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
나는 고집쟁이다. 한 번 결정한 것에 대해선 좀처럼 쉽게 마음을 바꾸는 법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옳고 그름이 비교적 명확한 편이고 사람이든, 물건이든 취향이 확고하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내내, 내 곁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머물렀다. 내가 쌓아 올린 세계가 조금씩 벽을 허물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 영어를 배우러 가서 단체생활을 시작했다. 6-7명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합숙을 했다. 일반 기숙사가 아닌 가정집이라 방이 몇 개 나눠져 있긴 했지만 적어도 두 명 이상과는 방을 공유해야 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업을 하고 주말을 포함한 나머지 3일은 자유였지만 집이 멀었던 나는 그때도 그곳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 24시간 모든 순간을 누군가와 함께 해야 했다. 가족이 아닌 타인과 이렇게 오랜 시간, 모든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가족처럼 같은 집을 사용하는 멤버도 내 맘대로 고를 수 없었다. 그냥 한 번 맺어지면 한 텀 동안은 운명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했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스쳐 지나가고 말았을 사람과도 이젠 미우나 고우나 맞춰가며 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렇게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처음으로.
그때 그곳에서의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행복'이란 기억으로 남았다. 어렸고, 사랑을 했고 또 사랑을 받았다. 더불어 내가 영어를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고 영어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이자 경험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원래의 내 세상으로.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그때만큼 내 모든 걸 주며 살진 못했다. 아이 둘을 키우는데 집중하다 보니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는커녕 기존의 인간관계도 유지가 힘들었다. 친구들과도 얼굴 마주하고 이야기 나눈 지가 한참이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찾아왔다. 정말 이제 좀 그만 끝났으면 싶고 지긋지긋한 코로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는 나에게 온라인 친구를 선물해 주었다. 집콕의 무료함에 지쳐 시작한 인스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곳만큼이나 성격도, 취향도 천차만별인 사람들. 어쩌면 살면서 스쳐 지나갈 일도 없었을 그 사람들이 이제 내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20대 초반의 그때처럼, 다름에 대해 배우고 있다.
사람들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었다. 다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맞춰가는 그 과정이 피로했다. '다름'에서 오는 그 묘한 이질감이, 또 나라는 존재를 내보이고 받아들여지게 만들어야 하는 것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노력 없이, 결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어쩌면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달라서 인정받지 못할까 봐, 그리고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봐 걱정했던 것인지도.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닌데도 왜 그리 이해를 하고 이해를 시키려 했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내 존재가치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니 같은 것을 보아도 느끼는 것이 다르다. 같은 책을 읽어도 서로 다른 의견을 이야기한다. 이번 달 우리 독서모임 책을 읽고 단톡에서도, 줌에서도 서로 치열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어떤 이는 도저히 이 작가를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고 어떤 이는 너무 좋아서 남편과 한참을 이야기했다고도 했다. 내가 높이 평가하는 것에 신랄한 비판을 해도, 내가 좋은 것을 같이 좋아하지 않아도 이제는 안다. 그것이 우리 관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우리의 관계는 그것과는 별개로 단단하다는 것을. 우리는 그냥 서로 다른 존재일 뿐.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다. 우리는 우리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공존하면 된다. 똑같지 않아도 좋다. 그래서 더 의미 있다. 나이 먹는 것은 슬프지만, 이것이 한 살 두 살 먹어가며 삶이 내게 가르쳐준 지혜다. 내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