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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 Sara Jul 07. 2022

남편의 취향

8년동안 몰랐네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건인데, 어느 순간 발수건으로 변해있더니 이제 버린다고 하네." 여행지에서 남편이 말했다. 좀 씁쓸하게...? 그도 아니면 포기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친구네 가족이랑 1박 2일로 여행을 왔다. 숙소에 수건들이 구비되어 있기는 하지만, 흙모래 묻은 아이들 발 씻길 일이 많을 것 같은데 그 용도로 쓰기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굴러다니는 발수건 중에 하나를 챙겨온 참이었다. 씻고 나오면 닦으라고 욕실 앞에 놔둔 거였는데 숙소에 있는 수건이랑 달라서 그런지 친구가 우리 집 거냐며 물었다. 그래서 쓰고 여기서 버리고 가려고 가져왔다고 이야기하는 중간에 남편이 끼어들어 말한 것이다. 본인이 아끼는 수건이라며. 이 수건을...? 여기저기 올이 풀려서 걸레도 써도 아깝지 않을 이 수건을...? 몰랐다, 전혀.




남편의 말에 따르자면, 우리 집에 있는 수건 중에 이게 제일 보들보들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수건이었는데 어느 날 집에 와보니, 발을 닦는 수건으로 변신을 한 것. 이때도 남편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니 내가 알 리가 없었다. 미니멀라이프를 한답시고 집에 있는 형형색색의 수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멀쩡히 잘 쓰던 것들을 버리기는 어려우니 내가 주로 사용하는 안방 화장실 전용 진회색 수건을 샀다. 그러면서 버릴 수 있는 것은 버리고, 좀 낡았다 싶은 건 발수건으로 만들었다. 여기까지가 이 사건의 전말. 사실 남편이 나가 일을 하고, 내가 전업으로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집에 관련한 것은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책장같이 큰 가구 들이는 것이야 같이 의논해서 결정했지만, 자잘한 살림살이들은 사는 것도, 처분하는 것도 나에게 달려 있었다. 그래서 집 안 대부분의 공간에 내 취향이 담긴 것들로 채워졌다. 수시로 바뀌는 물건들의 위치에도 남편은 입 한 번 댄 적이 없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가장 많은 사람은 나니까, 내 몸과 마음이 편하면 됐다고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한 가지 색으로 통일된 수건들도, 화장실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걸어두는 방향도, 거실 화장실을 건식으로만 사용하는 것도. 모두 나에 맞춰진 것이었다.




남편에게도 수건 취향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사실 머리숱 많은 내가 머리를  말릴  있을 만큼 물기가 흡수  되고, 넣어두었을  통일된 색으로 눈이 피곤하지 않을 . 그것이 내가 수건을 고르는 기준이었다. 수건의 촉감,  사실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건조기를 사용하고 나서는 마른 햇볕에 말렸던 예전처럼, 수건이 거칠거칠하지만 않으면 됐다. 따끔하게 얼굴을 찌르지만 않으면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데 나와 8년째 사는  남자의 취향은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새삼스레 깨닫는다.




너무 사소해서,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부분들까지도 나는 배려 받으며 살고 있었다. 배려 받는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나를 배려하며 살았던 거다, 이 사람이. 결혼하고서는 나의 취향에 맞춰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는 남매의 취향에 맞춰서. 그렇게 자신의 취향을 잠시 접어두었던 남편의 다가오는 생일에는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 취향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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