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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 Sara Mar 31. 2022

그날이 오고야 말았네

K-장녀의 자아성찰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듣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그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야만 하는 날이. 매달 마지막 주는 모두 같은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는 날이다. 3월의 마지막 주는 <남들은 모르는 나의 귀여운 순간들>이라는 주제가 선정되었다. 작년에 모두가 돌아가며 한 가지씩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공지에 올라와 있는 것을 한 번씩 발견할 때마다 정말 이걸로 할 거냐며, 얼른 빨리 바꾸라며 주제를 선정한 멤버에게 진심을 듬뿍 담아, 농담 섞인 협박성 발언을 내뱉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는 잡초처럼 끈질기게도 살아남아 오늘 나에게 던져졌다. 분명 한번 바꾸자는 말이 나왔던 것도 같고, 다른 멤버들도 대체 내 귀여움은 무엇이냐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안 나온다고 했는데. 왜 결국 이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고만 있는 것인지 당최 이해가 가질 않는다. 사실은 모두 남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귀여움을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가 귀엽다고 느끼는 순간이라. 살면서 그랬던 적이 있나 싶다. 귀여운 것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는데. 귀여워해본 적은 많지만, 스스로 귀엽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쯤 되니 문득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아, 나 정말 귀엽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인지.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인지. 내 기준으로는 일반적이지 않은데 지구는 둥글고,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니까. 또 내 기준이 진리는 아니니까, 내가 귀여운 것이 당연한 사람들도 살고 있을 수 있는 것이겠지? 내가 귀여운 것만으로도 힘든데, 남들은 또 몰라야 한다니. 머쓱하지만 용기 내서 물어볼 수 있는 기회마저 뺏겨버린 느낌이다. 




차근차근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아도 그런 순간이 없다. K-장녀로 살아와서 그런 것일까. 쓸데없는 책임감과 심각한 겸손함과 습관성 양보라는 단어들로 대변할 수 있는 그 자리. 어떻게 보면 나 좀 귀엽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건 자존감이 전제되어야 나올 수 있는 생각인 것 같다. 삶에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나'라는 사람에 대해 살펴보고, 어떤 실수나 잘못에도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는 것. 그럴 수도 있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좀 귀여운 구석도 있네?라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씩 웃어넘기는 것. 개의치 않고 인생의 다음 장으로 의연히 넘어가는 것. 모두가 나 자신을 사랑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남들이 모르는 나를 안다는 것은 나에게 그만큼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할 수 있는 일이다. 가뭄에 콩 나듯이 귀엽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었던 것도 같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분명 나도 다른 사람에게는 귀엽다는 말을 칭찬으로 하곤 했는데 정작 나에게 하는 그 말은 칭찬으로 받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가 나는 귀여울 수 없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에 가둬둔 것은 아닐까? 내가 바라는 내가 있었고, K-장녀로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 있었다. 그 무게에 짓눌려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래도 그런 것들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나 보다. 귀엽다 보다는 어른스럽다는 칭찬이 더 좋았던 어른이 되고 싶던 꼬마는, 이제 진짜 어른이 되었다. 나이로나, 외모로나, 사회적 인식으로나 이제 어엿한 어른이다. 그렇지만 또 정말 그 시절 내가 생각했던 어른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쯤 되면 어른이란 말에 대한 정의가 다시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저 어른스럽고만 싶었고, 어른을 동경했던 내가 딱 그 나이만큼 철딱서니 없이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너무 일찍 철들지 말고 그 나이에만 누릴 수 있었던 유치함과 귀여움을 누리며 살았더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지나간 시간은 어쩔 수 없다면 현재에 충실해 보자.




정말 쓰기 싫은 주제였고, 단 한 줄도 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글감을 던져주니 생각의 가지들이 뻗어나가 또 한 번 나를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런 나의 부끄러움도 감수하고, 이런 것도 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용기 내어 올린 글을 읽고 계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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