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빼앗긴 행복을 찾아서
3월의 둘째 날. 매서웠던 겨울바람도 조금씩 물러나고 어디서 불어왔는지 모를 따스한 기운이 살랑살랑 집안을 감싸던 저녁. 다 같이 저녁을 먹고 남편은 주방에서 설거지, 나는 세탁기에서 다 돌아간 빨래를 건조기에 옮겨 담는 중이었다. 건너편 거실에서는 이제 막 입학한 아들이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고, 다섯 살 난 딸은 내 등에 매달려 연신 사랑고백을 해대던 밤. 남들에겐 별거 없어 보이는, 평범한 이 순간이 내 가슴에 와서 콕 박혔다. 아, 행복하다. 이런 게 바로 행복이지. 일상에서의 소소한 행복. 나중에도, 이때의 바람 내음을 잊지 말아야지. 지금의 이 공기, 이 분위기, 이 마음 그리고 이 행복. 내 마음을 캡처해서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을 만큼 이 순간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이 순간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몇 번이고 다짐했던 날. 그래서 오늘 이렇게 글로 쓴다. 잊지 않기 위해. 그래서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누가 나에게 꿈에 대해 묻는다면,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다. 가족과의 평범한 일상. 코로나로 인해 모두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겠지만, 혹여 그래서 그런 것이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나의 꿈은 그 이전부터다. 코로나 전에도 나의 바람은 이토록 평범했다. 그리고 알고 있었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것이 나의 꿈이자 바람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더욱더 간절해졌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특별한 삶을 꿈꾸기도 했다. 해외에 나가 공부도 하고 싶었고, 세계적으로 한 번 일해보고 싶었다. 내가 뛰노는 무대를 한국으로만 한정 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영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것이 즐거웠다. 영어로 말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은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게 되는 것 그 이상의 의미였다. 영어로 인해 더 넓은 세상이 열렸다. 내 시야는 넓어졌고 더 많은 가능성들이 보였다. 이렇게 한 단계씩 밟아 나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원래도 몸이 늘 좋지 않으시던 엄마가 크게 아프셨다. 아빠도 자전거 사고로 무릎 수술을 하게 되어 거동이 많이 불편해지셨다. 멀리 공부하면서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렇게 나이 들고 약한 부모님을 떠나 멀리 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 만나고 있던 구남친, 현 남편과의 결혼도 나의 원대한 꿈을 내려놓는데 한몫을 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다면, 남편은 몹시 슬퍼하겠지만.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꼭 슬픈 일만은 아니었다. 나에게 가족은 생각보다 소중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족이 옆에 있을 때 힘을 얻는 사람, 그리고 그 가족과의 평범한 일상이 참 중요한 사람. 그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 그리고 그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내 삶의 의미가 되었다. 경력이 단절되고, 가끔은 의미도 없어 보이는 집안일들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시간들이 날 지치고 힘들게 하기도 했으나. 나는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가족 옆에 머물기로 했다. 내가 지금 머무는 이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그것이 내 선택이었고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되돌아간다 하여도 내 선택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동안 이 즐거움을 잊고 살았다. 아니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행복하면서도 불안했다.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 두려움이란 놈이 스며들어 있었다. 원체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조심성 많은 성격인데 이 코로나 시국은 이런 내 성향을 강화시켜주었다. 조심, 또 조심.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틈만 나면 가정 보육을 자처하고 외출을 극도로 사렸다. 그 덕에 여태 무사할 수는 있었겠으나, 이만큼 조심하면 곧 끝나겠지 하는 바람과는 상관없이 굴러가는 이 현실이 내 가슴을 턱턱 막히게 했다. 그래서 잠시 즐거웠다가도 돌아서면 한숨이 나오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의 입학. 더 이상은 내 품에 두고만 있을 수 없는 시간이 왔다. 잠시 정점을 찍고 내려올 동안만이라도 원격수업을 바랐건만 정상등교. 맘을 졸이고 걱정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그날은 왔다. 아이의 입학하는 날. 코로나 때문에 입학식은커녕 교문 안으로 한 발짝도 같이 들어설 수 없었다. 선생님을 따라, 너무 커서 버거워 보이는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걸어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울컥했다. 코로나 걱정 때문에 뒤로 밀려 있었던 초등학교 1학년 엄마의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물밀듯 밀려왔다. 아, 이토록 마음 무거운 3월이라니. 내 아들 초등학교 입학할 때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알 수 없는 인생이여.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보냈던 하루의 마지막 저녁이었다, 내가 바로 그 행복의 순간을 맞았던 것이. 정말 별거 아닌데, 그냥 여느 때와 같은 풍경이었는데. 가슴 깊이 깨달았다, 내 행복.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걱정하는 일들은 아직 혹은 앞으로도 영영 일어나지 않을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너무도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으로 지금의 내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그토록 바라는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내 옆에 있고, 아이는 세상으로 한 발짝 나아갔다. 그리고 나는 감사하게도 그 순간을 아이와 함께 하며 축하해 줄 수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내가 바라는 행복은 어디 멀리 가지 않고, 파랑새처럼 바로 내 옆에 있었는데 말이다. 그 파랑새가 날아갈까 봐 지레 겁먹고 함께 하는 순간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있었구나. 얼마 전에 원서읽기모임 멤버들과 함께 읽은 <Because of Winn-Dixie>란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There ain't no way you can hold on ot something that wants to go, you understand? You can only love what you got while you got it."
내 옆에 있을 때만, 내가 가지고 있을 때만 사랑할 수 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오늘 치 행복을 뺏기지 말자. 혹시나 그런 일이 닥친다면 그때는 딱 그날들만큼만 슬퍼하고 힘들어하면 된다. 지금은 그저 이 소중하고, 평범하며, 행복한 일상을 마음껏 즐기도록 하자. 할 수 있는 한 힘껏 오늘의 행복을 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