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계절
목글모 단톡방에서 상희님이 해준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어서 한참을 되뇌어 보았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 사라의 계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도 바로 가을이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에어컨 그늘 아래서 몸을 사리고 견디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선선한 가을바람이 선물처럼 찾아온다. 갑작스럽게 닥치는 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런 서프라이즈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여름 내내 움츠리고 있던 내 마음도 덩달아 넉넉해지는 기분이다. 그래, 이거지! 나 이런 날씨 참 좋아했지.
좋아하는 계절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지난 글에도 썼듯이 김미경님의 <리부트>를 읽고 나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육아서만 겨우 읽던 것도,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는 그만두었던 참이다. 그리고 그동안 놓친 시간들을 만회라도 하려는 것처럼, 전투적으로 책을 읽었다. 코로나로 이전과는 달라진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해서 치열하게 책장을 넘겼다, 열정적으로. 그리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날이 온 것처럼, 내 독서 인생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책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다. 읽어야 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에게서 뭐 하나라도 더 얻어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내 소중한 인생 친구를 노려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호시탐탐 득이 될만한 것을 가져갈 생각만 하면서 만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그냥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이가 되어서 좋다. 그냥 책을 들고 있는 그 시간이 좋고, 그 시간이 나를 나답게 한다. 이런 애정이 깃든 마음으로 대하니 그 친구는 나에게 더 많은 것을 베풀어준다. 짧은 구절로도 내 마음을 울리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불빛을 비춰준다. 같이 가자고 손 내민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내가 받은 이 울림을, 이 깨달음을 나만 알고 있을 순 없지! 단톡방 여기저기에 퍼나르기 바쁘다. 내가 느낀 감동이 그 사람에게도 전해졌을 때. 그 사람의 마음에도 작은 발자취를 남겼을 때. 내 마음도 벅차오른다. 같은 책을 보며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좋다.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는 것을 늘 두려워했다. 늙고 병들어 무기력한 모습.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마음은 사라지고 내 안에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때에도 난 책과 함께겠지. 책과 함께 나이 드는 삶이란. 그때까지 책을 놓지 않고 쭉 읽어간다면 얼마나 내 삶이 멋지게 흘러갈지 기대된다.
육아에 치이고, 경력단절로 무엇을 해야 하나 방황하며 치열하게 고민하던 내 인생의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고 있다. 아직 풍성한 열매를 맺지는 못하는 여름에서 가을 사이 그 어딘가지만. '사라의 계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