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저녁 다투는 이유
나보다 훨씬 예민한 사람이지만, 대부분의 것들을 나에게 맞춰주며 사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큰 위기 없이 무던하게 흘러온 편이라고 자부한다. 그런 우리 사이에도 종종, 그렇지만 치열하게 다투는 한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식사' 문제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된장국에 김치 종류별로 서너 개. 이 정도가 늘 디폴트 식단이었던 집에서 자란 나는 이렇게만 몇 끼 연속으로 먹어도 불만이 없는 사람이다. 끼니때마다 식사 시간에 맞춰 배고프지 않을 만큼만 먹으면 되는 사람. 먹는 것에 별로 욕심이 없으니 요리도 그만큼 즐기지 않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오래 집에서 나와 생활했지만,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은 드물었다. 집에서 가져온 김치와 밑반찬이면 충분했으니까.
그런 내가 먹는 것을 즐기는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다. 신혼 초에는 그래도 뭐라도 만들어 보겠다고 이리저리 애를 써본 것도 같은데,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임신하게 되면서 극심한 입덧에 시달렸다. 음식을 만들기는커녕 냉장고 냄새조차 맡기 힘들어서 헛구역질을 해댔고, 바나나와 포카리스웨트가 몇 달간 내 주식이었다. 자연스레 요리와는 거리가 멀어졌고, 그런 내 옆에서 먹고살아야 했던 남편은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우리 집의 역할분담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주말에는 주로 남편이 요리를 담당하고, 평일 저녁에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집에 '있는 것' 으로만 때우는 식이었다.
한동안 그런 생활을 해오다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무렵부터 남편이 퇴근길에 자꾸만 물었다.
"오늘 저녁은 뭐 먹지?"
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일상적인 질문이 내 마음에 돌덩이처럼 쿵 하고 내려앉았다. 김치나 밑반찬 같은 것은 잘 먹지 않는 남편이다. 뭐라도 메인디쉬가 있어야 잘 먹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종일 두 아이를 가정보육하며 시달리다 지친 나는 '요리'라는 생산적인 일을 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있는 거 먹지 뭐."라는 말에 남편은 "집에 뭐가 있는데?"라고 대답한다. "뭐 (자기가 원하는 특별한 메인디쉬같은 건) 없지." 하면 "그럼 뭐 시켜 먹을까? 치킨 어때?" 같은 말들이 돌아온다. 매일 저녁 똑같이 묻고, 똑같이 대답한다.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것이다.
난 그냥 있는 거 먹어도 되고, 애들은 주면 주는 대로 불만 없이 먹으니 남편이 야근하고 늦는 날들이 오히려 반가워지는 지경까지 가고 말았다. 배달 음식도 하루 이틀이지, 돈은 돈대로 버리고 그 음식들이 입에 물려서 어느 것도 시켜 먹고 싶지 않아졌다. 서로에게 불만이 쌓여갔다. 그냥 좀 이렇게 먹는 날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김치랑 야채 같은 건 잘 먹지도 않고, 어떻게 맨날 고기반찬에 자극적인 음식들만 먹고 사나, 가 내 입장이었다면. 힘들게 일하고 퇴근하는 그 순간에마저 저녁 식단을 고민해야 하다니, 이런 고민 없이 집에 가면 차려져 있는 밥을 먹고 싶다, 가 남편의 입장이었다.
큰 소리 내며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런 불편한 마음들을 꾹꾹 눌러 담다 보니 우리 사이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이 느껴졌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남편은 먹는 것에 욕심도 없고, 요리하는 것에 스트레스 받는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반대로 나는, 내오는 반찬도 반찬이지만 내가 입으로 내뱉는 단어에 남편이 마음이 상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다 한 번씩 엄마가 가져다주는 특별한 음식이 있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냥 집에 있는 것이었다. 집에 있으니 (배달시키거나 따로 요리하지 않고) 있는 걸 먹자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남편은 '그냥 있는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지긋지긋한 신경전에 노이로제가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똑같이 김치에 계란후라이만 내주더라도 '있는 것'이라고 표현하지 말고 '김치랑 계란후라이' 라고 콕 찝어 이야기해 주라는 것이 남편의 요구사항이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듯이, 좀 더 다정하고 상냥한 표현을 원했다.
그렇게 타협점을 찾아간 우리의 저녁 식사는 이제 좀 달라졌다. "오늘 저녁 뭐 먹지?"라고 남편이 묻기 전에 "오늘 저녁은 (집에 있는) 재첩 국 먹자. 냉동실에 있는 돈가스도 좀 구울까?"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하는 것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예전처럼 집에 있는 것으로 간단히 굽고, 끓이는 것뿐이다. 그동안 치열하게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은 차지하고서라도, 바뀐 것은 말 한마디뿐인데 서로를 넉넉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다 내 잘못이었던 건가...? 뭔가를 크게 해주지 않아도 건네는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 감성을 가진 남편은 내가 내주는 반찬에 투정 한 번 없이 밥그릇을 비운다.
이런 평범한 저녁 일상이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었을까? 결혼 8년 차인데도 아직도 서로 맞춰가야 할 부분이 참 많다. 오늘도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서로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