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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한 자유인 Nov 11. 2022

빼빼로 받는 선생님

나 이거 받아도 되는 거니

학원에서 일한 지 어언 3개월이 다 되어 간다.

8월부터 맡은 반 아이들 하고는 꽤 정이 들어서

사실은 내가 3개월 계약직이었고 12월 초에 떠난다는 말을

어떻게 할지 벌써 고민이 된다.


정말 아끼고 귀여운 아이들도 있고

속을 처음에는 였지만 갈수록 열심히 해서

예뻐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내 선생님 스킬도 발전하여 아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노하우가 생긴 덕도 있는 듯하다.


처음에는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핀잔을 주고 목소리를 높이기만 했었다.


이제는 거기에 완급 조절을 할 여유가 생겼다.

무서워야 할 때는 무섭게, 재밌어야 할 때는 재밌게.




그러다 보니 점점 나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오늘은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다.

사실 지난 수요일에 한 학생이 이미 수제로 빼빼로랑 초콜릿을 만들어다 줘서 감동받았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미 하나 받았으니 더 받을 거라는 기대 없이 학원에 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예상치도 못했던 반에서 빼빼로를 잔뜩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 들어가서 이름도 겨우겨우 외운 반이 하나 있는데 그 반 아이들 2명에게나 빼빼로를 받았다. 한 명은 심지어 빼빼로 사러 간다고 조금 지각까지 했다. 이런 아이들을 예뻐하지 않고 어떻게 버티리.


중학생들도 빼빼로를 사 오거나 심지어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런 정성이라니ㅠㅜ 내가 정말 이걸 받을 자격이 있는 걸 까? 나를 그만큼 생각해줬다는 거에 정말 감동했다.


한 학생은 자기가 깜빡했다고 스승의 날 때 선물 많이 사 오겠다고 했는데, 1. 난 그때까지 여기서 일하지 않을 것이며, 2. 너는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 이런 아이들한테 난 이제 곧 떠난다는 말을 어떻게 하지.




사실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 준비하면서 집에만 있기가 싫어서 단기로 일할 곳을 알아보다가 얻게 된 것이었다. 학원에서도 단기로 일 할 선생님을 찾고 있어서 서로의 니즈를 맞추는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말도 더듬고 긴장한 선생님이었는데 이제는 나름 능숙하게 아이들과 농담도 하며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짧은 기간 동안 한 일이었지만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법,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법, 어려운 개념을 이해시키는 법. 또 가장 많이 얻은 것은 아이들과의 친밀감.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고, 부모님과 상담하며 아이가 집에서, 학교에서는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게 되고, 유난히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날이면 무슨 일인지 걱정되고. 3개월 만에 이렇게 됐다는 게 웃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진짜로 이 아이들에게 진심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곧 헤어지겠지만 난 너희가 행복하고 멋진 성인이 되기를 바란단다. 나를 가르치신 선생님들도 그런 마음이셨겠지. 너희를 가르치며 내 학창 시절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글을 또 쓰겠다.


가방 두둑이 빼빼로 들고 집에 온 선생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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