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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 Sara Apr 07. 2022

내가 하는 말의 무게

괜찮아, 정말이야


어제 오후, 아이 하교 후에 학교종이 어플로 알람이 왔다. 내일 강당에서 줄넘기를 할 계획이니 줄넘기를 아직 챙겨보내지 않은 친구는 챙겨 보내주라는 것. 줄넘기야 진즉에 챙겨보냈었고, 그전에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연습용으로 하나 더 구매하기까지 했었다. 아이 줄넘기 연습은 남편에게 전담으로 맡기고 하는 김에 같이 하라며 성인용으로 같이 사줬는데 아이 것이고 어른 것이고 나들이용 가방에 고스란히 그대로. 매번 나가서 해볼까 해놓고는 한 번도 꺼내보질 못했다. 아니 안 한 것일까? 주말에 같이 나갈 때도 여긴 이래서 안 되고 저긴 저래서 안되고.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다 보니 연습 한 번 시켜보질 못하고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안 그래도 운동신경이 별로 없는 아이라 미리 연습시켜 보내고 싶었는데. 연습 한 번 안 해보고 가서 잘 못 따라 한다고 스트레스 받지는 않을까?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위축되지는 않을까? 좀 부지런했어야 하는 건데. 자책하는 마음으로, 아이와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 내일은 강당에서 줄넘기하는 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에게도 마음의 준비는 필요하니까. 그리고서는 '우리 다미 아직 줄넘기 못하는데, 어떡하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내 진심. 아이 앞에선 이런 티 내는 말 안 하고 싶었는데. 아차 싶어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못해도 연습하다 보면 한 개고, 두 개고 다섯 개고 할 수 있잖아요." 아이가 하는 무언가가 안된다고 울먹일 때마다 내가 의식적으로 아이에게 해주었던 말이었다. 와! 이런 자기 긍정의 말들을 나는 심어주고 있었구나. 그리고 그 말들이 우리 아들 마음속에 싹을 틔워 쑥쑥 자랐구나. 새삼 엄마로서, 내가 하는 말의 무게가 느껴지는 밤이었다. 



나는 사실 표현이 풍부한 사람은 아니다. 말보다는 글이 익숙하고, 그 사람에게 직접 하는 칭찬보다는 뒤에서 하는 칭찬이 더 편하다. 불만스럽게 툴툴댔던 아빠의 모습 그대로 빼다 박았다. 보고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으니 그렇게 자랐다. 존경하는 아빠이고 이만큼 훌륭하게 키워주신 것에 늘 감사하지만 이런 모습만큼은 닮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의식적으로 아이에게 표현하는 연습을 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네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말해주고 또 말해주었다. 조금만 잘해도 최고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실수를 하거나 잘하지 못했을 때는 괜찮다는 말로 다독여주었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고,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엄마도 처음에는 이만큼 못했다고. 그런데 계속 연습하다 보니 조금씩 잘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어쩌면 어렸을 적 내가 듣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를 말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늘 기억하며 자랄 수 있도록 틈날 때마다 말해주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 말은 아이의 마음속에 싹을 틔웠다.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이라 그렇지, 노력하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진 아이가 되었다. 무얼 하나 못한다는 것이 내가 못난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아이가 되었다. 됐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혹시 못해서 속상해하면 어떡하지? 다른 아이들만큼은 해야 할 텐데. 아닌 척하면서도, 이왕이면 뭐든 잘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바랐던 엄마의 모습이 무색하게도. 우리 아이는 잘 자라고 있었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그리고 혹시 노력했는데 안된다고 해도 괜찮아. 사람마다 잘하는 것이 다른 거니까. 이 친구는 이걸 잘하고, 저 친구는 저걸 잘하고. 우리 다미는 또 잘하는 게 있으니까. 그걸 알고 있는 네가 최고야.



아이에게 늘 했던 이 말들이 사실은 나에게, 혹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아이에게 늘 말하면서도 정작 마음 깊은 곳에서는 믿지 못했던 것은 아닐지.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문을 걸듯 말하면서도 정작 말하는 나조차도 확신이 없었나 보다. 그렇지만 엄마가 세상이 전부였던 아이는 그 말을 아무런 편견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고, 정말 그런 마음을 가진 아이가 되었다. 엄마가 하는 말의 무게란. 앞으로는 더 좋은 말들로 아이의 마음을 채워주어야 되겠다. 아이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그 세상을 살아갈 아이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잠재되어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하나씩 펼쳐나갈 그 시간들이 정말, 진심으로 기대되노라고. 예쁘고, 아름다운 말의 씨앗들을 계속 뿌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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