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TJ의 여행법
현충일을 끼고 그 다음 이틀을 연달아서 캠핑에 다녀오기로 했다. 원래부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좋아하지 않지만 코로나때문에 그런 성향이 더 강해졌다. 될 수 있으면 캠핑은 사람이 없는 평일에, 그렇지 못한다면 다른 사이트들과 멀찌감치 떨어진 단독사이트로. 그것이 우리 집 캠핑의 국룰이었다. 낯선 곳에서의 잠자리, 벌레 이 모든 것들을 싫어하지만, 코로나때문에 잘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큰 용기를 냈던 것이 작년 봄. 얼마나 큰 결심을 하고 시작했는지 알기에 남편은 어지간한 것은 모두 내 의견을 따라주었다. 공중화장실은 이전부터 별로였기에 아이들을 위한 이동식 변기도 사고, 간단하게 손을 씻을 수 있는 캠핑 샤워백도 마련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캠핑을 다녔다. 그러다보니 미니멀 캠핑은 꿈도 꿀 수 없는 것. 그러다 보니 용기는 내가 냈지만, 고생은 남편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운전도 남편이, 텐트치는 것도 남편이, 요리하고 설거지 하는 것도 남편이. 어느것 하나 남편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제 몇 번 다녀보니 세팅하는데 익숙해진 내가 좀 돕기는 했지만, 남편이 힘든 것은 여전했다.
그래서 결정했다, 이번 캠핑은 아무것도 해먹지 않고 외식과 테이크 아웃으로 해결하기로.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이야기하겠지. 캠핑은 먹으러 가는 것 아니냐고. 먹고 먹고 또 먹고, 뒤돌아서서 또 먹고. 물론 그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우리 집에도 있다. 남편 혼자라는 것이 문제지만. 사실 나는 딱히 먹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굶어서 배가 고프면 엄청나게 예민해지는 스타일이지만, 적당하게 배를 채울줄만 알면 된다. 이런 나를 닮아 첫째 아이도 입이 짧고, 둘째는 좀 아빠를 닮는 듯 했으나 아직 어려서 먹는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이 수고롭게 요리를 해도 많이 먹어줄 사람이 없다는 뜻.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던 남편이 고생에 지쳐 맛있는 음식을 내려놓았다. 그래, 캠핑장엔 식세기도 없다구! 라는 말로 남편의 결정을 응원해주었다.
그리고 나서 떠나는 날 아침, 남편이 카톡으로 사진 하나를 전송했다. 앞으로 2박 3일 우리의 식단. 대충 언제쯤엔 어떤 걸 먹어보자 이야기하긴 했는데 이렇게 만들어두니 보기 쉽고 좋았다. 나는 MBTI에서 J. 체계적, 정리정돈 및 계획을 좋아하는 유형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계획을 먼저 세우고 계획대로 실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또 여행을 다닐 때는 반대다. 한 번 하면 제대로 하고 싶은데, 그만큼 하려면 여행 가기도 전부터 지칠 것을 알기에 애초에 세우지 않는 것을 택했다. 대충 어디어디를 가보고 뭐뭐를 먹어보자 정도만 생각해 왔을 뿐이다. 지난 번에 왔을 때는 월요일이 죄다 휴무였기에 월요일 도착, 화요일 관광을 하기로 한 것이 계획의 전부였다.
그런데 두둥. 캠핑장에 도착해서 입실했다고 알리는데 박물관 주차 할인권을 주면서 가려면 오늘 가라는 것이 아닌가. 월요일이지만 현충일이라 운영하고 대신 내일 휴무란다. 얼른 텐트를 세팅하고 박물관으로 달려가 문닫는 시간 전에 둘러볼 수 있었지만, 우리의 계획없는 여행의 서막은 이렇게 올랐다. 몰랐다, 이것이 시작일 줄은.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를 확실하게 정해오지 않았는데 검색해서 겨우 찾아간 곳은 정기휴무. 급하게 주변 식당을 검색해서 들어갔지만 냉면이 너무 삼삼해서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깨닫게 된 것은 우리가 가려던 식당도 월,화 휴무. 지난번에도 월요일 휴무라 못갔는데 화요일도 휴무인걸 몰랐다. 또 식당 서치해서 출발했는데 도착 시간이 무려 50분후. 아침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그만큼을 또 갈 수 없어 가는 길에 발견한 중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달려간 사천 첨단항공우주과학관. 네이버에도 분명이 운영중이라고 나왔는데 정기휴무. 다행히 옆 항공우주박물관은 열려 있어서 들어갔지만 생각했던 시간보다 일찍 끝나서 오후 시간이 텅 비어버린 것. 열심히 주변 가볼만한 곳을 찾아봤지만 케이블카도, 카페도 그놈의 휴무, 휴무, 휴무. 원래 이렇게 식당이고, 카페고 평일에 휴무를 한번씩 하는 거였는지도 이제 처음 알았다. 계획없이 여행온 자들의 최후란. 나의 모든 상황을 아는 단톡방 언니들이 지난번에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차렸다며 J에서 탈퇴하라는 농담을 건넸다.
그렇게 즐겁지만 좀 힘겨웠던 2박 3일의 캠핑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오늘부터 독서모임을 시작하기로 한 게 있어서 어젯밤에 우리만의 독서기록노트와 읽어 나갈 진도표를 만들어 올렸더니 한 멤버가 대뜸 "사라님 MBTI J죠?ㅋㅋㅋ"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그래, 맞아. 나 이렇게 계획적인 사람이었는데 왜 유독 이번 여행은 그랬을까나...?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또 다른 나'에 대한 재발견이다. 일할 때는 열심히고 싶어도, 쉴 때는 좀 여유를 부리고 싶었던 맘이 아닐까? 쉬기 위해 여행하면서도 미리 계획세우느라 여행 가기도 전부터 지치는 짓은 하고 싶지가 않다. 그래도 이번에 이렇게 고생했으니까 다음엔 쪼끔 더 신경써서 떠나겠지. 그런게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