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도가 높은 당신에게
플랜 B. 이 단어가 처음 나에게 왔을 때를 기억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한곳만 보고 직진하는 방법밖에 몰랐던 20대. 좋아하고, 동경하는 작가님의 글에서 발견한 그 단어. 어떤 에피소드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할 만큼, 그 단어는 나에게 인상 깊게 다가왔다. 플랜B라니, 플랜B가 있는 삶이라니!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목표를 세웠다면 달려야 했다, 그곳을 향해. 어떻게 해서든 이루어야 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서.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느 누가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내 목표가 실패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나와 목표를 달성한 나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쉽게 흔들렸나 보다. 그래서 한 번 넘어지면 탁탁 털고 일어서기까지 한참이 걸렸나 보다. 수능에 실패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을 때도 주어진 자리와 그 삶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패와 그 실패로 인한 것들을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 노력했어도,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플랜B로 가라고 알려준 것이 바로 그 글이다.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았어도 괜찮다고, 너에겐 또 다른 플랜이 있다고 다독여준 것이 바로 그 글이었다. 아, 지금 하려고 하는 것들이 실패해도 끝난 것이 아니구나. 다른 길을 찾을 수 있구나. 혹은 꼭 이 사람이 아니어도 되는구나. 모든 것에 너무 안달복달하며, 스스로를 상하게 하면서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구나. 다른 길을 계획하고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플랜B가 있을 때 얼마나 든든할 수 있는지 배웠다. 나누기 힘든 마음 아픈 경험이었을 텐데 솔직하게, 진심을 다해 쓴 글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렇게 인생의 첫 플랜B를 배웠다.
그렇게 잠시 잊고 지내던 플랜B가 다시 내 인생에 등장했다. 요즘 멤버들과 함께 읽고 있는 <놓아주는 엄마 주도하는 아이>에서 인생을 대비하는 두뇌.신체 6단계 훈련 중 세 번째 훈련. 제2안을 생각하는 연습이다. '제2안 사고' , 영어로 하면 'Plan B thinking'.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면 인생이 망할 거라고 불안해하는 아이를 상담하는 중에 등장한 용어다. 그 대학에 합격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보고, 다른 선택안에 대해서도 고려해 보는 것이 그 아이를 위한 솔루션이었다. 2지망 대학을 정하고 그곳에 들어갔을 때의 삶을 상상해 보기. 이렇게 대안적인 미래를 시각화하는 것만으로도 불안 수준이 떨어졌다고 한다. 우리 삶에서도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유명 대학 유명 학과에 합격하지 못하면, 이 직장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실패한다면. 우리를 두렵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것들. 모든 것을 쏟아붓고 전력투구했다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그 불안은 더욱 극대화된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플랜B이다. 책에서는 플랜B가 계획이 틀어져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열쇠라고 말한다. '제2안 사고는 상황을 균형감 있게 보도록 도와주고, 편도체를 통제하는 전두엽피질을 강화한다. 계획과 준비는 전두엽피질의 역할이다. '해야 하는데 할 수가 없다'라는 상황보다 큰 스트레스는 없다. 이때 제2안 사고는 '이걸 못하면, 저걸 하면 되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융통성과 적응력을 높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트레스와 예상외의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놓아주는 엄마 주도하는 아이, 238p>
이 책을 읽는데 어린이집에서 소방대피훈련을 받고 난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집에 불날까 봐 무섭다고 불안해하는 아이가 떠올랐다. 둘째는 좀 다른 성향일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몰라서 무서운 것이 없던 시기가 지나고 나니 똑같다. 불안도가 높은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이니. 엄마에게고, 오빠에게고 은연중에 보고 배운 것이 그런 것이니 그 피는 못 속인다 싶다.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그대로 빼다 박은 모습이 속상해서 더 못 들은척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혹시나 그러면 어떡하지 순간 불안했으면서도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퉁명스러운 말로 아이의 입을 막았다. 책을 읽으며 다시 배웠다. 나는 알지 못해서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까 아이들은 지금부터 가르쳐줘야지. 꾸준히 연습시켜야지. 꾸준히 플랜B를 생각하기를 연습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생각하면 아이들이 삶의 통제감을 느낀다. 다양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준비하는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하원한 아이와 하나하나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야 되겠다. 집에 불이 난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일단 집에서 탈출하기! 만약 현관문을 못 나갈 상황이라면? 대피실로. 이렇게 차근차근 아이와 불안을 없애는 연습을 해야겠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소한 것에는 불안해하지 않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날이 오겠지. 그리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더라도, 툭 털고 일어나 플랜B를 향해 다시 힘껏 달려가는 날이 오겠지. 당신에게는 플랜B가 있나요...?
플랜B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영감을 주신
박나경 작가님께 감사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