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때만큼 만족하지 못했을까
유난히 힘든 월요일이었다. 아침부터 구름이 잔뜩 낀 흐린 하늘이 마치 내 마음과도 같았다. 한 번씩 찾아오는 우울함이 또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맴돌았다. 엄마가 와 계신 사이를 틈타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스벅 기프티콘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오늘은 좀 울적하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친한 동생이 그 말을 듣곤 기분전환하라며 보내준 것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생각지도 못하게 일찍 퇴근을 했고, 친정 엄마 찬스로 저녁거리도 마침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빨리 저녁 먹고 스벅 테이크아웃해서 애들이랑 산책이나 나가볼까? 무슨 바람이었는지 모르겠다. 외출했다 들어오면 무조건 샤워, 이것이 내가 만든 우리 집 규칙. 그래서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이런 저녁 시간에는 어딜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울적했던 나와 그런 나를 보며 스벅 기프티콘을 보내줬던 고마움 마음, 그리고 남편의 이른 퇴근. 이 모든 것들의 콜라보로 왜인지는 모르지만 급 저녁 외출이 결정되었다. 해가 제법 길어진 줄 알았는데 이미 스벅으로 향하는 차에서 창밖이 깜깜해지고 말았다. 그냥 드라이브 스루만 할까 하다가 한껏 기대하며 나온 아이들이 안쓰러워 잠깐이라도 걷자며 차에서 내렸다.
딸아이는 남편과, 아들은 나와. 그렇게 둘둘이 짝지어 커다란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소풍을 나온 것 같다고 했다가, 캠핑을 온 것 같다고 했다. 이것저것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 안의 들뜸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아이들을 웃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데. 손이 더 간다는 이유로, 좀 더 귀찮아진다는 이유로. 정해진 루틴만 고집했던 것이 너무 미안해질 만큼 아이들은 행복해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로 내 마음속 줄다리기를 하느라 울적했던 내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그래, 내가 원하는 것은 별게 아니었지. 이렇게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 이런 행복을 위해 지금 더 열심히 살고 있었던 건데. 얼마 전 읽은 <월든> 속 한 구절이 생각났다.
왜 우리는 이처럼 서두르면서 삶을 낭비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죽기로 결심한 사람 같다. 제때의 한 바늘은 내일의 아홉 땀을 아껴준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내일의 아홉 땀을 아끼기 위해 오늘 천 땀의 바늘을 찔러대고 있다.
그렇지, 지금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행복인데. 미래의 행복한 나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현재의 행복을 저당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내 옆의 아이들에게 조금 더 충실하자. 지금 여기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해 보자.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밤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수요일에 일찍 오겠다며, 아이들과 또 한 번의 산책을 약속했다.
그리고 오늘, 남편은 약속대로 일찍 퇴근했다. 이틀 전의 행복했던 시간 덕에 모두가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어디로 가볼까 고민했다. 남편이 지나가며 언제 한 번 가보자고 이야기했던 야외 테라스가 있는 동네 카페에 가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말해 뭐해, 너무 좋지. 코로나 전에 내 유일한 힐링은 카페에 조용히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렇게 못하기를 어언 2년째. 실내 공간은 불안하지만, 평일 밤이라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 분명한 야외 테라스 카페는 오케이! 조금은 달라진 목적을 가지고 밤마실을 나왔다. 아이들도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던 뽀로로 음료수를 각자 취향대로 하나씩 골라들고 신나서 자리에 앉았다. 넷이서 오손도손, 반짝이는 조명 아래 둘러앉아 있으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래, 바로 이거지! 별거 아닌데 이렇게 나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네.
그리고 이 소소한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들이 뽀로로 음료수 병을 다 마시는 순간, 끝. THE END! 애초에 산책을 기다리며 나왔던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남편은 이번에 새로 산 아이패드를, 나는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들고 나왔건만. 아이 둘과 함께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니 욕심이 과했다. 남편이 아이 둘을 데리고 잠시 카페 주변을 걸으러 다녀와 주었지만, 고작 15분이 다였다. 돌아온 아이들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이것저것 만져대는 통에 내 마음은 불편해졌고 잔소리 비슷한 것들이 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자,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짧았지만, 좋은 시도였어.
신나게 받아서 뜯어본 선물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빼앗긴 기분. 이왕 나온 거, 좀 더 여유를 누리고 싶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일상의 기쁨을 좀 더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깨달았다. 아이들도 내 마음과 똑같았다는걸. 평일에 잘 없는 엄마 아빠와의 밤마실 시간. 아이들도 온전히 관심받고 싶었고, 100%의 집중을 원했다는 것을. 똑같이 밖으로 나왔지만, 왜 이틀 전에는 우리 모두가 만족했고 오늘은 그렇지 못했는지를. 누구나 100%를 원한다. 서로 다른 것을 원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모두, 온전히, 100% 원하는 마음만은 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