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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 Sara Feb 10. 2022

나를 채우는 조각 하나, 친구

17년차 우정에 대한 고찰


"컵케익 먹을래?" 


저녁 시간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면서 톡으로 수다를 떨다 갑자기 친구가 물었다. 몇 달 전 같은 아파트 같은 동으로 이사 온 후부터 종종 이렇게, 소소하게 먹을 것을 하나 둘 챙겨주곤 한다. 어느 날은 직접 싼 김밥, 어느 날은 포장해온 떡볶이가 너무 많다며 조금. 또 어느 날은 아이 등원시키고 들어가는 길에 샀다며 연락도 없이 벨을 눌러 빵 하나. 그리고 오늘은 컵케익. 남편을 시켜 받아와서는 맛있게 잘 먹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져왔다. 이렇게 작은 거 하나라도 내 생각 해서 나눠주는 친구가 곁에 있네, 나에게도.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친구가 많은 사람은 아니다. 인간관계가 그리 넓질 못하다. 한 달 전 인스타에 책을 읽고 나서 MBTI는 개소리다,라는 피드를 올렸던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나는 ISTJ다. 살면서 열댓 번은 더 테스트를 해봤던 것 같은데 51 대 49 정도로 비슷한 T와 F를 제외하면 나머지 걸과 값들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그것도 너무나 확고하게 극으로 치달은 I와 S와 J. 완벽한 내향형. 친구가 많지 않다고 하면 조금 불쌍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살아오면서 친구가 많은 삶을 지향해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 좀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나에게 남은 몇 없는 친구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친구다. 그것도 무려 17년 차 친구. 



스무 살, 대학 신입생 시절에 동아리에서 만나 이어온 인연이 여기까지 왔다. 첫 만남이 어땠는지는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난 또 뭐 쭈그리처럼 낯가리면서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만 될 뿐. 같은 학교 1학년에 같은 신앙을 가지고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나와 그 아이의 사이에는 공통분모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늘 밝고 스스럼이 없이 다가가는 성격이라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던 그 친구와 몇몇의 사람들과만 터놓고 지냈던 나는 언뜻 보기에 친해질 이유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도 먼저 살갑게 다가와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저 그렇게 지나가고 말 사이였는지도 모른다. 그 뒤로는 왜, 무슨 이유로 친해졌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우리는 서로의 자취방 혹은 고시원에서 같이 먹고 자는, 그런 동고동락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의 연애사도 쭉 지켜봐 왔고(그런 남자하고는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라는 조언도 했으며) 이십 대 시절에 만 할 수 있었던 치기 어린 방황의 순간들도 함께 해 왔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내면서 잠시 멀어지는 듯해 보였다. 



그러다 친구가 결혼하면서 남편을 따라 내가 없는 내 고향으로 먼저 이사를 왔고, 몇 년 뒤에 나도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서로 서른이 넘어, 한 남자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다시 만났다. 서로의 삶에 치여(또 코로나 때문에) 대면하여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가까운 곳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참 마음이 든든하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우리. 그래서 보는 것도, 느끼는 것도 너무 다른 우리. 또 그렇기에 서로의 비워진 삶의 조각들을 채울 수 있는 우리 사이. 분명 지금이 우리가 스무 살에 함께 꿈꿔왔던 모습은 아니다. 좀 더 멋진 어른의 모습을 상상했었지만, 인생이란 늘 맘처럼 흘러가는 법이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멋진 어른을 위해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함께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다. 깊어져가는 과정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위안이 된다. 나의 오랜 역사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그동안 내 인생의 여러 페이지를 함께 채워가며, 반려자인 남편보다도 더 오래 나를 지켜봐 준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꽤 멋진 일이다.



어제 읽은 책에서 그랬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끔은 큰 소리로 말해 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다른 이의 귀에 닿지 못했던 그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적어서 보여 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마음으로 글쓰기를 해왔는데 친구가 이 글을 볼 것이라는 생각에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그렇지만, 늘 표현하지 못했었기에 이 글을 통해서나마 나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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