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인 사람의 관계법
요즘 남인숙 작가님의 <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를 읽고 있다. 내성적인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 어찌나 맛깔나게 표현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도 '맞아, 맞아, 진짜 그렇지!' 하며 절로 맞장구를 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던 '나의 성향'이 명확하게 정의되는 느낌이다. 흩뿌려진 안개 덕분에 희미하게 보이던 내 안의 내가 비로소 제 모양을 드러내고 '나 여기 있었노라' 조용히 속삭이는 기분이라 읽는 재미가 있다.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나와 재미있는 숨바꼭질 중에 보니 마침 이번 달 공통 주제가 <우리>이다. 이 단어를 듣자마자 떠올랐던 생각은 사람들 모두, 저마다 우리의 '범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어디 멀리 갈 것도 없이 남편과 나의 우리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 가족'이라고 하면 나는 남편과 나, 그리고 우리 아이들. 이 넷이 우리 가족이다. 그렇지만 남편이 생각하는 우리 가족의 범위는 더 넓다. 우리 넷에 더해 각자의 부모님들까지 포함이다. 어쩌면 하나씩 있는 동생네 가족들마저도 우리 가족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읽은 책에 의하면, '내성적인 사람은 물리적, 감정적으로 예민한 사람이다. 그래서 바깥세상의 사소한 변수조차 자극이 된다.'라고 한다. 그래서 그렇다. 그래서 내가 정하는 <우리>의 범위는 늘 좁을 수밖에 없다. 자극받지 않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적당한 선을 그어두고 넘어서지도, 넘어오게 하지도 않는다. 넘어서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아닌 타인의 일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서 딱히 화를 내지 않는다. 싫어하는 사람도 딱히 없다. 그저 나를 타인에게 무심한 사람이라고만 정의해왔는데 이 또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타인과의 충돌로 번지기도 전에 내 안에서의 전쟁으로 이미 불바다가 된 것이다. 이런 일을 감당하기 어려운 내향인은 그래서 타인을 향한 일에서는 무던하거나 둔감해지곤 한다.
그렇다. 고요한 내 마음의 호수에 돌을 던지고 싶지 않다. 불바다 속에서 괴로워하고 싶지가 않다. 그러니 눈을 감고, 귀를 막았던 것이다. 내가 그은 선을 넘어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반대로, 남편은 종종 내가 무던하게 넘어가는 포인트에서 분노하곤 한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불친절한 음식점 직원이라든지, 반말로 일관하는 계산원이라든지. 남편의 불만 섞인 말을 듣고 나서야 '아 그랬어? 몰랐네.'라고 대답하는 나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내가 남편보다 그런 면에서 좀 더 너그러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것이 아니었나 보다. 그저 타인을 향한 일에서 무던하고 둔감해졌을 뿐, 생존을 위해.
나의 <우리>는 좁고, 깊다. 쉽게 곁을 내주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열리지 않고 꽉 닫혀있는 문은 아니다. 새로운 관계가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누군가의 문을 두드릴 때도 있다. 인생의 각 페이지마다 나의 '우리'가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웅크려 있지 않고 잠시 선을 넘어갔다 오면, 생각지 못한 곳에서 소중한 인연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발전된 관계가 나의 소중한 '우리'가 되어 나의 세상을 넓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