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65살을 그려본 적 있나요?
오늘은 그날이다. 목요일마다 함께 모여 글을 쓰는 멤버들이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는 날. 오늘의 주제는 '65살의 나의 직업'. 아침에 줌 시작 전에 주제를 받아들고 나니 벌써부터 막막해져 왔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육십오 살을. 할머니가 된 내 모습을. 나이 들어서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한 나라니. 당장 마흔이 넘은 나도 상상하기가 어려운데 그것보다 훨씬 더 오랜 뒤의 나라니.
언제부터였을까...? 나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된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였던 것 같다. 학생 때의 나는 대학 졸업하고 바로 취직해서 한 3-4년 일하다가 스물일곱에 결혼을 하고 싶었다. 스물일곱이란 숫자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늘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누구나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자신만의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고 믿었던 순진했던 시절. 그렇지만 나의 그 어렴풋하고도 막연했던 계획은 내가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하면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마음에도 없던 공무원 시험 준비를 7개월, 그리고 우연한 기회로 영어를 공부하고 테솔 수업까지 듣느라 거의 1년. 3학기를 쉬고서야 학교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인생은 참,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구나. 생각해 보면 그보다 더 일찍 깨달았던 것 같다. 되고 싶었던 선생님의 꿈을 접고 그냥 성적에 맞춰서 대충(이라고 말하면 자존심이 덜 상한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법대로 진학하면서. 2학년이 되면서 쏟아지는 전공 수업에 정신을 못 차리면서. 무거운 법전과 민법 책을 낑낑대며 들고 다니면서.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수많은 법률용어들을 외우면서.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휴학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지 않았던 공무원 시험이었지만 전공 공부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하면서 도피처로 삼았던 것 같다.
늘 부러워하며 살았다. 자기 진로가 확실한 사람들, 전공을 살려 쭉 일하는 사람들, 내 남편 같은 사람들을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전공을 한 번 잘못 선택하고 나니 더 이상 돌아갈 길이 없었다. 그래서 치기 어린 마음에 덜컥 지원했던 그 학교를, 그 전공을 늘 내 인생에서 밀어두며 살았다. 그냥 내가 속한 환경에서 늘 이방인처럼 겉돌았다.
인생이 기대대로만 되는 것이라면, 그 시절은 얼마나 빛났을까. 하지만 정작 내가 겪은 20대는 아무리 해감을 해도 모래가 씹히는 조개 같았다. 원래 이런 건가?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의아해하면서, 아까워 버릴 수도 없어 모래가 씹히는 조개를 계속해서 먹는 기분. <평일도 인생이니까> 중에서
딱 이 심정이었다. 누군가를 다시 수능을 보라고도 했고, 누군가는 전과를 해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또 그만큼의 용기도 없었던 나는 늘 현실만, 이런 잘못된 선택을 한 과거의 나만 탓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버렸다. 결승점까지 달리기에 너무 버거웠으면서도, 다시 돌아가 새 출발을 하기에는 지나온 시간들과 나의 서툰 노력들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그냥 목적지를 알지 못하고 걸었다. 이 길이 끝나면 또 어떤 길이 나올지 모르는 채로. 그냥 나한테 주어진 하루만 살았다. 계획 세우길 좋아했던 아이의 최대 한계치는 고작 일주일, 길어야 한 달뿐이었다. 그보다 더 먼 시간들은 감히 상상하고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어차피 내 맘대로 되는 시간들이 아니니까. 계획을 세우고 이루지 못하느니,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래야 이루지 못한 것들은 '능력 없는 나' 때문이 아닌 것이 되니까. 그저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 '게으른 나'를 탓하는 편이 나으니까 말이다.
단순히 그 이유뿐만은 아니다. 아까와 같은 책에서 김신지 작가는 '나도 나를 겪어 봐야 안다. 내가 이런 유형의 사람이라고 결론 내린 부분이나 이런 것을 좋아할 거라고 예상한 건 종종 빗나가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살아가면서, 겪어보면서 나도 나에 대해 배웠다. 나는 생각보다 즉흥적인 사람이었다. 그것도 인생에서 꽤 중요한 일들을 나는 누구보다도 쉽고, 빠르게 결정하곤 했다. 반년을 넘게 하던 공무원 시험을 그만두고 영어학습 공동체에 들어갈 때도, 교육대학원에 가고 싶어서 1년 넘게 일하면서 모았던 돈을 들고 통번역대학원에 들어갈 때도. 참 거침이 없었다. 이거다! 싶은 일이라면 큰 고민하지 않았다. 몇천 원짜리 애플 펜슬 케이스 하나 사면서도 몇 날 며칠을 어떤 디자인으로 살까? 어디에서 사야 가장 최저가로 구매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내가. 학교에서 시험 기간이면 과목마다 하루하루 공부해야 할 분량을 적어두고 다이어리를 꼬박 채우던 내가. 정말 내 인생을 한 방에 바꿔버릴 수도 있는 그 결정들 앞에서는 덤덤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그것들 앞에서는 늘 주눅 들어있다고만 생각했던 내가 실은 그렇지 않았다. 새로 펼쳐질 시간들을 기대하기도 했고, 설레는 마음에 두근거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인생 뭐, 별거 없네? 평범한 듯, 평탄한 듯, 단조롭게 흘러가다가도 이렇게 순식간에 휙 바뀔 수도 있는 거네...?
그래서였나 보다. 장기 플랜을 잘 세우지 못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3년, 5년, 10년. 그래서 라이프 로드맵을 작성해둔다던데. 그리고 그때 이룰 것들을 그리면서 살아간다던데. 아무래도 글렀다, 이번 생에서는. 올해 모임을 하고 있는 멤버들과 그 라이프 로드맵이라는 것을 작성해 보기는 했다. 이번 주제를 받아들고서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그 라이프 로드맵이었다. 내가 뭐라고 적어두었더라...? 나의 60대는 은퇴와 후진 양성이었구나. 적어보래서 적어보긴 했는데, 내가 적어둔 내 미래의 모습들은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지 않은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냥 멀리서 바라보는 아지랑이 같은 기분이랄까? 당장 1년 후의 내가 무얼 하고 있을지 모르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숙제였다. 지금 이 글의 주제도 그렇고 말이다.
최근에 나한테 많은 영감을 준 <평일도 인생이니까>(너무 자주 언급하는 것 같지만?)를 읽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 쉴 수 있는 주말만 간절히 기다리면서 얼른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그냥 흘려보내는 평일도 내 인생이라고. 그냥 나의 지나간 모든 시간들이 내 인생이고,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준 고마운 존재라고.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 싶겠지만, 그냥 이런 나도 나라고 인정하고 싶다는 것이다. 아직 3년 후, 5년 후의 계획도 세우지 못하는 것도 나라고. 그냥 지금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열심히 살아가려 노력하는 내 모습을 내가 먼저 예쁘다 여겨줘야겠다고. 그래서 결론은, 나의 65세 직업은 나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한 문장을 말하고 싶어서 이만큼의 긴 글을 써냈다.
날 행복해지게 만드는 것들. 사랑하는 가족과 그들의 건강. 내가 즐겨읽는 책들 그리고 커피. 이 소중한 일상을 내가 이 땅에 사는 날까지 지켜낼 수 있도록. 그것들을 맘껏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딱 그만큼의 노력만 하면서, 남들이 보기엔 단조로워 보일지도 모르는 인생을, 그렇지만 누구보다 소중한 내 인생을 살아가겠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또, 바로 이거야!라고 내 온몸과 마음이 외치는 어떤 순간과 기회가 나타나겠지? 그러면 난 또 망설이지 않고 그것들을 잡아 내 것으로 만들어낼 테다. 그렇게 바뀐 내 삶과 공간, 사람들을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