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장메이트 Sara Mar 24. 2022

나의 소소한 사치에 대하여

취향이 담긴 책장


지난주 목요일에 같은 글쓰기모임 멤버인 민선님의 글을 보니 나도 나의 '사치생활'에 대한 글을 적어보고 싶어졌다. 사치란 무엇인가,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는 것. 이런 뜻을 가진 단어 '사치'와 '소소한'이라는 수식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도 하지만, 난 나의 이 소비생활을 소소한 사치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필요 이상으로 돈을 지불하지만, 그 수준이 너무 과하지는 않은 것. 그러면서도 지불한 돈, 그 이상의 행복으로 돌아오는 것, 소소한 사치. 꼭 필요한 것이었느냐, 대체 방법은 없었느냐고 물으면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겠지만. 꼭 그런 곳에만 돈을 써야 하는 것이냐고 되묻고 싶다. 나의 작은 행복을 위해서라면 조금 더 돈을 지불할 수는 없는 것이냐며.




어렸을 때부터 책을 참 좋아했다. 엄마 말을 들어보면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든 책장 앞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한참을 책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우리 집에는 없는 새로운 책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실 우리 집에는 책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때는 스스럼없이 친구네 책을 빌려 읽거나 도서관을 이용하곤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였나 보다. 나만의 책을, 그것도 아주 많이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 벽면이 책으로 가득 찬 전원주택에서, 따스한 햇살 아래 놓여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읽는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었다. 언제나 내 로망은 책이 가득한 집이었다. 그리고 그 로망은 아들을 통해 실현됐다. 우연한 기회에 사주게 된 책을 아이가 너무 좋아하고, 잘 읽어서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하다 보니 이것이 바로 책 육아였다. 그 하나 둘이라는 것이 한 권, 두 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집 한 질, 두 질을 의미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사준 책을 아이가 마르고 닳도록 보고, 그 모습을 보며 기뻐하면서 또 다른 새로운 책을 들이밀고. 그러면 아이는 또 그 책에 푹 빠지고. 선순환(?)의 반복이었다. 아이에게 책과 함께하는 추억을 선물해 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누가 그랬던가. 어릴 적 채워지지 않았던 욕구는 그대로 남아 성인이 되어서도 나타난다고. 꼭 내가 그 짝이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아이가 좋아하니까, 아이를 위해서 책을 사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분명 아이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가끔 과하다 싶을 때가 있었다. 나만의 책을 가지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위한 보상이었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더 열심히 사 모았다. 이제 좀 자제하자고 하는 남편(심리학 전공자)에게는 어린 시절의 나에 대한 보상심리야, 그거 뭔지 자기도 알지?라는 말로 입막음을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우리 집은 꼭 도서관 같아요'라고 표현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엄마는 지난 유년 시절을 보상받아 좋고, 아들은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을 수 있어 좋고. 꿩먹고 알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닌가....? 




그 시간 동안 우리 부부의 책은 많이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우리 책까지 들여놓을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같이 책육아하는 엄마들끼리 책을 둘 곳이 없어서 책장을 샀는데 이제는 책장을 둘 공간도 없다. 이제 남은 건 더 큰 집을 사는 것뿐이라는 진심 섞인 농담을 하곤 했는데 그것이 바로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그전에 살던 집에 비해 궁궐 같던 집이었는데. 어느 순간 이 궁궐에도 책장 하나 더 놓을 공간이 없었다. 내 책을 몽땅 처분하고도 공간이 남지 않아서 남편에게도 틈만 나면 버릴 책은 없는지 묻곤 했다. 나에게 자주 시달리던 남편은 마지못해 가지고 있던 책들을 처분했다. 그가 끝끝내 버릴 수 없다고 우기는 전공 책들은 책장 한 칸을 지정해 주고 그 이상 넘으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렇게 아이를 위한 아이 책만 사던 어느 날, 기나긴 가정 보육으로 인해 몸과 마음도 너덜너덜하던 어느 날. 아이에게 읽어주려고 샀던 영어 그림책 한 권이 굳게 닫혀있던 내 마음 문을 열었다. 그림책이 꼭 아이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때론 수많은 문장들보다 그림 한 페이지가 더욱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음을 알았다. 미술 문외한도 그림으로 감동을 받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이제 나를 위한 영어 그림책들을 한 권 한 권 사 모으기 시작했다. 책장 하나를 더 사고 그림책을 넣어 엄마 책장이라고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한 권, 한 권 직접 고른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내 취향이 가득 담긴 책장이 나의 행복이다. 




지금도 책을 살 때가 가장 행복하다. 책 한 권이 나에게 주는 행복을 알게 된 이후로는 나를 위한 책 구매도 망설이지 않는다. 새 옷을 산지가 대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아서 매일 같은 옷을 입어도(다이어트 후에 살 거라서), 핫딜을 찾아다니면서 몇천 원짜리에도 벌벌 떨면서도. 이 책, 그러니까 내 책을 사는 것만큼은 아끼고 싶지 않다. 도서관이나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는 일이 더 많지만 밑줄 쫙쫙 그으며 읽고 싶은, 소장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책은 즐거운 마음으로 들인다. 그리고 책을 통해 배우고, 책을 통해 성장한다. 늘 나에게 친구 같은 존재, 한동안 너를 잊고 살았구나. 이 작은, 소소한 사치의 즐거움을 잃고 싶지 않다. 이런 사치라면 평생 환영이다. 당신의 소소한 사치는 무엇인가요...?

작가의 이전글 온라인 친구가 더 편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