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그림책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한 엄마의 이야기
결혼 전 언어학을 전공하면서 외국어는 아이가 모국어를 충분히, 잘하게 되었을 때 가르쳐야겠다는 소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영어강사 출신이면서도 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 아무런 영어 노출도 하지 않고 키웠다. 한글을 읽고 쓰는 것도 7살이나 되면 가르쳐주고 그전까지는 글에 제한되지 않고 그림을 보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랬던 바람은 아이가 4살 겨울 즈음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무너졌다. 유독 책을 좋아해서 말리지 않으면 하루 종일도 책을 펼치고 놀았던 첫째는 둘째가 태어난 그 해에 가르쳐주지도 않았던 한글을 뗐다. 그래서 그다음 해, 아이가 이 정도면 우리말에도 능숙해졌다 싶어서 영어를 시작해보려고 마음먹었다. 가르친다기보다는 그냥 소리를 듣고 그림책을 읽어주는 '노출'의 개념이었다.
따로 뭔가를 시킬 생각은 없었기에 영어 노래를 함께 듣고 영어그림책을 읽어가는 엄마표영어 노선을 선택했다. 워낙 책을 좋아하는 아이이기에 아무런 걱정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아뿔싸! 이미 혼자 읽을 줄 아는 아이에게 영어그림책은 단순한 책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영어'책. 알아들을 수도 없는 꼬부랑 말로 써진 재미없는 책.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이는 그즈음 그림책보다는 자연관찰/수과학 등 논픽션 위주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아이에게 영어 수준에 맞춘다고 한두 줄짜리 그림책을 들이밀었으니 재미없을 수밖에. 아이가 더 재미있는 한글책을 찾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 사이에서 제법 당황한 엄마인 내가 있을 뿐.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고 싶진 않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영어라면 치를 떠는 아이들을 정말 많이 만나봤기에 내 아이도 그런 길을 걷게 하긴 싫었다.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대학에 들어가 휴학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순간까지도 영어에 자신 없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시험대비 과목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면서도 가장 자신이 없었던 과목이었으니까. 수능 외국어영역 시험 시간에는 듣기 문제 풀 때부터 너무 당황을 해서 문제가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경험도 했다. 흰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씨였다. 무슨 정신으로 시험을 마쳤는지도 알 수 없었다. 또 그때 생긴 두려움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는데도 재수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 트라우마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나도 영어를 재미있게 배운 뒤부터는 달랐다. 그렇게 영어 겁쟁이이던 내가 영어 강사도 하고 대학원에서는 영어로만 수업을 들었다. 늦게 시작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걸, 내 자신이 먼저 증명해냈으니까. 지금 당장 싫어한다고 해도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다만 좀 더 일찍부터 노출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시작해보기로 했다. 내가 먼저 그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우연히 좋은 프로젝트를 만났고 다른 엄마들과 함께 영어그림책 읽기를 시작했다. 좋은 소개글은 덤이었다. 아이를 위해 내가 먼저 공부해보고자 시작했던 영어그림책 읽기였는데 주객이 전도됐다. 영어그림책은 아이들이 읽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이 그림책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고, 또 어떤 날은 같이 읽은 누군가와 치열하게 의견교환을 하기도 했다. 이전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책 한 권이 일상에 가져다주는 기쁨이 컸다. 오늘은 또 어떤 책을 읽게 될까라는 기대감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하루하루 선물 받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영어그림책에 빠져들었다. 한 명 한 명 소중한 나의 최애 캐릭터들도 생기고, 아이들 등원시키고 나면 커피 한 잔 내려와서 그림책을 펼쳐두고 가만히 한 구절 한 구절을 마음에 담았다. 책장에 책들이 빼곡히 채워지는 만큼 내가 누리는 기쁨과 열정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 좋은 걸 나만 누릴 수 없어서 소개하고 SNS로 간간히 나누다 보니 <영어그림책 읽는 엄마>라는 또 하나의 부캐가 생기기도 했다.
또 어쩌다 보니 소기의 목적도 달성이 됐다. 엄마인 내가 너무 즐거워하면서 매일 읽고 듣다 보니 아이들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고 옆에 앉기 시작했다. 영어그림책 읽자고 하면 마지못해 한 권 겨우 들어주던 아이도 지금은 가뭄에 콩 나듯 이긴 하지만, 먼저 영어그림책을 빼오는 일이 제법 있다. 매일 밤 자기 전 아이마다 한 권씩 골라와 읽고 자는 잠자리독서 루틴도 생겼다. 생각지도 않던 4살 둘째도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되어 오빠보다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은 부수적인 것이다. 물론 아이에게 읽어주는 것이 제1의 목적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평생에 그림이라곤 잘 쳐다보지 않던 미술 젬병인 나에게 그림의 매력을 알려준 것이 바로 영어그림책이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도 그림보다는 글씨에 집중하고 읽어나가기에만 급급했었다. 그래서 그때도 몰랐다. 그림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줄 수 있는지를. 이제는 새 책을 받으면 앞표지, 뒤표지부터 살펴보고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그림을 음미해본다. 때로는 글로만 전하기에는 부족하다 싶은 스토리와 의미들이 그림을 통해 내 안에 들어온다. 우리들이 읽는 긴 소설책 한 권보다는 훨씬 더 짧은 호흡으로 읽는 이 영어그림책이 나에게 인생을 이야기하고, 내 삶의 태도를 점검하게 한다. 때로는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위로를 조심스레 건네기도 하고 어린아이처럼 깔깔거리며 큰 소리 내어 웃게 만들기도 한다. 어린아이가 보는 것이라고 치부하며 결코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계속 읽어나가려 한다. 이 것을 시작하게 만들었던 프로젝트는 끝이 났지만 이 영어그림책만은 계속 가지고 가려한다. 그래서 이 기쁨과 즐거움을 같이 나눌 수 있는 동지이자, 이 결심을 오래 유지하게 해 줄 러닝메이트를 구하고자 새로운 모임도 만들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을 담는 그릇이 온전하지 못하면 오래갈 수 없다. 그 빛은 바래고 결국은 그 쓸모를 잃게 된다. 그 그릇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모임은 그 노력의 일환이다. 내가 쉽게 포기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나에게 들어온 이 반짝반짝 빛나는 보물을 놓치고 싶지 않다. 나에게 남겨진 시간들 동안 쭉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