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보는 눈으로, 나도.
살면서 내가 담긴 사진이 만족스러웠던 적이 거의 없었다. 누구나 다 예쁘게 나온다는 웨딩포토조차도. 그래서 사진 찍는 것을, 아니 찍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카메라를 피해 다녔다. 어쩔 수 없이 단체사진이라도 찍어야 하는 날이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자리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내 못난 얼굴은 애써 흐린 눈을 하고 얼렁뚱땅 넘겨 보기도 했지만 사진에선 그런 잔기술이 통하지 않았다. 빼박! 받아 든 사진에서 현타가 온 적이 몇 번이던가. 게다가 기록에도 남는다, 오래오래. 지울 수 없는 또 하나의 흑역사가 만들어진다.
커가면서 점차 나아졌지만. 아니 엄마가 되고부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내 아이의 어릴 적 모습과 소중한 순간들을 고이 간직해 주는 고마운 존재로 승격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어렵다, 나를 담는 사진이란. 핸드폰에 있는 1만 5천 장이 넘는 사진 중에 내가 나오는 사진은 몇 장이 채 되질 않는다. 왜 이렇게 어려울까. 아이들 사진은 얼굴이 절반을 가릴 만큼 크게 나왔어도,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울고 있어도 그저 예쁘기만 한데 말이다. 나는... 내 사진은... 왜 그렇게 바라봐 주지 못했을까? 사랑이다. 사랑의 문제다. 아이들이 어떤 모습이건, 어떻게 찍혔건 그 모습 그대로,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스스로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그 속에 담긴 못난 나를 견딜 수가 없었다. 애써 모른 척 미뤄뒀던 사실들을 확인사살당하는 기분이었다. 결국 사진은 표면적인 것일 뿐이었다. 본질은 내가 나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 사랑해 주지 못한 것에 있었다. 좀 더 살을 빼고 나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나면. 좀 더 좋은 곳에 가서. 지금 사진을 찍고 싶지 않은 이유는 많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의미였다. 지금의 내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 나는 좀 더 좋은 사람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는 소망. 그것이 내가 카메라 앞에서 작아지는 이유였구나.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올 거라 믿고, 오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겠지. 37살의 나는 이미 가고 없겠지. 이때의 나를 무엇으로 기억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사랑스러웠던 '그때'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지금 나의 '그때'도. 조금 덜 사랑스럽기는 하겠지만 지금 내가 있는 이 공간도, 이 시간도, 지금의 나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먼 훗날이 되면 사춘기와 같았던 지금의 서른일곱도, 이 젊음의 때도. 그리워지는 날이 오겠지. 그때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아쉬워지지 않도록, 우리 같이 사진 한 장 찍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