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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한 자유인 Sep 24. 2022

아이들의 핸드폰 뒷자리는 엄마와 똑같다

아이들의 제1 양육자는 엄마

내가 일하는 학원은 가르치는 일과 더불어 한 선생님당 50명 정도의 아이들의 담임 역할도 하고 있다.

학원에서 보는 중간, 기말고사 상담과 수업 태도와 관련한 상담들은 모두 담임 선생님의 몫이다.

9월이 가기 전 새로 담임을 맡은 아이들 학부모와 상담을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학부모 전화번호를 학생 인적사항에서 찾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열에 아홉은 아이들의 핸드폰 번호 뒷자리가 엄마의 그것과 똑같았다. 아마 처음 핸드폰을 사러 갔을 때 엄마 번호랑 똑같은 번호로 개통을 했겠지. 한 학생은 아버지 번호까지 세 명의 번호가 뒷자리가 같았다.


학부모 상담을 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금까지 상담한 40명의 학생 중 아버지와 상담한 경우는 단 한 건이라는 것. 물론 어머니가 집에서 가정 주부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도 있지만 지금까지 경험 상 3~40 퍼센트는 맞벌이 가정인데도 불구하고 상담은 어머니와 이뤄졌다. 6시 이전에 통화가 안 되거나 저녁 시간에 전화를 하면 운전 중 혹은 버스 안이라는 답변을 몇 번 들었다. 또 수업 시간에 부모님에 대해 적어보기 시간에도 보면 맞벌이 가정의 비율이 꽤 높았다. 그럼에도 나와 아이들 교육과 관련하여 상담한 학부모는 98%의 확률로 어머니 쪽이었다. 여기서 깨달은 것은 아직도 아이의 교육과 양육은 엄마의 몫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집안마다 집안일 배분이 다를 수 있다. 어머니가 가정 주부라면 아이들 양육은 당연히 엄마의 몫이 되는 것이고, 맞벌이 집안이라도 아이의 양육은 엄마가, 나머지 집안일은 아빠가 맡았을 수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점은 아이의 양육은 여자의 몫이라는 사회적 통념과 그 통념이 맞벌이 가정에서도 계속된다는 점이다. 


한 번은 실수로 (?) 학생 아버지 번호로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학생이 결석을 해서 보강 스케줄을 잡아야 했는데 아버지의 돌아오는 답변은 아이 스케줄은 엄마가 담당해서 본인은 잘 모르니 엄마 번호로 다시 전화해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일하는 아버지로서 아이들의 스케줄을 꽤고 있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맞벌이를 하는 엄마들의 대부분은 아이가 학교 갈 때부터 집에 저녁에 돌아올 때까지의 일정을 꿰뚫고 있다. 


그리고 학원에서 학부모 상담 전화를 할 때에도 별도로 기재 사항이 없으면 어머니에게 전화하는 것이 관습이다. 이것 또한 사회적 통념을 더욱 고착시키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아이 교육을 책임지는 것은 엄마 쪽일 것이니 엄마 번호로 전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 하지만 실제로 집안에서 엄마가 아이 교육 담당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사실이기에 우리가 가진 사회적 통념을 어디서부터 깨어야 할지 고민하게 한다. 


10년 전 내가 학생으로 학원을 다닐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에 조금 서글펐다. 이제는 세상이 조금 달라졌을 줄 알았는데. 6~70년대생 부모가 지나가고 80년대생이 부모가 되었을 때는 급격하지는 않더라도 약간의 변화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맞벌이 가정의 비율이 조금 늘어난 것 같기는 하다만 여전히 그 안에서도 아이의 양육 담당은 엄마구나. 10년 후 내 세대가, 내 친구들이 아이를 낳게 된다면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될까? 지금 치열하게 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대학원 가는 내 친구들이 아이를 낳는 순간 일과 집 중에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까? 일을 하면서도 아이 양육까지 담당하여 두배로 에너지를 써야 하는 삶을 살게 될까?


이제는 약간의 회의가 든다. 과연 아이의 양육이 여자의 몫이라는 관습이 시간이 지나면 깨어지기는 하는 것인지. 멜린다 게이츠가 경제 주간지 The Economists와 함께 한 팟캐스트를 공유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멜린다 게이츠와 Economists의 저널리스트가 판데믹이 어떻게 성평등을 향한 움직임을 반대로 뒤집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간이 있는 분은 들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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