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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 Sara May 26. 2022

새벽, 애증의 시간

어제는 미워하고 오늘은 사랑하네


이 사람, 진짜 나한테 아닌데. 같이 있어봐야 내 인생을 좀먹기만 할 것 같은데. 지긋지긋 이제 좀 그만 끝내자 싶다가도 막상 안 볼 생각하니 두려움이 몰려오고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관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20대의 치기 어린 연애. 새벽이 딱 나에게 그런 애증의 관계였다.




사실 <새벽>이라는 공통 주제를 받아들였을 때는 재작년부터 지속해온 새벽 기상, 그리고 거기에서 조금씩 성장한 나. 이런 것들을 글로 담을 생각이었다. 새벽이 나에게 주는 즐거움, 그리고 유익. 이런 것이 제일 먼저 떠올랐으니까. 그런데 글쓰기 전에 잠깐 모여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 누군가 물었다. 다들 새벽 기상에 대해 쓸 거냐고. 당연하지, 그거 말고 쓸 이야기가 있나?라고 생각하던 찰나 멤버 한 명이 고개를 저었다. 새벽에 마시는 술이 주제란다. 아?! 왜 꼭 새벽을 새벽 기상과 연결시키려고만 했던가. 잠자리에 들 시간을 훌쩍 넘어 펼쳐지는 그 긴긴 시간도 새벽인데. 꼴랑 1년 반 새벽에 좀 일찍 일어났다고 그 기억들을 모두 잊었구나.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얼마 전 복구된 싸이월드. 그곳에 담긴 새벽시간 내가 남겼던 흔적들, 어쩌면 흑역사�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독립 아닌 독립을 했다. 다른 도시에 있는 학교가 너무 멀어서 등하교 시간을 아껴보고자 하숙을 시작했고, 그 뒤엔 기숙사 생활을 했다. 그리고 대학은 더 먼 곳으로 갔으니까 그때도 또 고시원에서 지냈다. 지금이야 그 시간들이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땐 몰랐다. 창문 하나 겨우 있는 그 좁은 방에서 외롭고, 또 외로웠다. 엄격했던 부모님을 떠나 드디어 자유를 얻었지만 그만큼의 공허함도 같이 찾아왔다. 혼자서 잘 지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이십 대 청춘에게 혼자 있는 새벽만큼 가혹한 것은 없었다. 귀가 시간을 최대한 미루고 미뤄서 늦은 밤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면, 물먹은 솜처럼 내 마음이 축 가라앉았다. 잠 못 이루는 그 새벽에 내 텅 빈 마음을 채우지 못해서 참 많이도 울었다. 그러다 후회스러운 선택을 하기라도 한 날이면 부끄러움에 이불킥하는 날들도 많았다. 지금은 애써 기억하려 해도 아득한 그 시절 새벽시간. 늘 혼자 남는 새벽이 두려웠고 미칠 것만 같았는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나는 그토록 혼자이기를 바라다니. 아, 인생이란 아이러니.




이제 30대의 나는 어떻게든 혼자 있어보려고 새벽 기상을 선택했다. 그토록 빨리 흘러가기만 바랐던 그 시간들이, 지금은 1분 1초가 아까워 발을 동동거릴 때도 있다. 단 한순간도 허투루 쓸 수 없는 새벽시간. 새벽은 그때처럼 늘 그대로인데, 그 새벽을 맞이하는 내가, 나의 마음이 변했다. 애증(愛憎)에서 이제 애(愛), 사랑만 남았다. 여러 일로 지쳐있는 내 마음을 채우고 나를 가만히 돌아보게 하는 이 시간을 사랑한다. 이제 아이들이 좀 커서 오전에도 혼자 있는 시간이 조금은 확보됐지만, 그래도 새벽시간에 비할 수 없다. 나의 모든 역사가 담긴 새벽, 오늘도 그렇게 그 시간을 소중히 내 마음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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