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를 다시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공통 주제로 쓰는 날이면 늘 한결같은 투정이지만, 정말로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서로 하나씩 주제를 내던 날, 두어 사람이 먼저 낸 주제가 우연치 않게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우리는 신나서 두 글자 단어들을 생각해 내기 시작했다. 그중에 하나인 '다리'. 그것이 바로 이번 주의 주제다. 사람의 다리도 있을 것이고,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위해 만든 다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사람이나 사물도 다리라고 한다. 중간에 거쳐야 할 과정이나 단계를 의미하는 것도 다리다. 꽤나 중의적인 단어이다.
사전에서 뜻을 찾아 찬찬히 살펴보면서 이 단어가 나에게 주는 느낌은 '잇는 무언가'였다. 우리 몸의 다리도 상체와 발을 이어주는 소중한 신체 부위다. 다리가 없었더라면 건너지 못하거나 둘러서 멀리 돌아갈 건너편 어딘가를 지금 내가 딛고 서 있는 이곳과 연결해 주니, 그 또한 하나의 '이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어주고, 시작 지점과 최종 목적지를 이어주니 이 또한 '이음'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엇과 이어져, 어느 곳에 닿아 있을까?
나를 그곳에 이어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지금의 나는 서른일곱의 전업주부이자 두 아이의 엄마다.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공부했지만, 영어강사로도 일했었지만. 첫째를 낳아 키우다 3년 뒤에 또 둘째를 낳아 키우는 동안 내가 배웠던 것들은 무용지물인 것만 같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필요한 것은 법학이나 언어학이 아니었다. 내가 그동안 공부했던 것들, 그동안 쏟아부은 노력들이, 아니 그동안의 내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웃음 덕에 기쁘다가도 잠깐,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잠깐. 행복한 순간에도, 슬펐던 순간에도. 그런 마음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잊고 살만하면 한 번씩 불쑥 불쑥 올라와 내 마음을 헤집었다. 그래도 참을만했다. 견딜만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온 두 아이를 생각했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는데 그깟 마음쯤이야 잠시 꾹꾹 눌러 담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참고 견딜 수 없는 날이 왔다. 더 이상 눌러 담다가는 터질 것만 같은 날이 왔다. 코로나로 꼬박 1년 가정 보육과 집콕을 하던 참이었다. 안 그래도 걱정 많고, 예민한 성격인데 매일 들리는 무시무시한 뉴스와 울리는 확진자 동선 문자들에 더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 둘을 끼고서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았다. 장 보는 것도 무조건 배달. 아이 둘과 함께 일주일 넘게 현관문 밖을 나서지 않은 적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출근해야 하는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현관문 앞에 세워두고 소독제를 뿌려댔다. 한 주간의 고단한 육아에 대한 보상으로 카페에 가만히 앉아 커피 한잔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는데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작게나마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다 지쳐버렸다. 펑 하고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우울증이 오는구나 싶었다.
그때 나를 살린 것이 책 한 권이었다. 김미경의 리부트. 부제는 코로나로 멈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법. 처음에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위기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내가 해야 할 것이 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경력단절 7년 차의 전업주부인 나도 할 수 있는 것이 있구나. 지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이뤄둔 것이 없어 보이는 나도 할 수 있구나, 아니 해야만 하는구나.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눈 감고, 귀 막고 있던 서 있던 나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 준 것이 바로 책이었다. 육아를 핑계로 책 한 장 펼쳐보지 않았었는데 이 책이 내 독서생활의 마중물이 되어 주었다.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면서 새벽을 깨워 모닝페이지를 적었다. 그것을 내 감정 쓰레기통 삼아 모두 토해냈다. 그리고 깨끗하게 비운 내 마음을 책에서 본 좋은 구절들로 채웠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야 할 길, 내가 해야 할 길을 생각했다. 각종 <엄마표 영어 책>을 읽으면서 엄마표 영어를 재정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에게 '영어그림책 읽는 엄마'라는 정체성을 갖게 해준 영어그림책.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는 것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나니 새로운 세계가 나에게 왔다. 단 하나의 구절로도, 그림과 어우러져 따스한 위로를 건네주는 영어그림책에 빠졌다. 그렇게 열심히 읽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세계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고, 그렇게 '엄마가 먼저 즐거운 영어책 읽기' 모임을 만들었다. 인터넷상으로 여러 엄마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영어책을 읽는 기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세워지는 자존감.
앞에 닥친 현실을 원망하면서 가만히 서 있던 나를 모든 것이 열려 있는, 새로운 세계로 이어준 것은 바로 '책' 이었다. 그 자리에서 서서 우물쭈물 한 걸음도 떼지 못하던 나를 기회와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건너가게 해준 나의 고마운 '다리'.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책은 나를 좀 더 넓고 좋은 땅으로 이끄는 중이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 내가 나 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세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그렇지만 꾸준히 걸어가 보려 한다. 내 '다리'를 딛고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