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혹독한 적응기
돌이켜 보면 첫째 육아는 쉬웠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실수투성이에 잘 키우지 못할까 두려웠지만 생각보다 잘 해냈다. 어려서부터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뱃속 아이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이후부터는 육아서도 꾸준히 읽으며 공부했다. 내가 자라오면서 부모님에게 배운 것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그리고 공부하면서 정립한 나만의 육아관. 아이는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자라주었다. 물론 걱정이 되는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와 똑 닮은 성향의 아이는 언제나 내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나와 같았기에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내 마음도, 아이의 마음도 잘 다독여줄 수 있었다. 남편 하나만 보고 온 낯선 땅에서 바쁜 남편의 도움을 크게 받지 못하고 혼자서 아등바등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이만큼 큰 것은 내가 그만큼 잘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사실 그때는 내가 이런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깨닫지 못했었다는 것이 맞겠다.
그리고 어느 날, 둘째가 우리에게 왔다. 임신기간 지독한 입덧부터 출산에 대한 두려움까지. 내 인생에 둘째는 없을 것이라고 늘상 이야기해왔었다. 분만실에 누워 아이가 세상에 처음 나와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들었던 마음은 아 드디어 끝났다, 이제 내 평생 다시는 이 고통을 겪을 일이 없겠구나 라는 안도감이었다. 둘째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내가 임신기간부터 출산, 육아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옆에서 지켜보았던 남편은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내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물론 주변에서, 특히 친정엄마와 이모가 혼자면 외롭다며, 둘은 있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했지만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랬던 내 마음을 흔들었던 것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딸에 대한 로망이었다. 아이를 갖기도 전부터 딸이었으면 했고, 아들인 걸 알았을 때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이루지 못한 로망이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했던 내 마음 문의 빗장을 열었다. 오십 대 오십의 확률. 성별을 알기 전까지 걱정 반, 설렘 반. 그리고 딸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드디어 나도 딸 엄마가 되는구나. 직구하면서 늘 부러워하기만 했던 예쁜 원피스들, 앙증맞은 머리핀. 마음껏 누려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쯤 되면 누구나 예측이 가능하지 않은가. 인생에는 언제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생기기도 전부터 오매불망 기다렸던 이 쪼그만 아이는 제 오빠와는, 아니 나와는 너무나 다른 생명체였다. 그리고 둘째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내가 좋은 엄마라서가 아니고, 내가 잘해와서가 아니고 그저 첫째가 잘 커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와 아이의 기질 궁합이 그저 잘 맞았을 뿐이라는 것을. 첫째가 순하고 FM인 아이였던 것이다. 엄마가 하지 마라는 것은 안 하고, 정해진 것을 잘 지키는 아이. 그리고 계획적이고 예측 가능 범위 안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 우리는 최고의 조합이었다.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왜 이다지도 둘째는 어려운 것일까.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서 지인은 내가 첫째는 거저 키운 거였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서운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그 한마디가 날 정신 차리게 해 주었다. 세상에 같은 아이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첫째를 키웠던 방법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첫째에게 통했던 것들의 데이터를 가지고 둘째를 키우려다 보니 불협화음이 일었던 것이다. 새로 시작해야 했다, 둘째 맞춤형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딸에 대한 내 로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일단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옷 값이 그리 아까울 수 없었다. 첫 1-2년은 오빠 옷을 물려 입혔다. 그리고 주변 여기저기서 옷을 물려받다 보니 새 옷을 살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야 옷을 사 입히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예쁜 옷이어도 제 맘에 들지 않으면 입질 않는다. 그래서 사놓고 한 번도 제대로 입히지 못하고 그대로 물려준 옷도 있다. 그저 주는 옷은 무엇이든 잘 입던 아들과는 달리(아차, 또 비교 금지) 이건 목 카라가 까끌까끌해서 안 입고, 저건 달린 수술이 무서워서 입지 않는다. 단추가 조금만 꽉 쪼이는 것 같으면 자꾸 벗으려고 하다 보니 최대한 디자인이 심플하면서 소재는 부드러운 것으로 골라야 한다. 예쁜 원피스는 언감생심이다. 앙증맞은 머리핀은, 그냥 남의 집 딸들을 보며 만족하는 것으로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머리핀은커녕 머리끈으로 묶으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얌전히 머리만 묶어줘도 감지덕지라고나 할까.
고집은 또 어찌나 세었는지 규칙이고 나발이고(격한 표현 죄송합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법이 없다. 내가 만든 이유식이건, 시판 이유식이건 어느 것 하나 한 입 제대로 삼켜보지도 않고 뱉어낼 때부터 알아봤다. 지금도 제 먹고 싶은 걸로만 먹는다. 이걸 먹어야 아프지 않고 건강해, 그래야 쑥쑥 자라. 이런 말들은 당연히 통하질 않았다. 그래서 한 번씩 저거 먹으면 엄마가 쿠키 줄게라고 타협하는 엄마가 되었다. 첫째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저 순순히 엄마가 정해준 길로 걸어왔던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어려서부터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나는 독립적인 인격체 이노라고, 나도 나로서 존중해주라고 말이다. 그래서 배웠다. 아이는 내 맘대로 하는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한 살 아기일지라도 너의 취향과 기호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엄마인 나도 또 한 뼘 자랐다, 네 덕분에.
둘째는 사랑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너무나도 식상한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첫째를 외롭게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날 그렇게 힘들게 하는 둘째보다는 여리고 맘 약한 아들이 자꾸 눈에 밟혔었다. 그런데 이제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다. 내 첫사랑, 내 자긍심인 아들은 애틋한 사랑이라면, 둘째 딸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무얼 해도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다. 혼나고 나면 고개 숙여 눈물 뚝뚝 떨구다 한참을 시무룩해하는 것이 아들이라면, 이 아이는 큰 소리 내어 엉엉 울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내 품에 안겨 애교를 떤다. 나를 닮아 표현하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아들만 키우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엄마 좋다고 고백해주는 이 아이가 미치도록 사랑스럽다. 어떨 때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다가도, 어떨 때는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 내 기분을 널뛰게 하고,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게 하는 것이 이 아이다. 이 작고 작은 아이가 너무 빨리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품에 쏙 안겨 뽀뽀를 퍼붓는 이 순간이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아이들이 있어 나는 참 행복한 엄마다. 너무 많이 들어서 닳고 닳은, 뻔한 구절이 마음에 콕 박혀 사무칠 때가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그렇다. 언젠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뒤로 들려오는 까르르 웃어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리워지는 날이 오겠지. 창 밖 너머로 보이는 샛노란 단풍과 파란 가을 하늘이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날이 오겠지. 내가 그냥 무심히 흘려보내는 오늘도, 훗날의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할 시간이다. 그래서 단 한순간도 의미 없이 보내고 싶지 않다.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마음을 담아서 보내야지. 잠시도 손에서 떼지 못하던 핸드폰을 고이 내려놓고 아이들을 꼭 한 번 안아주어야겠다. 그리고 눈을 맞춰 사랑한다 고백해야지. 읽어주라고 내내 조르던 책들, 몇 번이고 읽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