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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 Sara Feb 03. 2022

늘 억울한 다섯살 인생

엄마반성문


"얘는 기본적으로 억울함이 깔려 있어." 



요즘 내가 둘째를 가리키며 종종 하는 말이다. 예전에는 몰랐다, 이 아이가 말을 제대로 하기 전에는. 그저 첫째보다 더 까탈스럽고 욕심이 많은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자주 울었고, 울음 끝이 길었고, 사소한 것에도 자주 삐졌다. 예민하긴 하지만 속으로 혼자 삭이는, 무던하게 크던 아들만 키우다가 딸을 키운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도대체 여기서 삐질 포인트가 무엇이었는지 끝없이 궁금해해야 하는 것. 네가 잘못해서 혼났어도 안아주고 다친 마음을 먼저 토닥여주어야 하는 것.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어도 네가 아니라고 하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마음 편한 것. 대화가 되지 않을 때는 몰랐다. 속상한 눈빛 하나, 작은 몸짓 하나, 너의 눈물 한 방울. 그것으로만 그 마음을 짐작할 뿐이었다. 



해가 바뀌고 이제 다섯 살. 아이는 이제 제법 말을 잘 할 줄 알게 되었다. 자기가 왜 속상한지,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는지 또박또박 잘도 이야기한다. 그런데 가만히 이 아이의 말을 들어보자면 늘 그 말의 끝은 이렇다. "맨날 오빠만 먼저 해주고, 나는 안 해주고." "맨날 오빠랑만 놀아주고, 나랑은 안 놀아주고." 처음에는 이 말에 깜빡 속아 내 잘못인 줄로만 알았다. 아,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불공평하게 대했었나? 공평하게 한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었나? 그도 그런 것이 첫째가 올해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내가 보기에도 욕심 많은 둘째가 속상해할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다. 오빠만 새로운 가방이 생겼고, 오빠에게만 여러 책들(사실은 문제집)을 사주었으며, 그 책들을 읽느라(문제집을 푸느라) 할애하는 시간이 제법 되었다. 엄마인 나의 입장에서도, 첫째의 입장에서도 그건 어쩌면, 즐거운 시간이 아니었을 텐데. 둘째의 눈에는 그냥 오빠만 신경 쓰는 것처럼 보였을까 봐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너에게도 곧 올 시간이지만, 하기 싫다고 거부하는 네가 선명히 그려지지만. 지금의 너는 그냥 부러울 것이므로. 그 마음을 토닥여주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착각. 아이의 발언들은 그냥 습관적인 것이었다. 밥 먹기 전에 숟가락을 놓는 것, 비타민을 하나씩 나눠주는 것, 양치질을 하는 것, 또 잠자기 전에 한 곡씩 고르는 자장가를 누가 먼저 고르느냐, 하루 동안 감사했던 것들을 누가 먼저 말하느냐 등등등.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다퉜고, 그럴 때마다 이 아이는 습관적으로 저런 말들을 내뱉었다. 분명 정확하게 차례대로 돌아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금은 오빠 순서가 먼저라는 말은 통하질 않았다. 늘 억울해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무언가 빼앗긴 기분으로 사는 듯했던 다섯 살 인생.



너의 마음이 가슴 깊이 느껴지던 것은, 바로 어제. 설 연휴의 끝자락. 첫째는 자기가 좋아하는 호두 잉글리시를 하겠다며 서재로 들어갔고, 연휴라고 특별히 꺼내준 에어바운스 위에서 혼자 노는 모습이 안쓰러워 같이 놀아주자 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딱히 내가 해주는 것은 없었다. 그냥 거기에서 콩콩 뛰는 모습, 미끄럼틀을 타고 오는 모습을 지켜봐 주는 것 외에는. 저 위에서 뛰는 것만 봐도 조마조마했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컸나. 저 위를 기어올라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잘도 걸어 올라가네. 이런 생각들을 하며 흐뭇하게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다 깨달았다. 내가 이 아이만 온전히 바라봐 주는 시간이 없었구나. 태어날 때부터 늘, 나눠가지기만 해야 했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첫아이라서 모든 것이 새롭고 감동스러웠던 첫째. 나의 사랑과 관심이 온통 집중되었던 첫째 때와는 달리 키우는 것만으로도 급급했던 둘째와의 육아. 어쩌면 그 억울함이 베이스가 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한 번도 온전히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것. 장난감도, 책도 늘 오빠와 나눠가져야만 했다는 것을.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아서 쟁취해야 했다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한 엄마의 사랑도, 그 눈빛도 1/2로 나눠가져야 했으니 늘 결핍에 시달려야 했을 거라는 것도. 그냥 첫째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했던 이 순간들이, 이 아이에게는 어려웠었다는 것을. 



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둘째의 숙명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당연하게 여기지 말았어야 했다. 어쩔 수 없다 생각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주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이 아이가 원하는 것이 이토록 찰나의 순간과 마음이었다면. 조금 더 노력했어야만 했다. 이 짧은 순간에도 행복해할 줄 아는 아이였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너한테만 집중하고, 네 모습만 카메라에 담는 일이 이리도 생경스러운 일이었다니. 엄마의 잘못이 크다. 



올해의 목표가 아들과의 퀄리티 타임이었다. 동생이 생기고 늘 치이는 것만 같아 좀 더 아들에게 집중하려고 했는데, 여기에서마저도 밀려버리고 만 우리 딸. 늘 어렵다, 두 아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 늘 주어도 모자라게만 느껴지는 것이 아이를 향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 보려 한다. 저 깊은 곳에 깔려있는 아이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옅어지도록. 그리고 그 빈자리가 사랑과 기쁨으로 다시 채워지도록. 올 한해 너와 눈 마주치는 순간이 늘어나도록, 너 혼자만 담긴 사진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도록. 엄마가 약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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