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살아가는 힘
지난주부터 근 일주일간을 두통에 시달렸다. 오전 일과를 마칠 때까지는 괜찮았다가도 하교하는 큰 아이를 챙겨주고 난 뒤면 온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어김없이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그래서 오후 늦은 시간부터는 늘 누워있기 일쑤였다. 평일 오후 3시는 아이가 공부하는 시간인데 제대로 봐준 적이 드물었다. 문제집 채점도 해주지 못하고, 영어책 읽는 것만 누워서 겨우 들어주곤 했다. 한 번은 모르는 문제를 들고 왔는데 설명을 듣는 태도도 불량스럽고,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모르겠다고 해서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대체 왜 이해가 안 되냐며, 지금은 엄마가 하지 못하겠으니 나중에 하자고 문제집을 덮고 일어섰다. 평소 같으면 괜찮았을 아이의 태도 하나하나가 거슬리고 내 화를 돋웠다. 이게 뭐라고, 아이를 두 번이나 울렸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밀려왔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그 이후, 오후에만 오는 손님이었던 두통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나의 일상을 흔들어댔다. 일어나자마자 시작되는 두통만으로도 힘겨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말 밤 체했던 것이 이틀 넘게 내려가질 않았다. 아픈데 잘 먹지도 못하니 화가 났다. 보다 못한 남편이 어제 자기가 아이들을 챙길 테니 좀 쉬라고 하루 휴가를 냈다.
새벽 기상은 며칠간 하지 않았지만 아이가 학교에 가야 해서 아침에 늦장을 부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남편이 휴가를 냈으니 한시름 덜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가 일어나고 학교 가기까지 고작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그걸 오롯이 남편에게 맡긴다고 생각하니 챙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1. 유산균 챙겨주기
2. 밥 먹은 후 비타민 젤리, 비타민 먹기
3. 내 핸드폰에서 자가 진단 앱 하기-비밀번호 ****
4. 물병에 물 챙겨주기&마스크 스트랩에 마스크 껴주기
5. 겉옷은 에어드레서에, 우산 챙겨주기
6.ㅇㅇ랑 급식 끝나고 만나기 약속
아무래도 못 미더워서 남편의 카톡에 아침에 해야 할 일을 A to Z로, 하나하나 적어 보내두었다. 보면서 순서대로 하나씩 할 수 있도록. 요즘 학교 가기 전날 밤 아이 스스로 책가방을 챙기고, 다음날 입을 옷을 준비해놓는 걸 연습 중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말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누구나 할 수 있어 보이는 일들이. 하루만 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렇게 티가 났다. 어쩌면 지금 내 하루 중 대다수의 시간들은 이런 소소하고, 시시해 보이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했던 어제 하루, 거짓말처럼 두통이 사라졌다. 그래서 알았다, 내 두통의 이유. 뭐 크게 대단한 일은 아니더라도 의미 있고 날 성장시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나는, 내 시간들이 너무 하찮게 느껴졌던 것이다. 필요하지만, 중요해 보이지는 않았던 이 일상이 너무 소소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시시해 보이는 일들을 위해 나의 금쪽같은 시간들을 내려놓는 것이 그다지도 힘들었던 것이었나 보다. 어린이집도 가지 않고 24시간 나와 붙어있는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지도 못할 거면서, 또 마음은 콩밭에 가있는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것이다. 아침 늦게까지 이불 위에서 뒹굴거려도 보고, 아주 잠시지만 모두 나가고 조용한 집에서 드라마를 보며 키득거리다 보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었다. 언제든 또 나와 육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겠지만, 이제 괜찮다. 그때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니까. 딱 그만큼이면 된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서 그 시시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들을 해나가야지.
덧, 그리고 어제 하루 나 대신 아이들을 전담하던 남편은 두통을 얻었다는 슬프지만 웃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