율을 해소하기 위해 행정수도이전은 꼭 필요합니다. 단 행정수도이전이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한 카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행정수도 이전이 서울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건 세종시를 통해 이미 증명된 명제고요. 정치 논리에 휘말려 졸속으로 행정수도이전을 진행한다면 제2의 오송드리프트, 정책실패가 낳은 새로운 기득권 세력의 등장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정치적인 논리와 이해관계가 아닌 행정의 중심지로, 반쪽짜리 행정수도가 아닌 진정한 행정수도로 거듭날 수 있는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기대해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영구임대에 저당 잡힌 희망, 희망을 거세당한 청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