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나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었다.
이 글에서, 나는 나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내가 원하는 나의 미래는 어떤 것이지?
그 미래를 위해서는 난 지금 무얼 해야 하지?
그때의 나는 이에 답을 하지 못했다. 당장 내일이 막막했고, 어두운 불안감만이 나의 매일을 채웠으니까. 그 후로 보름이 지났지만 나의 하루에는 변화가 없었다. 나와는 다르게 열심히, 진득이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 자신을 자책할 뿐이었다. 더구나 시험기간이었기에 학교 안은 어디를 가나 피곤한 얼굴로 책상과 한 몸이 되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연구실에 들어가지 않고 그들 곁으로 거닐고 있는 나 자신을 자책했다. 그 감정은 나를 무척이나 슬프게 했지만 연구실에 가서 책을 보기는 싫었다.
왜일까? 나는 왜 그들처럼 열심히 못하고 있지? 예전의 나는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었지?
마치 수학 책에서 연습 문제를 마주하는 마음으로 꽤나 이성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려 했다.
내가 발견한 이 문제의 시작은, 이 공부를 하는데에 아무런 동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세상에, 가깝게는 나의 삶에 조차도 도대체 무엇을 주는 것인지 모르겠었다. 아니, '확실히 나의 삶에 주는 게 있었다면 그것은 고통일지도.'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또다시 나는 수학을, 그리고 수학을 하는 사람들까지.. 미워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그러던 얼마 전, 우연히 동료, 선배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가고 싶지 않았었다. 참 좋은 사람들이지만 불편함이 나의 위장을 간질였다. 하지만 약속을 취소하기엔 너무 늦었었고, 나는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수학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얼떨결에 참석했던 이 식사 자리는 나의 마음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매일을 진지하게 학문을 마주하는 그들이 참 멋져 보였다. 그리고 부러웠다. 현재 자신이 쓰고 있는 논문의 진행 상황에 대해 착잡하게 이야기를 하던 동료의 피곤이 가득한 얼굴에서 일종의 빛을 보았다. 대단해 보였고, 부러웠다. 그래 맞다. 정말이지 부러웠다. 1년이 더 넘은 과거이지만, 한때는 나도 딱 저 모습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수학을 왜 해? 어디 쓰이는 거야?"라는 친구의 질문에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어디 쓰일 거라고 생각하며 수학을 하지 않아. 그저 이 자체가 아름다우니까 하는 거야."라고 자신 있게 말하던 사람이었는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식사 자리에서 동료의 수학 이야기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말이다. 집에 돌아온 나는 생각에 깊이 잠겼다. 그리고 오랜 시간 마음 저 한구석 깊은 곳에 묻어두고 꺼내지 않았던 나의 꿈을 꺼냈다.
프랑스에서 수학을 하고 싶어!
다소 뜬금없이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어를, 그리고 프랑스를 사랑하는 수학자인 나는 꽤나 자주 이 소망을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다. 물론, 2~3년 전인 그 시절에는 이 꿈은 나에게 무척이나 멀고 크게 느껴졌기에 조금의 진지한 기색도 없이 아주 천진난만하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이것이 더 이상 꿈만이 아니다. 박사과정 수료를 앞두고 있는 나는 꽤나 가까워졌다. 물론, 과정 이름에 비해서 실력은 많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거울 속의 내 눈빛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한동안 꺼져있던 등불에서 희미한 반짝임이 보였다. 그리고 지금, 난 한 달 전 나의 질문에 답을 하려 한다. 나의 인생 전체를 보는 관점에서 본다면 다소 근시적인 답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큼 더 뚜렷하고, 그렇기에 지금의 나의 가슴을 뜨겁게, 마음을 설레게 한다.
3년 뒤의 오늘, 나는 프랑스에서 수학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반짝이는 눈으로 청중을 바라보며 나의 수학을 세상에 알리고 있을 것이다.