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너와의 시간을 위해
독서모임 멤버들과 선정한 이 달의 책은 <월든>이다. 1년에 50권 완독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지난달까지 꾸준히 책을 읽어왔는데 이놈의 월든이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두껍기도 두껍거니와 너무 딱딱한 문체와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는 문장들은 나의 독서 의지를 팍 꺾어놓고야 말았다. 그래서 근 2주여간을 아무 책도 읽지 않고 지냈다. 물론 그 사이 아들의 졸업과 입학이라는 빅 이벤트가 있기도 했지만, 읽으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전혀 몇 페이지 읽다 도저히 읽히질 않아 덮어둔 책장을 다시 펼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맞겠다. 읽으면서 한 달 동안 스트레스를 받느니 그냥 2주 바짝 읽고 말지 싶었달까? 자연스레 독서와는 거리를 둔 삶을 살다가 이러면 안 되지 싶어서, 가볍게 읽을 책으로 펼쳐든 것이 샤론 코치 이미애 님의 <20세기 엄마의 21세기 명품 아들 만들기>다.
유명하신 분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이 분의 강연을 듣거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명품'이라는 말에 좀 거부감이 들기도 했으나 프롤로그를 읽어보면 그 단어를 선택한 것에 대한 이유가 나와 있다.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 명품.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 기술과 노하우를 통해 만들어지는 명품. 그래서 수많은 사람의 힘으로, 특히 엄마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아니 잘 자라는 아들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이랄까? 나처럼 제목에서부터 거부감을 느껴 책을 펼치지도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하는 노파심에 덧붙여 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직 이 책을 다 읽지는 못했기에 서평을 적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책을 읽다 보니 한 단어에 꽂혔고, 그 단어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기에. 그리고 나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고 점검하게 했기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샤론 코치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엄마와 아들 사이의 관계에도 흐름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아들과의 허니문은 유아기인 5-7세이다. 아들과의 허니문이란 무엇이냐!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의 손이 더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아가 아가 했던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혼자만의 힘으로 무언가를 조금씩 해내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는 때.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평생 할 효도를 다 하는 시기. 그때가 딱 이때인 것 같다. 이제 말 좀 통하기 시작하고, 엄마에게 사랑을 듬뿍 표현하는 나이. 평생 부릴 귀여움을 다 떠는 나이. 바로 이때가 다섯 살에서 일곱 살 즈음이라는 말이다. 그래, 그런 것도 같네 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렇다면 나와 내 아이의 허니문은 이미 끝나버렸다는 말이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의 나이는 이제 8살. 책에서 말하는 7살에서 이제 겨우 2달 조금 더 지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끝났다, 나와의 허니문이. 존재를 알지도 못했던 허니문이 나도 모르게, 어느새, 끝나버렸다. 그리고 쭉 읽어나가자니 초등 저학년은 엄마보다는 여자 친구이고, 초등 중-고학년만 돼도 사춘기가 시작된다는 것이 아닌가. 정말, 이제 정말, 내 손을 아니 내 품을 벗어나는 기분이 든다. 언제까지나 엄마의 귀염둥이(우리 아들 애칭)일줄로만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아들을 '귀염둥이'라고 부른지도 제법 오래된 것 같다. 아들이 이젠 그렇게 부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이제 좀 컸으니 그만 불러볼까 하고 다짐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샌가, 모두가 모르게, 자연스럽게. 그렇게 우리 아들의 애칭이 잊혀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 정말 이제 곧이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좀 조급해졌다. 좀 억울한 느낌도 들었다. 조금만 더 이 책을 먼저 읽어볼걸? 아, 초판 인쇄가 작년 12월 20일이구나. 아니 그러면 좀 더 일찍 이런 책을 내지 그러셨어요?라는 억지스러운 불평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그 귀한 시간을 나 그냥 흘려보냈네? 이제 힘들 일만 남았구나?
...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만 할 수는 없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우리 아들에게 엄마보다 좋은 여자친구가 생기기 전에 찐한 시간을 보내야지. 저것이 절대적인 숫자는 아니니까 말이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짧은 시간일지라도.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남편과 나는 청각이 좀 예민한 사람들이다. 내가 그런 것에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딱히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아들만 키울 때는 몰랐다. 조용조용 노는 아이였고, 크게 혼낼 일도 잘 만들지 않는 착한 아이였으니까. 그러다 딸이 태어나고 남매간의 싸움이 시작되면서, 그리고 이 둘이 깔깔대며 웃고 장난치는 소리들이 어느 순간 소음으로 다가왔다. 둘이서 무엇을 하든 함께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상상이상이었다. 그리고 책에서 읽었던 것, 새로 배웠던 것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아들의 수다가 버거웠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는지, 너의 마음은 어땠는지 묻는 질문에는 '좋았어요'라는 한마디로 일축하면서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을 전달하는 일에는 어찌나 열심인지. 특히 작년부터 시작한 호두잉글리시(영어회화 게임) 이야기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서 늘 아이가 하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래? 그랬구나."식의 성의 없는 대답만 기계적으로 내뱉을 뿐이었다. 아이도 알겠지, 다 느끼겠지. 엄마의 무관심을. 알면서도 그 소음이 견디기 어려워 모른체했는데 이제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아들이 엄마에게 얘기하고 싶어서 안달 내는 시간이 얼마나 더 남았겠는가. 이제 엄마가 이야기하자고 해도 방문 쾅 닫고 들어가는 날만 남았지. 아들과의 대화법을 완성해 나갈 골든타임이 바로 5-7세 시기라고 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해보지 뭐. '대화'란 무엇인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 이야기만 하고, 엄마는 엄마가 궁금한 것만 물어보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그래서 먼저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 보기로 했다. 책에서는 본격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온다면 메모지를 꺼내는 게 좋다고 한다. 아이가 하는 말을 키워드 중심이나 문장으로 적어가면서 들어보면 중간중간 질문하고 싶은 부분도 생길 것이라고. 경청과 질문은 아이 말을 잘 듣고 있다는 사인도 되지만, 말하는 사람 스스로 자기가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한다. 가끔 남편이 아이가 이야기를 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할 때가 있다. 물론, 남편도 나처럼 일단 관심이 없어서이기도 했겠지만 아이의 말 하는 법을 체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아니, 사실 이런 것들은 차지하고서라도 아이와의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만 있다면 족하다.
아이가 더 신나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냥 중간중간 아이의 이야기에 질문을 하나씩 덧붙였을 뿐인데도 아이는 귀신같이 알아냈다. 엄마가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그동안 내 공부에 바빠서, 아이와의 시간을 허투루 보냈던 것을 반성한다. 많이 내려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더 많이 내려놓아야 하나보다. 그렇지만 이제는 기쁘게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와의 뒤늦은 허니문을 즐기는 시간이므로. 언젠가 아, 이제 끝이구나 문득 깨닫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의 말에 열심히 귀 기울이리라. 너의 재잘거리는 말들이 그리울 날들이 분명히 올 것이므로. 그때 후회하는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오늘 노력하는 엄마가 되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