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니핑 슬리퍼에 대한 고찰
핫핑크 색의 티니핑 슬리퍼가 왔다. 간밤에 쿠팡 배달원이 문 앞에 배달해두고 간 모양이다. 남편이 출근길에 발견해서 아이가 등원하기 전에 보여주었더니 난리가 났다. 행복해하는 모습에 내 얼굴에도 미소가 스민다. 화장실 문 앞에서 세면대까지. 다섯 살 아이의 걸음으로도 서너 걸음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다시 슬리퍼를 벗어 세면대 앞 계단에 올라가야 한다. 이쯤이면 슬리퍼를 신는 게 더 번거로울 만도 한데 다섯 살 딸아이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신고 벗었다가 다시 신고 벗는 그 과정에서 귀찮은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갓 도착한 그 티니핑 슬리퍼를 소중하게 어루만지다가 행복한 마음으로 등원했다.
우리 집은 화장실을 건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공간이라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 좀 더 손쉽게 화장실 청소를 하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그래서 이사 오고 지금까지 거의 5년을 욕실 슬리퍼 없이 살아왔다. 물청소하고 난 뒤에도 스퀴즈로 싹싹 쓸어내고 나면 금방 마르곤 했으니까. 둘째 아이가 물기가 아직 채 마르지 못한 바닥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일이 한 번씩 있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을까? 며칠 전 밤, 사달이 나고 말았다.
남편은 아이들을 보고 나는 잠시 일을 하러 서재에 들어와 있었다. 방문 밖으로 남편이 양치질을 하자며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이제 나만 양치질하고 들어가 자면 되겠네,라는 생각으로 화장실에 들어섰는데 자꾸 더러워진 공간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며칠 전부터 신경 쓰였던 것이었는데 흐린 눈으로 외면하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유독 내 신경에 거슬려서 계획에도 없는 물청소를 하고야 말았다. 대충 휙휙 물을 뿌려 청소하고 스퀴즈로 물기를 쓸어내야 하는데 귀찮은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아이들도 양치질 다 하고 자러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내일 아침에는 말라 있겠지.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환풍기만 켜둔 채 나와 자러 들어갈 준비를 하는데 다다다다- 쿵!!! 하는 소리에 뒤이어 아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보니 남편의 양치질하자는 부름에도 아이는 빈둥거리며 오질 않았고 첫째만 양치질을 했었던 모양이다. 내가 일을 다 끝내고 나온 걸 본 남편이 다시 양치질하자며 아이를 재촉했고 부리나케, 평소처럼 다다다 화장실로 달려간 둘째는 그대로 그 물기에 미끄러져 머리를 쿵 박았다. 종종 일어났던 일이기도 했지만, 이번만큼 크게 다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기를 그대로 바닥에 남겨둔 엄마 탓이었다. 뒷머리에 커다랗게 혹이 나 엉엉 우는 둘째를 달래며 슬리퍼를 사자고 약속했다. 이제는 미끄러지지 않게 슬리퍼를 신고 다니자고. 그리고 아이와 함께 골라서 바로 주문한 그 슬리퍼가, 오늘 아침에 온 것이다. 핫핑크의 쨍한 티니핑 슬리퍼가.
티니핑 슬리퍼에 행복했던 아이는, 티니핑 원피스를 입고 티니핑 마스크를 하고서 어린이집에 갔다. 아이를 보내 놓고 돌아와 슬리퍼를 빠는데, 문득 이런 나의 모습이 참 낯설었다. 분명 똑같은 사람이 육아를 하고 있는 것인데 첫째 아이를 키울 때와 지금의 내 모습이 참 많이 달라졌다 싶다.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아들을 키우면서 영상물을 보여주지 않았다. 6살 즈음이 되어서야 영어 영상물 페파피그 한 편 정도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 전부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은 다른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들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 캐릭터들과 연관된 장난감들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원체 뭘 사달라고 조르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엄마가 원하는, 엄마 스타일의 책과 장난감(그나마도 많지 않은)들이 집에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수월한 책육아가 가능했다.
그런데 한 뱃속에서 나온 이 둘째 아이는, 다르다. 똑같이 뭘 보여주지 않는데 어디서 그렇게 알아오는 것인지. 콩순이, 티니핑 같은 것들을 알아와서 종종 엄마를 놀라게 한다. 또 아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그려진 책과 장난감, 스티커들을 욕심낸다. 장난감을 잘 사주지 않는 엄마인 걸 알기에, 자기 전에 옆에 나란히 누워 소곤거린다. "다음 내 생일에는 이걸 사고 싶어요." "엄마, 다음에 나, 이거 꼭 사주세요?"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나도 모르게 지갑이 열릴 뻔한 적도 여러 번이다. 어느 날은 핸드폰을 보고 있는 내 너머로 광고에 뜬 티니핑 마스크를 봤나 보다. 친구들도 하고 왔다며, 나도 하고 어린이집 가고 싶다는 말에 마음이 약해져 주문해 주었다. 지금 쓰고 있는 마스크가 박스째로 쌓여 있는데도 말이다.
한 번 마음을 정하고 나면 쉽게 바꾸지 않는 내 고지식한 면이 첫째의 육아에 많이 투영됐었다. 아이의 정서발달에 좋지 않은 만화는 빨리 보여주지 않겠노라고 다짐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 사탕, 초콜릿, 마이쮸 같은 몸에 좋지 않은 간식은 먹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았다. 그런 엄마를 잘 아는 FM 아들 첫째도 잘 협조해 주었다.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것들도 먹지 않고 엄마에게 다시 전달하면서. 그런데 아이 둘을 키우면서 생겨난 여유와 넉넉한 마음일까...? 가끔 좋지 않은 것들을 즐기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그 모습에, 동심을 지켜주고 싶어진다. 너무 애어른처럼 자란 첫째가 안쓰럽고 미안하다. 어릴 때, 딱 그 나이 때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해주지 않은 것 같아서. 아이 하나만 키웠더라면 절대 몰랐을 깨달음이다. 엄마인 나와도, 제 오빠와도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체가 우리 가족에게 왔기에 가능한 일. 아이를 키우는 육아 원칙의 대전제가 바뀌진 않겠지만, 이런 둘째의 도움을 빌어 종종 일탈을 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